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경제] 소니 제친 1등 삼성이 "부인"빼고 다 바꾸라던 이것...?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00~16:00)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방송일 : 2023년 8월 2일 (수요일)
■ 대담 :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생경제] 소니 제친 1등 삼성이 "부인"빼고 다 바꾸라던 이것...?
-이병철은 자본축적, 이건희는 사업 다각화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신경영 질적 경영 선언
-이재용 선택 갈림길?...게임의 룰 창조 기업 vs. 굿 플레이어
◇ 박귀빈 아나운서(이하 박귀빈)> 기업의 흥망성쇠, 기업의 생존을 이끄는 것은 사람입니다. 기업과 사람을 이끄는 생생한 기업 이야기를 만나는 시간, 리더스 인덱스 박주근 대표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 (이하 박주근)> 네, 안녕하세요.
◇ 박귀빈> 오늘 삼성의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할 텐데요. 지난주에 삼성의 시작이 어땠나 이야기를 시작하고 아주 아쉽게 그 시간을 첫 번째 시간을 마무리 했었어요. 삼성의 창업 이야기를 한번 정리를 해보면 이병철 창업주가 1938년에 대구에서 세운 삼성상회가 그 시작이었죠. 그런데 본격적인 출발은 1948년이라고 하셨어요. 삼성물산으로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최고 꼭대기에 삼성물산이 있는 것이다. 이런 말도 덧붙여주셨던 기억도 나고요. 이병철 회장이 창업주신데 경영 스타일을 뭐라고 그때 설명을 해주셨냐 하면 철저하게 자본을 축적해서 기회를 보면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고 도전하고 이런 스타일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1987년까지 삼성을 경영을 했는데 그러니까 이 얘기는 곧 1987년부터 2세 경영이 시작됐다는 거네요. 그리고 바로 이건희 회장이 2세 경영을 시작을 한 거예요. 오늘은 이제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을 해볼 텐데 지난번에 이병철 창업주의 이야기를 해주시다가 자녀들이 좀 많으셨어요. 그런데 제가 그 이후에 좀 찾아보니까 모두 3남 3녀이시더라고요. 제가 인터넷 자료를 본 거니까. 그런데 그중에 다섯째이면서 세 번째 3남이 이건희 회장이세요. 그래서 제가 여쭤보고 싶은 건 그렇다면 위에 두 분의 형님이 계셨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세 번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이 물려받았어요. 그 과정이 참 궁금합니다.
◆ 박주근> 원래 첫째가 이맹희 CJ그룹의 회장이죠. 그리고 둘째가 있었는데 새한그룹이라고 해서 옛날 새한미디어 생각 나시나요?
◇ 박귀빈> 네, 맞아요. 그때도 언급해 주셨고 저도 새한미디어는 들었던 기억이 나는 것 같아요.
◆ 박주근> 그리고 셋째가 이건희 회장이고 원래 제일 큰 딸이 있고요.
◇ 박귀빈> 중간 중간에 따님들이 계시더라고요.
◆ 박주근> 한솔그룹이 큰 딸이고 그다음에 신세계 그룹, 이건희 회장의 동생이고 그렇게 되는 거죠. 그리고 딸 중에 하나는 LG가와 사돈을 맺죠. 그래서 당시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렸지만 지수초등학교 동문이잖아요. 이병철 회장과 엘지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요.
◇ 박귀빈> 그분 말고도 더 계시지 않았어요?
◆ 박주근> 효성그룹의 조홍제 회장, 지수초등학교의 동문이신데 당연히 동네니까 서로 알 거 아닙니까? 그래서 사돈을 맺어서 나름 끈끈한데 언제 깨졌느냐. 삼성전자가 창업하면서. 원래 LG전자가 가전을 맞고 있었는데 사돈까지 맺었는데 경쟁자가 된 거죠. 그 뒤로 LG와 삼성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 박귀빈> 그럼 삼성전자는 또 언제 생겼나요?
◆ 박주근> 1960년대에 생긴 거죠. 그러면 왜 셋째냐.
◇ 박귀빈> 그러니까요. 이건희 회장이 3남인데 위에 두 분의 형님을 제치고, 제치고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병철 회장의 후계자가 됐어요.
◆ 박주근> 그렇죠. 조선 시대에 왕이 27대 왕까지 있잖아요. 그중에서 장자가 왕을 몇 분 한 줄 아세요? 세 분입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장자라고 해서 모든 게 다 되는 건 아니고 이맹희 회장이 처음에 눈에 난 것은.
◇ 박귀빈> 첫째 아들이죠.
◆ 박주근> 첫째 아들의 눈이 한 것은 이병철 회장이 밀수 사건에 걸립니다. 사카린 밀수라고 해서 옛날에 설탕 밀수. 그때 아마 이맹희 회장이 처신을 이병철 회장에게 잘 마음에 들지 않게 해서 눈 밖에 난 걸로 재계의 많은 역사들은 기록하고 있고, 둘째 새한미디어를 만든 분은 경영 능력 자체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 박귀빈> 경영 능력 자체를 아버지께 인정 못 받았고요.
◆ 박주근> 그런데 이건희 회장은 사실은 일종의 잠룡이었죠. 그러니까 저는 누구와 비교를 하냐 하면 세종대왕하고 비슷하게 비교해요. 어린 시절을 보면, 왜냐하면 세종대왕이 당시에 형님을 제치고 왕위를 차지할 거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잖아요. 샌님이었잖아요. 책만 읽고.
◇ 박귀빈> 완전히 선비 스타일이었던 걸로 드라마에서 그렇게 그려지더라고요.
◆ 박주근> 발톱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그렇죠. 이건희 회장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영화에만 빠져 있고 부수고 조립하고, 일종의 일본에 보면 덕후라고 그러죠. 덕후 같은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 박귀빈> 어떤 한 분야에 몰입하고 빠져드는.
◆ 박주근> 그래서 이병철 회장이 처음에는 전혀 발톱을 드러내지 않았죠. 왜? 형님이 두 분 계시니까. 그리고 일본에서 게이오대를 나오고 일본에서 공부를 했고 영화광이었고, 그래서 제일 처음에는 지금 JTBC의 전신이었던 방송사를 시작하죠. 동아방송. 영화 사업을 시작하고 그게 현재 CJ미디어 전신이 되는 거죠.
◇ 박귀빈> 그러니까 맨 처음에 이건희 회장이 관심 있는 분야도 방송 미디어 그쪽 분야였군요.
◆ 박주근> 그래서 중앙일보 홍 씨 일가와 사돈 간이 되는 거죠. 홍라희 여사. 그런데 중앙일보의 홍 회장이 사람을 잘 본 거죠. 그러니까 세종대왕도 결국에 왕을 누가 시켰느냐? 처갓집에서 보고 시킨 거잖아요. 비슷한 걸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가 됐는데 실제로는 경영에 뛰어든 것은 1970년대 후반에 뛰어듭니다. 반도체를 같이 시작했다고 보면 됩니다.
◇ 박귀빈> 1970년대 중반이 넘어서야 실질적인 경영에 뛰어든 거예요.
◆ 박주근> 삼성의 역사를 크게 보면 이렇게 나눌 수 있어요. 이병철 회장은 두 단계를 나눌 수 있는데 이병철 회장의 첫 번째 사업 단계는 자본 축적기라고 말씀드리고 두 번째 단계는 사업 다각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게 이병철 회장이 한 삼성의 역사고 이건희 회장은 다각화된 삼성 사업 중에서 경쟁력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골라내서 잘 키운 사람.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겠죠. 아버지 이병철과 아들 이건희는 공유 기간이 있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 그러니까 아버지가 많이 축적하고 벌렸다면 1980년대 들어서면서 그때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기 시작하면서 글로벌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펴기 시작한 게 이건희 회장의 시대가 된 거고.
◇ 박귀빈> 선택과 집중을 했다고 보면 되겠네요.
◆ 박주근> 그렇죠. 그래서 많이 벌려놓은 사업 다각화를 이건희 회장 때 와서 몇몇 분야, 우리가 정말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을 하자고 정리하는 시기가 이제 이건희 회장의 시대가 된 거죠.
◇ 박귀빈> 그렇군요. 그래서 2세 경영을 시작을 했고 197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그 전에는 형님도 경영을 했었고 둘째 형님도 새한그룹 이런 거 하셨었고, 그러면 이건희 회장은 영화에만 빠져 있고 그 외에 경영에는 전혀 손을 안 댔던 거예요?
◆ 박주근> 그렇죠. 그러다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면서 일본에서 공부를 했고 하니까. 이병철 회장 눈에 든 거죠. 그래서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후계자 작업을 시작했고 1987년도에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이 돌아가시면서 바로 회장으로 취임을 하게 된 거죠.
◇ 박귀빈> 1987년도에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2대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을 했는데 그런데 그 전에 이건희 회장이 삼성물산 부회장이기도 하고 그러지 않았어요?
◆ 박주근> 부회장으로 앉혔죠. 이미 후계자로 정하고 나서죠. 벌써 이맹희 회장은 후계자에서 탈락을 한 게 된 거고 정하고 나서 이병철 회장이 타결을 하게 된 거죠.
◇ 박귀빈> 그러면 이건희 회장이 1987년에 삼성을 물려받아서 2세 경영이 그때부터 시작이 되는데. 아까 말씀하시기를 여러 개 쭉 벌려져 있는 다양한 사업 중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서 크게 키웠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면 그때 계열사도 만들고 인수합병도 하고, 이런 과정을 거쳤겠네요?
◆ 박주근> 그렇죠. 굉장히 계열사가 많았죠. 그러니까 다각화를 시켜놨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계열사가 많은 것을 가지고 이건희 회장이 회장에 취임하고 1987년도에 딱 보니 한 5년간을 침묵했습니다.
◇ 박귀빈> 회장 취임하고 나서요?
◆ 박주근> 그렇죠. 1987년 12월에 취임을 하고 우리가 잘 아는 1993년도에 프랑크푸르트 선언. 거의 5년이죠. 그러니까 거의 5년 동안 침묵을 하다가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토해내기 시작하죠. 본인의 철학들을.
◇ 박귀빈> 그러면 취임 후에 5년간은 특별하게 경영해서 어떤 변화를 꾀한다거나 혁신적이고 적극적인 경영은 없었지만 그때는 그냥 묵묵히 해오던 대로 하다가 지켜보면서.
◆ 박주근> 네,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카운셀러도 받고 특히 대학도 일본에서 나오고 일본에서 살다 보니까 일본 쪽의 카운셀러를 많이 받습니다. 리포트를 받고 그러면서 나름대로의 특단의 결정을 하고 그 결정한 사항들을 공유한 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고 하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된 거죠.
◇ 박귀빈> 그러니까 이건희 회장이 이끄는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의 삼성이 어땠는지를 쭉 이야기를 해볼 텐데 방금 말씀하신 1993년도에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삼성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꼽힌다고 하더라고요. 이때 바로 신경영의 선언이 이루어진 거다라고 표현을 하던데, 이 얘기를 좀 해주세요.
◆ 박주근> 그러니까 이병철 회장이 두 큰 단계, 자본 축적의 시기와 사업 다각화 시기를 거쳐서 어느 정도 토대를 마련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막상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가 1988년 올림픽을 기억하시면 사실 올림픽이라는 게 우리나라 경제사의 국제대회를 유치한 것도 있지만 산업경제사회적으로 보면 도매스틱 경제에서 글로벌하게 넘어가기 시작하는 그런 중요한 단초를 시작한 것이거든요. 그리고 90년대에 또 하나의 자본 시장에서의 변화는 뭐냐 하면 전두환 시절이었던 1980년대만 해도 정부 주도의 경제 구조였어요. 우리가 옛날 기억하시면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거 기억하시죠? 그런 시대였다면 1990년대, 올림픽 이후에 넘어가면서 기업들이 자본력이 정부보다 커지기 시작합니다. 민간 기업들이 정부의 컨트롤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1990년대, 김영삼 정부 때부터. 1993년이 딱 그때거든요. 그러면 그 당시에 많은 기업 경영인들은 글로벌하게 가서 살아남아야 살아남는 걸 알고 있어요. 지금은 그걸 당연시 하지만 그때만 해도 글로벌 기업들과 우리가 경쟁을 해? 그런 시대였어요.
◇ 박귀빈> 좀 막막했을 것 같아요.
◆ 박주근> 그러니까 이건희 회장이 쭉 돌아보니까 예를 들어서 미국에 패스트바이를 가니까 소니 제품들은 유리 상자 안에 예쁘게 손도 못 대게 들어가 있는데 삼성전자 제품들은 매대에 싸구려로 먼지가 쌓여있고, 이런 걸 본 거죠. 그리고 세탁기 문이 안 닫힌다든지 그런 걸 본 거예요. 그러니까 크게 비유하자면 선대 이병철 회장이 다각화를 통해서 양적으로 늘려놓은 것을 질적 경영으로 바꿨다. 양적 경영에서 질적 경영으로 바뀐 게 어떻게 보면 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가장 큰 의미다. 그 질적 경영을 통해서 삼성그룹이 글로벌한 기업으로 갈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그래서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에 그렇게 우리가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박귀빈> 이 당시를 핵심 단어로 설명을 한다면 이게 '혁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더라고요. 아까 잠깐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말이거든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저는 이게 어디서 나온 말인가 했더니만 이건희 회장이 한 말씀이거든요. 다 바꾸자, 혁신하자. 그걸 선언한 것이 프랑크푸르트 선언, 그 이후에 진짜 많이 바뀌었어요?
◆ 박주근> 삼성이 많이 바뀌었죠. 예를 들어서 그때 유명한 사건이 화형식도 있었죠. 우리가 애니콜을 기억하시죠? 1995년도에 당시에 삼성 핸드폰 공장은 구미에 있었거든요. 애니콜 신화, 불량이었는데 불량 제품뿐만 아니라 신제품까지 불량 제품을 다 운동장에 모아놓고 전 사원이 보는 앞에서 불을 지르는 화형식.
◇ 박귀빈> 왜요?
◆ 박주근> 그러니까 우리가 못 만들면 이렇게 된다. 충격 요법도 줬고, 그리고 그 당시에 반도체가 1990년대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는 시기였어요. 그러니까 지금의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매출원인 스마트폰 사업부와 반도체 사업부가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맞물리면서 급성장하게 되는 단초를 한 거죠. 그런데 이건희 회장의 이 신경영 선언은 사실은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것은 이게 나름대로 본인의 회고록들을 읽어보면 결국에는 기업을 혁신하는 건 사람이다 라는 데에 초점이 가 있어요. 사람을 바꾸려면 뭘 바꿔야 되느냐? 본인 스스로가 바뀌지 않으면 위기감이 없으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라는 철학이 깔려 있어요. 그래서 위기감을 어떻게 고조시키느냐에 대한 항상 경영 포커싱이 가 있던 분이 이건희 회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의 어록들을 보면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2015년 쓰러질 때까지 중요한 자리에서는 항상 위기론을 가져왔습니다.
◇ 박귀빈> 안일해지지 않도록.
◆ 박주근> 삼성이 1등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위기론이었어요.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1등 제품들은 10년 있으면 다 사라진다라든지, 안주. 또 유명한 말이 정치는 몇 세대, 교육은 몇 세대, 기업은 몇 세대 이런 얘기까지 하고요. 그런 이건희 회장의 어록을 보면 위기론이 왜 중요하냐. 위기론은 결국에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인간 스스로 바뀔 수가 있고 바뀐 사람이 혁신을 일으킬 수가 있고 그 혁신이 결국에는 기업을 바꾼다. 이 이론이 경영 철학에 깔려 있는 거죠. 그래서 그 의혹들을 보면 그런 것들이 계속 녹아 있어서 삼성의 신경영 선언이 올해가 30주년이거든요. 1993년이니까요.
◇ 박귀빈> 그러네요. 올해가 30주년이네요?
◆ 박주근> 6월이 30주년이었단 말이에요.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신경영 10주년, 20주년 때 어록들을 찾아보면.
◇ 박귀빈> 그때는 이건희 회장이 있을 때죠?
◆ 박주근> 다 위기론이었어요. 항상 메시지를 남겼을 때 항상 위기론이었습니다.
◇ 박귀빈> 안주하지 말아라.
◆ 박주근> 그렇죠. 왜 그런 말을 많이 했느냐 보면 결국에는 1993년도에 프랑크푸르트 선언하고 일맥상통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 박귀빈> 그렇군요. 그러니까 혁신의 동력으로 항상 위기의식을 강조했던 경영 철학, 그리고 그것이 대체적으로는 사원들이나 전체적인 그룹 내에 큰 영향력을 미쳤나 봐요?
◆ 박주근> 인재론도 굉장히 삼성에서 중요하거든요. 인재 제일, 이건 사실 이병철 회장의 경영 철학이었는데 이병철 회장의 경영 철학은 이런 어록이 있죠. 사람을 의심해라. 대신 채용한 사람은 의심하지 마라.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어라. 이게 인재 제일 원칙이었는데 그래서 이건희 회장도 보면 1등 인재를 항상 강조했죠. 이건희 회장의 시대는 결국에는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일으켰던 자본 축적 사업 다각화를 글로벌 경쟁력으로 만들었고, 그 역할은 분명한 거고 그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시켰던 원인은 뭐냐? 위기론 경영이다. 이렇게 추측할 수 있죠.
◇ 박귀빈> 그래서 1997년에 IMF 외환위기도 그런 마음으로 고비를 넘겼겠군요.
◆ 박주근> 그렇죠.
◇ 박귀빈> 위기의식을 항상 강조하셨고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 2016년 기준으로 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도 조금 더 큼직큼직하게 4개 분야로. 전자 부문이라든가 금융, 중공업, 건설, 서비스 부문 이렇게 4개 분야로 나누어지고 그랬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2000년대에 2세대 경영이 마무리가 되는 거잖아요. 2000년대 특징적인 이슈 같은 걸 좀 잠깐 짚어주신다면요?
◆ 박주근> 2000년대에는 특히 2000년대 중반을 넘으면서 넘어서면서 우리나라 경제 구조 자체가 삼성이 굉장히 많이 공을 세운 게 뭐냐 하면 그전까지의 경제 구조는 패스트 팔로우 경제였어요. 패스트 팔로우. 그러니까 뭐냐 하면 우리는 늘 글로벌 탑1들이 있었죠. 모든 분야에. 그래서 우리는 쟤들을 얼마나 빨리만 따라가면 된다는 경영론이 대부분을 우리나라에 차지했습니다.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들도. 그래서 패스트 팔로우의 경영론은 딱 전략이 한 가지예요. 최소의 인력을 넣고 최고의 효과를 내면 되는 거죠.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밤새고 군대처럼 일하고, 이런 전략이었죠. 지금도 윗세대 분들은 상사 퇴근하지 않으면 퇴근 못 하는 거고, 이런 식의 분위기가 있죠. 그 당시 유명한 일화가 진대제 전 장관이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6MB D-RAM 개발할 때 16km를 전 사원이 행군을 했답니다. 그 정도로 일사불란하고 왜냐하면 운영 효율을 극대화시켜야 되니까. 그런데 2000년 중반이 넘어서면서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 삼성이 하나둘씩 글로벌 탑1에 자리에 가기 시작합니다.
◇ 박귀빈> 부문별로.
◆ 박주근> 그렇죠. 패스트 팔로우일 때와 이미 글로벌 탑1으로 갔을 때는 전략은 달라지죠.
◇ 박귀빈> 말씀 들으니까 그게 생각나요. 삼성전자 지금이 세계 탑이잖아요. 그런데 예전에 우리 한참 워크맨이라고 하고 이런 거, 소니에서 나오고 그런 전자제품들 학생 때도 많이 가지고 다니고 했었어요. 그래서 예전에 삼성전자가 소니 따라잡기, 이런 것도 많이 했었죠. 그런 얘기 언뜻 들었던 것 같고 또 이건희 회장이 일본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니까. 그런데 지금 소니를 삼성전자가 다 이겼죠?
◆ 박주근> 제가 1990년대 말부터 대기업 생활을 했었는데 제가 전에 LG에 있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소니나 일본 기업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2006년 이때 동경에 출장을 가면 동경 서점에 같은 데 가면 이미 삼성 책이 깔리기 시작했죠. 그리고 일본에 있는 상사 직원들이 저를 보면 삼성이 대단하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2천년 후반 때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영업이익 10조를 돌파하기 시작했거든요. 일본은 상상을 못했던 거죠. 그만큼 한 거고,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죠. 그러니까 이건희 회장이 그만큼 끌어올렸다면 3세가 됐잖아요. 2015년에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나서 3세 이재용 회장이 실질적으로 경영을 하기 시작하고 회장은 작년에 됐지만 그다음 길을 지금은 아직까지 명확하지가 않은 것 같아요.
◇ 박귀빈> 그렇습니까? 지금 말씀하셨어요. 삼성, 지금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대 총수이고 작년 10월에 취임을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삼성의 어떤 경영의 메시지라든가 이런 게 저도 사실 기억은 나지 않아서요.
◆ 박주근> 그러니까 이건희 회장이 1987년 12월에 회장되고 약 5년 후인 1993년 6월에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을 했단 말이에요. 2015년에 실질적으로, 물론 최순실 사건도 있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도 있어서 법정 구속도 많았지만 회장이 되고 나서도 그리고 지난 6월이 신경영 30주년인데도 불구하고 침묵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재용 회장이 아직까지 구체적인 경 전략이나 본인의 경영을 아직까지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할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이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놓고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이 글로벌 넘버원으로 만들어 놓고, 이미 그러면 패스트 팔로우에서 글로벌 넘버1이 됐을 때는 고지가 없잖아요. 패스트 팔로우일 때는 고지가 보이니까 열심히만 가면 되는데 이제는 고지를 우리가 만들거나 새로운 고지를 찾거나 해야 하는 사업의 환경에 놓여 있는 거죠. 그런데도 메시지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삼성전자의 주력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했었던 반도체, 스마트폰에 매몰되어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고 그에 대한 새로운 길도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어쩌면 이재용 회장의 딜레마이고 가장 큰 숙제일 것 같습니다.
◇ 박귀빈> 그렇군요. 앞으로 삼성은 향후 5년간 미래 먹거리, 신성장, IT 집중 투자해서 일자리 창출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산업 생태계 육성을 중점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고 하는데 앞서 이건희 회장이 경영 승계를 하고 나서 5년간 침묵한 후에 혁신적인 경영 선언을 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 과정은 아닐까, 이런 생각도 잠깐 해보긴 하는데 앞으로 삼성의 미래 전망을 해주시거나 아니면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기대의 조언 한 말씀을 주면 좋을 것 같아요.
◆ 박주근> 삼성은 지금 굉장히 중요한 갈림길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서 제조업을 가장 잘하는 기업입니다. 글로벌하게 스마트폰 잘 만들고, 반도체도 잘 만들고. 지금은 기술적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그냥 제조만 잘하는 기업으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글로벌한 플랫폼을 가지고 헤게모니를 하나 쥐고 게임의 룰을 만드는 기업으로 갈 것이냐 혹은 그냥 굿 플레이어로만 살아남을 것이냐. 이런 갈림길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갈림길에서 총수인 이재용 회장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 서있지 않나, 저는 생각합니다.
◇ 박귀빈> 알겠습니다. 기업 생생스토리, 지난주 그리고 오늘까지 2주 동안 삼성, 범삼성. 삼성의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앞으로 이 시간 대표님과는 물론 한 기업을 정해서 이렇게 해보기도 하겠지만 그때 어떤 기업들의 이슈, 뉴스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또 이런 기업들 이야기를 또 하게 될 기회가 있을 겁니다. 다음에 또 이야기를 기대해보고요. 오늘은 대표님과 이만 인사드리죠.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김우성 (wskim@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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