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덮친 ‘정쟁 리스크’… 국가신용등급 12년 만에 강등

박영준 2023. 8. 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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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 ‘AAA → AA+’ 전격 하향
정치권, 부채한도 협상 놓고 매번 대립
연방정부 ‘디폴트 위기’ 해마다 반복돼
피치 “채무 증가·거버넌스 악화 등 반영”
백악관 “주요국 중 가장 강력한 회복세
강등 결정은 현실 무시하는 처사” 반발
美 연착륙 기대감 속 영향 미미 관측도
미국 정치권의 극한 대립으로 매년 반복되는 연방정부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결국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로 이어졌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자 기축통화국인 미국에서 거의 매년 빚어지는 부채한도 협상 정쟁에 대한 시장과 국제사회의 우려가 12년 만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을 불렀고, 국제 금융시장은 이로 인한 후폭풍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세계 각국서 확산 중인 ‘극한 대립’ 정치판 분위기가 한 나라는 물론 세계 경제의 발목까지 잡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美 국가부채시계 ‘째깍째깍’ 미국 뉴욕 맨해튼에 설치되어 미국의 나랏빚 현황을 알리는 ‘국가부채시계’ 앞을 시민들이 지나는 모습.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가 1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전격 강등했는데, 매년 의회서 빚어지는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 갈등에 따른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뉴욕=신화연합뉴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는 1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전격 강등했다.

피치는 이날 미국의 신용등급(IDRs·장기외화표시발행자등급)을 하향하고 등급 전망을 기존 ‘부정적 관찰 대상’에서 ‘안정적’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피치는 보고서에서 “향후 3년간 예상되는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통치체제)의 악화 등을 반영한다”고 강등 배경을 설명했다. 피치는 5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로 매기면서, 연방정부 디폴트 위험과 관련해 향후 등급 하향이 가능한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했다.

미 의회는 디폴트 기한을 이틀 앞둔 6월3일 극적으로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를 상향하는 데 합의했으나, 피치는 당시에도 “가장 최근의 벼랑 끝 대치 상황이 가져온 전체적인 함의와 미국의 중기 재정 및 부채 궤적 전망을 고려해” 기존 부정적 관찰 대상 지위를 유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랬던 피치가 이날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미국 정치와 경제에 확실한 경고음을 날린 셈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5월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만나 부채한도 협상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피치는 보고서에서 “미국은 20년 넘게 거버넌스 기준이 꾸준히 악화했다”면서 “2025년 1월까지 부채한도를 유예하기로 한 지난 6월의 초당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재정과 부채 문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피치 분석에 따르면 세수 감소와 재정지출 증가, 이자 부담 증가 등의 여파로 미국의 정부 재정적자는 202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3.7%에서 2023년 6.3% 수준으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의 장기적인 재정 문제에 대한 진전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사회보장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고, 조 바이든 행정부의 메디케어 정책도 기금 안정성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사진=AP연합뉴스
3대 신용평가사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은 2011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미국을 최고 등급(Aaa)으로 유지 중인 곳은 무디스뿐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역시 2011년 8월 연방정부 채무불이행 위기를 앞두고 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다. 당시 이 조치로 미국 주가가 15% 이상 폭락했고, 전 세계 금융시장은 더 큰 충격파를 받아내야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강력 반발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날 피치 결정에 대해 “자의적이고, 시간이 지난 데이터에 근거했다”면서 “피치의 결정은 미국인, 투자자 그리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미국 국채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유동적인 자산이라는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커린 잔피에어 대변인 명의에 성명에서 “우리는 (피치의) 결정에 강력히 반대한다”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전 세계 주요 경제국 중 가장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는 이 시점에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사진=뉴스1
아무도 예상치 못할 만큼 전격적이었으나, 이번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 영향은 미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종료 이후 급박하게 움직인 재정 당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물가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는 등 미국 경제 연착륙 기대감이 커지고 있고, 기업 실적도 상승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존스의 수석 투자전략가인 안젤로 쿠르카파스는 강등 시점이 “분명히 놀랍다”면서도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뜻을 로이터에 전했다. 앨비언 파이낸셜그룹의 최고투자책임자 제이슨 웨어는 “이전에 이런 일을 겪어 시장이 놀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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