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좋다고 15년 붙박이… 순환원칙 무시
가족계좌로 78억·326억 이체
자체감사에도 횡령 발견 못해
거액 입출금 감시장치 전무
700억 우리銀 사태와 판박이
경남銀, 560억대 횡령사고
금융당국과 금융지주 회장까지 나서 내부통제를 외쳤지만 현장에서는 결국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BNK경남은행에서 2일 562억원 규모의 횡령·유용사고가 터지자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금융권은 지난해 4월 우리은행에서 700억원 규모 횡령 사건 발생 후 내부통제를 강화해왔다. 특히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들이 사실상 명예를 걸고 '내부 통제'을 역설하며 제도개선안도 마련했다. 하지만 우리은행 횡령 사건과 '판박이' 사고가 또다시 발생하자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서류 위조에 가족계좌로 이체 …"조력자도 있을 듯"
금감원에 따르면 이 사건은 처음 인지된 것은 지난 6월. 경남은행은 부동산투자금융부장 이 모(50)씨의 별건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 진행 사실을 금감원에 보고했다. 이에 금감원은 이 씨에 대한 자체 감사를 실시하도록 지도했다.
경남은행은 자체 감사를 벌여 이 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생(PF) 대출 상환자금 77억9000만원 횡령 혐의를 인지하게 됐다. 이어 지난달 20일 금감원에 보고했다. 이에 금감원은 다음날인 지난달 21일 긴급 현장점검에 착수해 현재까지 횡령·유용 혐의 484억원을 추가 확인한 상태다.
이 씨는 2016년 8월~2017년 10월 부실화된 PF 대출에서 수시 상환된 대출 원리금을 가족 명의 계좌에 임의 이체하는 방식으로 77억9000만원을 횡령했다. 차주(PF 시행사)의 자금인출 요청서를 위조해 경남은행이 취급한 PF대출 자금을 가족 법인 계좌로 이체하는 방식으로 2021년 7월과 작년 7월 두차례에 걸쳐 326억원을 가로챈 혐의도 있다. 작년 5월에는 경남은행이 취급한 PF대출 상환자금 158억원을 상환 처리하지 않고 A씨가 담당하던 다른 PF대출 상환에 유용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날 이 씨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조력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내부통제 미작동…눈뜬 장님 된 경남은행
금융당국은 "특정부서 장기근무자 순환인사 원칙 배제, 거액 입출금 등 중요 사항 점검 미흡 등 기본적 내부통제가 작동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4월 발생한 우리은행 횡령사고와 사실상 '판박이'다.
금감원 조사 결과 이 씨는 지난 2007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약 15년간 부동산 PF 업무를 담당해왔다. 우리은행 횡령사건의 피의자인 A 씨 역시 지난 2012년 6월에서 2020년 6월까지 약 8년간 우리은행 본점 기업 개선부에서 근무했다. A 씨는 이 기간동안 8회에 걸쳐 총 697억3000만원을 횡령했다. 무려 8년간 같은 자리에서 횡령을 했지만 적발되지 않았다.
거액 입출금에 대한 감시 장치 역시 없었다.
이 씨는 가족 명의계좌에 대한 임의 이체를 통해 77억9000만원을 횡령했다. 2021년 7월과 작년 7월 두차례에 걸쳐 326억원 규모의 거액을 또다시 이체했다. 우리은행 직원 A씨 역시 우리은행이 채권단을 대표해 관리중이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금 614억5000만원을 3회에 걸쳐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남은행은 PF대출 자금 관리와 관련해 지난해 자체 점검을 벌였으나 '이상이 없다'고 금감원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 씨의 횡령사고가 이미 작년 이전에 발생했고 계속 은폐하다보니 적발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경남은행이 지난해 자체 점검에서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그 당시 자체 점검이 제대로 안됐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은행 사건 역시 A 씨가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1월 기간 중 파견 허위보고 후 무단결근했음에도 은행 측이 인지하지 못했다. 결국 금감원이 검사를 하고 나서야 뒤늦게 밝혀졌다.
금감원은 현재 서울 소재 경남은행 투자금융 부서에 검사반을 투입해 사고 경위 및 추가 횡령 사고 여부를 파악 중이다. 은행 내부통제 실패 가능성이 있는 만큼 창원 소재 경남은행 본점에도 검사반을 확대 투입해 PF대출 등 고위험 업무에 대한 내부통제 실태 전반을 점검 중이다.
◇'또 무관용'…고삐만 죄는 당국
금감원은 이날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광주은행, 대구은행 등 모든 은행에 PF자금관리 실태를 긴급 점검하도록 지도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다른 은행들에서서 경남은행 횡령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있을 수 있어 긴급 점검을 지도했다"면서 "원인 규명을 해서 문제가 되는 은행은 엄중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은행 사건에 대해서도 "검사 결과 확인된 위법·부당사항에 대해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중히 조치할 것"이라며 "내부통제 실패에 책임이 있는 관련 임직원에 대해서도 단호하고 엄정하게 조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횡령 등 거액 금융사고 발생 시 금융 지주 회장과 최고경영자(CEO)를 문책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우리은행 횡령 사고 이후 각 금융회사들이 내부통제 강화를 한목소리로 외쳤지만, 이번 사건으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면서 "상명하달식 지시가 아닌 금융기관 구성원 각각의 인식을 바꿀 있는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선기자 alread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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