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과 유아어라는 차별
[똑똑! 한국사회]
[똑똑! 한국사회] 조기현 | 작가
누군가 나에게 동의 없이 반말을 하거나 하대하는 말투를 쓴다면, 불쾌함을 표하며 말투를 정정할 것을 요청하겠다. 많은 이들이 나에게 계속해서 반말이나 하대하는 말투를 쓴다면 어떨까. 처음에야 뭐라고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 스스로 반말이나 하대하는 말투를 들어도 되는 존재라고 여기지 않을까.
얼마 전, 치매 관련 행사에서 마주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치매가 있는 시민들이 진행을 돕고 선물을 챙겨주는 행사였다. 인지가 조금 불안정해도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뜻깊은 자리. 행사의 중반이 넘어갈 무렵,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객석에 앉아 있던 치매 어르신들이 밖으로 나가야 했다.
“자, 자,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나갑시다. 조심, 조심, 발 조심, 발 조심, 그렇지.”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들을 통솔하는 듯한 사회복지사의 말이 행사장에 퍼졌다. 통솔에 잘 따르는 치매 어르신들의 모습에 행사장에 있던 몇몇 이들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쩐지 나는 과하게 아이를 대하는 듯한 말이 못내 거슬려서 웃지 못하던 참이었다. 치매 어르신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을 향하는 웃음 사이에서 그들만이 웃지 않고 있었다. 사회복지사의 말투 탓일까, 웃음의 대상이 된 탓일까, 인지가 저하돼서 느려진 반응 탓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르신들이 모멸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아이처럼 대하는 듯한 말투를 ‘유아어’라고 한다. 유아어는 반말과 함께 인지가 저하되거나 신체 돌봄이 필요한 노인에게 자주 쓰인다. 그날 행사에 웃음을 만들어낸 요인은 이 유아어의 사용이었다. 이미 노인돌봄 분야에서는 이런 말투가 문제적임을 모르지 않는다. 중앙치매센터의 치매 가이드북이나 요양보호사 직업교육을 살펴보아도 ‘지나치게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것을 조심’하라거나 ‘어르신을 차별대우 또는 무시하는 태도’를 삼가자는 내용이 다뤄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주 쓰인다. 왜 그럴까?
반말이나 유아어는 별 고민 없이 관습적으로 쓸 수도 있고, 친밀함의 표현으로 쓸 수도 있다. 실제로 메시지의 전달력을 높이는 기능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말투가 치매 당사자와 관계에서 합의됐거나 동의될 만한 것인지, 왜 돌봄받을 때 그런 말투를 듣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지 짚어봐야 한다. 돌봄을 받을 때는 그런 말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주변 돌봄자들에게 반말이나 유아어에 대해 물었다. 요양병원이나 주간보호센터에서 친근한 반말, 무례한 반말, 지나친 유아어 등을 들었지만 조용히 넘어간 경험들이 줄을 이었다. 괜히 시비 거는 것 같을까 봐 덮어두기도 하고, 불편하지만 사소한 문제처럼 여겨졌기에 따로 대화거리로 생각하지 못하기도 했다. 한 돌봄자는 어머니가 인지가 저하됐어도 말투의 미묘한 차이를 잘 알아챈다고 했다. 어머니가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모멸감을 느낄 때면 하루 종일 짜증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단지 치매 당사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말자는 정도의 말이 아니다. 치매 당사자 입장에서 반말이나 유아어가 불편하더라도 반복되면 결국 수용할 수밖에 없고, 스스로를 수동적인 존재로 각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거는 투에서부터 나의 존재가 규정되고 제한되는 셈이다. 돌봄을 받는 게 아랫사람이 되는 일처럼 되어버린다. 돌봄을 받더라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 수는 없을까?
유아어 사용과 함께 ‘노치원’이라는 말도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노치원은 주간보호센터를 일상적으로 부르는 말로, 노인과 유치원의 합성어다. 노치원이라는 말이 직관적으로 주간보호센터의 역할을 이해시킬 수는 있지만, 동시에 노년기를 유년기의 비유 정도로만 이해할 수도 있다. 유아어 사용과 유년기의 비유는 우리가 노년기를 그 자체로 마주하지 않는다는 방증 같기도 하다. 우리가 돌봄받는 이에게 썼던 말과 말투를 돌아보는 건 우리가 맞을 노년기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늙음과 의존을 부정하지 않는 계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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