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투기’ 논란 2년 만에 ‘전관특혜’로 다시 위기 맞은 LH
경실련 공익 감사 청구 “철근 누락 배후엔 LH 전관 업체”
고개 숙인 LH “의혹 불식 못하면 미래 없다는 각오로 쇄신”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며 국민께 헌신하는 청렴한 국민 공기업으로 재도약하겠습니다." (2022년 12월16일, LH 혁신 선포 및 청렴 서약식)
"최고급 민간브랜드 공공분양 임대주택이 공급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습니다." (2023년 1월2일, LH 온라인 시무식)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의 다짐과 포부가 공염불로 전락할 처지다. 인천 검단 신축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여파가 LH까지 번지고 있어서다. LH가 발주한 아파트 15개 단지 지하주차장에 철근이 누락된 데 이어 절반이 넘는 8개 단지의 감리 업체가 전관 특혜 대상으로 지목된 상황이다. LH가 '이권 카르텔'의 온상이 된 모양새다. 불과 2년 전 일부 직원들의 땅 투기로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LH에 다시금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철근 누락' 단지엔 LH 전관이 똬리 틀고 있었다
'순살 아파트' 논란이 LH로 옮겨 붙었다. '무량판 공법'이 적용된 LH 발주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전수 검사한 결과, 91개 단지 중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무량판 구조는 무게를 버티는 보가 없고 기둥에 슬래브가 바로 연결된 형식이라 기둥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철근을 튼튼하게 감아줘야 한다. 무랑판 공법이 적용된 인천 검단 신축아파트 지하주차장의 붕괴 사고 원인도 철근 누락이었다.
조사 결과, 15개 단지에서 보강철근이 들어가야 하는 기둥 4129개 중 약 16%가 철근이 빠져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양주 회천지구의 아파트는 설계 오류로 기둥 154개 전체에서 보강 철근이 누락됐고, 양주 별내 아파트는 시공 과정에서 철근 126개가 빠졌다.
문제는 15개 단지 가운데 이미 입주가 진행된 곳이 5개 단지라는 점이다. 게다가 파주 운정 3지구 공공임대 아파트 단지에서는 '철근 누락'으로 보수 공사를 하면서도 '페인트 도색 보수 작업'으로 거짓 공지하는 등 입주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지난 4월 검단 신축아파트 공사의 설계·감리를 맡은 업체가 LH 전관이 영업하는 업체였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철근 누락이 확인된 15개 단지 중 절반이 넘는 8개 단지의 감리 업체도 전관 특혜 대상이었다.
이 가운데 3개 단지의 감리를 맡고 있는 한 감리 업체는 최근 5년 동안 LH로부터 730억 원이 넘는 계약을 수주했다. 지난 4월 발생한 인천 검단 아파트단지 주차장 붕괴사고, 그 아파트의 감리 업체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공익 감사 청구에 전관 특혜 의혹 일파만파 번져
경실련이 밝힌 2015~2020년 LH 설계용역 수의계약 536건, 건설사업관리용역 경쟁입찰 290건에 대한 수주 내용 분석에 따르면, LH 전관 영입업체 47곳이 용역의 55.4%(297건), 계약 금액의 69.4%(6582억원)를 수주했다. 결국 LH 출신을 영입한 건설업체들이 그동안 사업 수주 과정에서 혜택을 받았고 LH가 이들의 부실한 업무 처리를 방치하면서 붕괴 사고까지 발생했다는 것이 경실련의 주장이다.
경실련은 "국토교통부는 설계·감리·시공업자를 비난만 할 뿐 원인으로 충분히 지목될 수 있는 전관특혜 문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관 특혜 의혹이 제기됐을 초반, LH은 업계 구조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한준 사장은 "LH는 대한주택공사 시절부터 60년이 된 조직이라, 살펴보니 어느 업체를 선정하든 LH 전관들이 모두 들어가 있더라"며 "얼마나 많냐, 적냐의 차이다. 검단 아파트 설계·감리사의 경우 수주에서 탈락한 업체의 LH 출신 전관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특혜 의혹이 거세지자 자세를 낮췄다. 이 사장은 2일 서울지역본부에서 긴급회의를 갖고 "시공사, 설계사, 감리사까지 LH 사업에 참가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전관 목록을 모두 사업제안서에 기록해 제출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전관 업체에 감점을 주는 것은 형평성 상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전관이 없는 업체에 일정한 가점을 주는 방안도 현재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LH는 후속 조치로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건설 이권 카르텔과 부실공사를 근절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설계, 심사, 계약, 시공, 자재, 감리 등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관예우, 이권 개입, 담합, 부정·부패 행위 등을 끊어내겠다는 의지다.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앞서 LH는 지난해 12월 자체혁신안을 국토부 장관에게 보고하며 전관예우를 차단하겠다고 천명했다. LH 퇴직 감평사·법무사가 임원으로 재직 중인 회사 또는 퇴직자 본인과는 퇴직 후 5년간 수의계약 제한에 더해 LH 1급 이상 퇴직자가 취업한 건설·엔지니어링 회사와는 퇴직 후 1년 간 LH와 계약 자체를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7개월 만에 다시 전관예우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2년 전에도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하겠다"…결과는 철근누락
LH의 혁신이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특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각종 제도 개선 방안을 꺼내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병폐들이 등장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어서다.
불과 2년 전 LH는 내부 정보를 이용한 직원들의 땅 투기로 인해 존폐 기로에 선 바 있다. LH 일부 임직원들이 3기 신도시가 들어설 지역에 미리 땅을 사들이는가 하면 농지 불법 임대차를 통해 수익을 낸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땅 투기 사태 직후 취임한 당시 김현준 LH 사장은 "LH 전 임직원은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으로 환골탈태해 다시는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LH는 조직을 축소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아울러 전직원의 재산등록 및 직무관련 부동산 취득을 금지시켰다. 혁신 방안으로 제시한 추진 과제(정부 주도+LH 자체)만 123개에 달했다.
하지만 또다시 부실시공으로 문제가 불거졌다. 내부 혁신 작업이 제대로 작동된 것이냐는 비판과 함께 향후 개선안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 사장은 이날 개최된 긴급회의에서 "이번에 건설안전을 제대로 확립 못하고, 설계·감리 등 LH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특혜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LH의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고강도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다. LH는 다시 '혁신의 시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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