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누락 사태, `무량판`만 문제?
사고 발발해도 처분 감감무소식
사회적 악습이 안전불감증 키워
전문가 "위반땐 패널티 강력해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공공아파트의 철근 누락 단지 명단이 공개된 후 '무량판 구조'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붕괴에 취약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커지자 정부에서는 무량판 구조를 특수구조 건축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무량판 구조 문제가 아니라 설계나 시공상의 문제가 더 크다고 지적한다. 유사 붕괴 사고가 이어짐에도 관련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데다가, 사고 후 처분이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는 사회적 악습이 '안전불감증'을 키웠다고 것이다.
2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대부분의 아파트는 기둥 없이 내력벽으로 천장을 받치는 벽식 구조다. 벽이 하중을 지탱하기 때문에 내부 구조를 바꾸기 어렵고 바닥을 구성하는 콘크리트 층이 얇아 층간소음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무량판 구조는 보 없이 기둥이 바로 슬래브(콘크리트 천장)를 지지한다. 벽식 구조보다 층간소음에 강하고 기둥식(라멘) 구조보다 시공비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부각되며 LH도 2017년부터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조사 결과, 이번 사태는 구조 자체가 아니라 설계단계부터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량판 구조의 지하주차장 기둥에서 철근이 빠진 LH 15개 단지 중 10개 단지는 구조 계산을 잘못했거나, 구조 계산 결과를 설계 도면에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구조기술사가 구조계산서를 작성하면 설계사는 이를 넘겨받아 설계 도면을 그린다. 이 후 시공사는 설계 도면을 보고 시공을, 감리는 시공사가 도면대로 시공하는지 감독하는 수순인데 이 모든 단계가 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해 총체적 부실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철근 누락 사고는 간헐적이지만 꾸준히 발생해왔다. 그럼에도 재발하는 이유는 부실공사 관련 처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바로 작년 1월 공사 중 외벽 붕괴사고로 6명이 사망한 '광주 화정아이파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 국토교통부는 관계법령에 따라 가장 엄중한 처분을 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서울시의 행정처분은 1년 5개월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시 측은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며 아직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안 나온 상태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회도 손을 놨다. 광주 사고 전후로 시공사 부실공사 책임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긴 법안이 여러건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건설사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부실시공으로 영업정지나 과징금 처분을 받은 후 5년 내 다시 법령을 위반할 경우 3년간 시공사 등록을 제한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건설사 부실시공으로 5명 이상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를 등록말소 사유로 규정하는 개정안, 감리자의 시공관리·안전관리 의무 강화를 위해 주기적으로 실태점검 실시 내용이 담긴 주택법 개정안 등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전문가들은 단순히 규정 변경이나 제도 강화만으로는 한계 뚜렷하다고 입을 모은다. 적절한 설계와 그에 충실한 시공을 한다는 '원칙 준수' 유도에는 적합한 패널티가 필요하고,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비용 증가가 발생한다면 이를 공사비에 반영해야한다는 진단이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자재비 등 공사비 증가가 업계 현안인데, 모든 변수가 동일한 상황에서 업무만 늘어난다면 '원칙 준수'는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당연한 분석도 나온다. 표준형 공사비가 적용되는 공공주택의 건설 현장에서는 더더욱 원칙이 멀어질 가능성도 높을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다.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순히 규정이나 제도 강화는 실무기관의 업무량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사람들은 편법을 찾는다"며 "건설생산품의 품질확보와 현장안전에 필수불가결한 사안이라면 이를 사회적 비용으로 인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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