'엘피아 근절' 속전속결…"실효성 거두려면 시공 프로세스 손봐야"
'명운걸고 이권 카르텔 타파' 선언에도
땅투기 논란 2년 만에 전관예우 터져
'혁신안에 진정성 담겨있나' 비판도
'LH인사 배제' 보여주기 식 보다
설계-시공-감리 평가방식 바꿔야
[이데일리 박지애 박경훈 기자]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관예우’가 지목되자 LH가 고강도 혁신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안전을 도외시 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수어야 한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나온 속전속결 혁신안이다. 자성의 노력과 쇄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속도감 있게 개선안을 내놓았다고 하지만 실효성 있는 결과를 거둬들일지는 미지수다.
LH는 명운까지 걸고 ‘이권 카르텔 타파’를 선언했다. 다만 대한주택공사부터 60년이나 된 조직이다 보니 퇴직자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연결고리를 완전하게 끊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참에 혁신안도 혁신안이지만 설계에서 감리까지, 시공사 선정과 평가까지 일련의 ‘시공 프로세스’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일 LH가 발표한 고강도 혁신안의 핵심 키워드는 ‘전관예우 근절’이다. 이를 위해 LH는 건설공사 전 과정(설계, 심사, 계약, 시공, 자재, 감리 등)에서 전관예우, 이권 개입, 담함 등을 관리하기 위한 추진본부를 신설했다. 건설카르텔 관련 부실시공 유발업체를 ‘원스트라이크 아웃’으로 퇴출하는 등 고강도 혁신안을 마련했다고 했다. 또 건설안전기술본부를 통해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전관개입 가능 업무를 전면적으로 개편할 뜻을 밝혔다. 감리 제도 역시 전관 유착 관행에 의해 유명무실했던 이전 제도를 전면 개편하고 감리 범위를 설계까지 확대 적용한단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대책이 뿌리 깊은 전관예우를 막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 시각이 강하다.
지난 2021년 직원 땅 투기 사태 때도 개발정보를 공유하는 등 전·현직 직원 간의 유착 문제가 드러나자 혁신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미 이때도 전관예우 근절 방안으로 LH 출신 감정평가사나 법무사에 대해 퇴직 후 1년간 수임 제한, 퇴직 직원 출신 감정평가사의 제척·기피·회피 제도 도입, 퇴직자 접촉 신고제 신설 등을 포함했다.
임원이 청렴 의무를 위반하면 최대 5년까지 연봉을 환수할 수 있도록 임원 보수 규정을 개정하고,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직위 해제되면 기본급의 최대 50%까지 감액할 수 있도록 규정도 강화했다. 취업제한 대상자를 임원 7명에서 이해충돌 여지가 큰 고위직(2급·부장급 이상) 500여명으로 늘렸고 퇴직자가 소속된 기업과는 퇴직일로부터 5년 이내 수의계약을 제한했다. 또 설계 공모나 공사 입찰 등 각종 심사를 위한 위원회에서 LH 직원을 배제했다.
2년이 지났지만 또다시 들고 나온 혁신안에 진정성이 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사실 이 문제는 진짜 원인부터 제대로 진단해야 재발이 안 될 사안이다”며 “LH 발주 아파트 91개 단지 중 76개 단지는 제대로 지어졌는데 이 역시 LH 퇴직자가 없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LH 출신이어서가 아닌 현장별로 의사결정 과정이나 업체 선정 과정에서의 평가 기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 파악부터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무조건 LH 인사를 배제하는 ‘보여주기 식’의 혁신안보단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평가 선정 위원을 외부에서 영입하도록 제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으로는 누가(Who) 설계 시공에 가담했는지 보단 어떻게(How) ‘설계-시공-감리’하는지 선정 과정이나 평가 방식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성준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은 “전관예우는 근절해야 하지만 이 사태의 더 근본적인 문제를 냉철히 봐야 한다. 사업에 응모하면 업체들은 평가를 받는다. 결국 문제가 되는 건 평가 시 LH 관계자가 평가위원으로 들어가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것이다”며 “평가위원을 LH에서 정하지 못하게 막고 공공단체 등 외부에서 정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 LH 퇴직자여서 오히려 역차별을 당할 수도 있는데 모두가 공정한 출발선에 서도록 제도를 손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와 LH는 추가 대책으로 LH 출신 임직원이 없는 업체가 LH 사업에 응모하면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국가계약법상 발주자가 특정한 조건을 내걸어 계약상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조항 때문에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LH 퇴직자의 건설 현장 배치를 제한해 업무상 LH 직원과의 접촉을 원천 차단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건설 공사 과정 간 원활한 소통이 가능토록 시스템을 고안하고 외부 감사 시스템을 통해 전관예우에 대한 감시도 이뤄지는 방안도 언급되고 있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전관유착이 벌어지지 않도록 시스템적으로 외부인사가 포함된 위원회가 적절히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현재는 설계와 시공, 감리 사이에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구조인데 시스템 내에서 크로스체크를 할 수 있도록 방안을 고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혁신안에 포함된 감리 역할을 설계까지 확대하는 방안은 되려 전문성을 낮출 위험소지가 있어 기존 규정에서 페널티를 강화해 철근 누락 같은 사태를 방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조설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건축구조기술사가 해야 하는데 감리가 이 부분까지 발을 들이면 되려 전문성에 문제가 생긴다”며 “결국 시장에선 감리에 대해 구조설계 사무소에 외주를 주는 등 문제가 반복될 소지가 크다. 이번 LH 철근 누락은 시공과 감리보단 구조 설계상 문제가 더 컸는데 이런 부분은 보여주기식 제도 보완보단 기존의 규정을 따르도록 하되 규정을 어기면 실질적으로 사업을 더 하는데 큰 타격이 있는 등 페널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애 (pja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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