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5평 원룸인데 저 사람은 어떻게 살지?
스마트폰 한 대와 삼각대 한 개 그리고 짐벌(영상을 찍을 때 흔들림을 줄여주는 장치) 한 개.
구독자 61만 명, 누적 조회수 3억 회를 넘긴 인기 유튜버의 촬영 장비치고는 소박해 보였다. 2023년 6월8일 저녁 서울 강서구에 있는 이지수(22)씨 집에서 진행된 유튜브 채널 <자취남> 촬영 현장을 방문했을 때다. 인원도 간소했다. <자취남> 운영자 정성권(32)씨, <자취남> 영상에 출연하겠다고 신청한 이날의 ‘룸메’(룸메이트의 줄임말로, 자취남이 구독자를 부르는 애칭) 지수씨 그리고 기자.
첫 만남인데 집을 방문하려니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커피를 샀다. 성권씨도 선물을 준비했다. 지수씨는 식탁에 음료와 과자를 보기 좋게 내놓았다. 겉보기엔 집에 친구들을 초대한 모양새다. <자취남>은 1인가구 자취방 위주로 ‘온라인 집들이’ 같은 영상 콘텐츠를 만든다. 성권씨가 ‘룸메’의 집 곳곳을 함께 둘러보며 집 위치와 시세, 가구, 생활용품, 공간활용법 등 집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자취남 영상 보고 이렇게 했어요”
촬영이 시작되자 ‘소박한’ 장비와 인원의 장점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자발적으로 출연 신청은 했지만, 촬영에 익숙하지 않은 룸메가 촬영 중임을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붓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자취남>을 구독한 지 2년쯤 됐다는 지수씨는 “올해 이 집으로 이사할 때 고려한 것 중 ‘<자취남> 채널에 나오려면 어떻게 하면(집을 꾸미면) 좋을까’가 포함됐다”며 웃었다.
“자취남 영상에서 보고 이렇게 했어요”는 룸메들의 단골 멘트다. 일종의 ‘자취남-룸메 커뮤니티’를 이루는 것이다. 2~5평 원룸은 물론 20평 한옥, 120평 돌담집에 사는 1인가구, 수도권 바깥 지역 곳곳의 1인가구와 프랑스·홍콩·영국 등 국외에 머무는 1인가구, 한국에 사는 외국인 1인가구 등이 <자취남> 채널에서 연결된다. 구심점은 역시 자취남, 성권씨다.
성권씨는 2020년부터 최근까지 700곳이 넘는 1인가구의 집을 방문했다. 채널 운영 초기 회사일과 유튜버를 병행하던 그는, 2021년 “유튜브 수익이 회사 월급의 세 배를 넘어섰을 때” 퇴사하고 전업 유튜버가 됐다. 2022년 1인가구를 방문하며 느낀 점을 모아 에세이집 <자취의 맛>(21세기북스)을 냈고, 네이버 카페 ‘1인가구 연구소’도 열었다. 집을 찍는 사람의 집은 어떨까. 2023년 7월5일 서울 여의도동 한 오피스텔에 있는 성권씨의 ‘사무집’(사무실+집)에서 후속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집의 월세가 무려 300만원이다. 사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믿겨지지가 않는 금액이다. 0이 하나 더 붙은 것 같은데? 다만 이번에 이사한 집에는 확실한 정체성을 부여해봤는데, 바로 ‘사무집’이다. (…) 퇴사를 하고 유튜브를 전업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집이 곧 일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집이자 사무실로서 300만원의 말도 안 되는 월세를 내는 게 아주 말이 안 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취의 맛> 중에서
―올해 결혼하고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신혼집을 마련했다는 집들이 영상을 봤어요. 하지만 이곳도 여전히 ‘사무집’이라고요.
“네. 이곳이 좀더 사무실화하긴 했지만, 두 곳 다 집입니다. 이곳에는 일주일 중 2~3일 정도 머물러요.”(참고로 그는 2021년 10월부터 결혼한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는 <유부남> 채널도 함께 운영 중이다.)
―유튜브 채널 이름은 처음부터 ‘자취남’이었나요.
“처음엔 ‘앱(애플리케이션)을 추천하는 남자’를 줄인 ‘앱추남’이었어요. 당시 모바일 마케팅 회사에 다녀서, 직업과 연관시킨 거죠. 아무래도 각이 잘 안 나와 자취남으로 바꿨어요. 태어나서 줄곧 가족과 서울, 경기도의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그때 처음 자취를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밥솥이 필요한가, 즉석밥만 사먹어도 되나’ 같은 자취 초보자가 궁금해할 만한 정보를 구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초기에는 자취와 관련한 여러 정보를 제공하는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어디서 이런 사람을 찾았지? 모두 자발적 신청자들
―타인의 집을 방문하는 ‘랜선 집들이’를 채널의 주요 콘텐츠로 삼은 계기는 아무래도 조회수 영향이 클까요. 성권씨의 첫 자취집인 복층 오피스텔의 장단점을 소개한 영상(2019년 2월4일 공개)과 친구 자취집을 찾아간 영상(2020년 8월3일 공개)의 조회수가 다른 초기 영상보다 높더라고요.
“맞아요. 사실 처음부터 잘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사적 공간인 남의 집을 본다는 것, 남들은 어떻게 사나 보는 것 자체가 재밌잖아요. ‘나랑 같은 5평 원룸인데 저 사람은 어떻게 살지?’ 이런 게 궁금하고요. 또 당시만 해도 연예인 아닌 사람이 집을 영상으로 공개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많이들 봐주신 것 같아요.”
“서로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 1인가구 자취인들이 사실은 서로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고 또 내 이야기를 꺼내어 나누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처럼 서로와 연결되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으로 내 집에 초대하고 또 다른 사람의 집을 구경하는 것이 아닐까. 열 마디 말보다 눈빛이 더 많은 말을 담고 있을 때가 있는 것처럼, 때로는 홈(home)을 통해서 우리가 백 마디 천 마디의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자취의 맛> 중에서
원룸에 전기 벽난로를 설치한 1인가구, 평상을 쓰고 싶어 그 아래 침대를 수납한 1인가구,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실천하며 이사할 때 비닐봉지만으로 짐을 옮겼다는 1인가구…. <자취남>에는 별의별 1인가구와 집이 등장한다. 대체 어디서 이런 사람과 집을 찾아냈을까 궁금해지는데, 모두 자발적 출연 신청자다.
채널 운영 초창기 지인을 섭외한 일도 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내 집을 공개하겠다’는 구독자의 참여 신청만으로 운영이 가능해졌다. 신청 건수는 “촬영 건수의 4~5배수가량 안정적으로 들어온 지 2년 정도”라고 했다. <자취남> 채널에는 주 4~5회씩 새 영상이 공개되니, 한 달에 100여 통에 이르는 신청 전자우편이 접수된다는 뜻이다.
구독자들의 신뢰는 자취남이 타인의 집, 특히 1인가구를 대하는 ‘태도’에서 쌓여온 바가 크다. 성권씨는 영상 제작 초기부터 “자극적·선정적 콘텐츠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제가 개인적으로 그런 유의 콘텐츠를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제 채널 브랜딩의 문제라고도 생각했어요.” 그는 “그냥 사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간극장> 같은 콘텐츠를 지향한다”고 덧붙였다.
성권씨는 <자취남>을 운영하며 “1인가구에 대한 여러 사회적 편견을 깨게 됐다”고도 말한다. 자취집은 나이 어린 사람들이 잠시 ‘거쳐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월세나 전세, 즉 ‘남의 집’인데 왜 굳이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느냐, 나중에 결혼하면 좋은 거 살 텐데, 지금은 대충 싼 거 사서 쓰지’ 같은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모양은 각기 다르고, 집은 1인가구가 주변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것들로 채울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여겨서다.
열심히 살았던 공간의 기록
성권씨는 언뜻 보기에 원룸, 오피스텔, 빌라 등 획일화된 1인가구 주거공간에 “누가 사느냐에 따라 다른 색깔이 입혀진다는 사실이 매번 흥미롭다”고 했다. “이 공간에 대해 더 말씀해주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그가 촬영 현장에서 룸메에게 여러 차례 물은 말이다. 거주자의 손길이 닿은 어디든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의 질문이었다. 룸메들의 집 이야기에는 그의 인생관, 우선하는 가치, 생활의 지혜 등이 주렁주렁 엮여 나왔다.
―최근에 만난 인상 깊은 룸메를 소개해주세요.
“50대 1인가구의 집을 찍었는데, 이분이 20여 년 전과 현재 자취·1인가구를 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과거에는 청년일 때도 혼자 사는 걸 주변에 말하기 쉽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고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요. 여전히 1인가구라고 하면 어리거나 젊은층이 많은 것 같고, 스팸이나 참치캔 같은 걸로 밥 먹는 ‘짠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제는 사회에서 그 비중이 워낙 늘기도 해서 하나의 가구로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싶었어요. <자취남> 신청자도 여전히 20~30대가 많지만 40~50대 중년층이 늘고 있고요. 또 1인가구지만 집에 4인용 전자동 마작 테이블을 들인 분이 기억나요. 이 집에는 전자 다트보드, 레이싱 시뮬레이터 등 정말 다양한 물건이 있어서 제가 ‘혹시 (집에) 더 놓을 게 있나요’ 물어보니, 자신은 거의 ‘완성형’이라고, 취미 탐색을 많이 했다고 답했어요. 집을 ‘자기 취향을 쌓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줬죠.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게 1인가구의 집인 것 같아요.”
―청년 출연자 가운데는 ‘지금 사는 집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신청 동기가 많아 보여요.
“영상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예전에 살던 집에서 찍은 사진을 발견하면, 당시 추억이 떠오르면서 향수를 느끼잖아요. 영상은 그런 기억을 더 생생하게 남길 수 있죠. 특히 자기 인생에서 정말 열심히 살았던 공간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분도 많아요.”
하우스에 사시나요, 홈에 사시나요
―1인가구의 집을 수백 곳 다니며, 하우스(House)와 홈(Home)의 의미를 구별하게 됐다고요.
“집은 기본적으로 건축물, 하우스로 존재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온기를 불어넣으면 홈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제 경험상, 대체로 집을 홈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하우스로 보는 분보다) 더 행복해 보여요. 집을 부동산으로 보는 분들은 공통적으로 쓰는 단어가 있더라고요. ‘호재’(시세 상승 요인), ‘상급지’(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지역) 같은. 그런데 강이라면 상류와 하류가 있겠지만, 집을 상급지로 옮긴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느 상급지까지 옮겨야 만족할 수 있을까요. 최근에 만난 룸메분이 떠오르는데요. 5평 원룸에 사는데 본인 집에 ‘하프(Half) 하우스’라는 애칭을 붙였더라고요. 물건이 많아서 냉장고·세탁기·화장실 등의 문이 다 반만 열리는 상황을 유쾌하게 받아들인 거예요. 집 곳곳에 애정이 가득했어요. 집을 홈으로 여기는 대표적인 분이었죠. 영상을 본 사람들도 함께 행복해졌어요.”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특별한 변신, 한 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통권호를 아홉 번째 내놓습니다. ‘21이 사랑한 작가 21명’,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비거니즘의 모든 것, 비건 비긴’(Vegan Begin) 등에 이어 ‘집’을 열쇳말로 삼았습니다. 한옥, 농막, 협소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집에 깃든 사연, 반려동물을 위한 집, 미니멀리즘 등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담은 집 이야기를 다룹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다양한 집의 존재 이유와 미래 전망도 더했습니다. _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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