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의 벽을 오르던 노회찬을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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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리고 싶은 사람.
그의 삶이 내 존재의 의미였던 사람 노회찬.
노회찬의 회고사를 해달란다.
암벽 등반의 선봉을 맡은 이가 노회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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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황광우
작가
잊어버리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연인도 아니었으나 잊고 살고 싶은 사람.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 그의 삶이 내 존재의 의미였던 사람 노회찬.
‘노회찬 평전’이 나왔다. 이광호 작가는 4년의 땀을 이 한 권의 책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221명의 구술을 받아 집필하였다고 하니, 역작일 것임이 분명하다.
지난 7월24일 광주에서 ‘노회찬 평전’ 출간 기념회가 열렸다. 식전 행사로 노회찬의 애창곡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첼로로 연주되었다. ‘선운사 동백꽃’을 노래하였다. 선운사는 노회찬이 젊은 시절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다가오는 삶을 다짐하던 절이었다.
노회찬의 회고사를 해달란다. 나는 망설였다. 그는 지금 한창 일할 사람이지 회고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고할 이야기도 없었다. “삼겹살 불판을 갈자”, “도둑놈을 잡으라고 신고하니 도둑놈은 잡지 않고 신고한 사람을 잡아가는 세상”이라고 노회찬은 공적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나는 30여 년 동안 노회찬과 한솥밥을 먹었다.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1986년 5·3 인천항쟁 이후 정국은 가파르게 치닫고 있었다. 전두환은 우리를 좌경과격 집단으로 매도하였고, 나와 같은 수배자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역사의 격랑을 헤쳐 나가기 위해 우리는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이라는 비밀 결사를 맺었다.
1987년 1월14일 박종철씨가 고문에 죽자 우리는 ‘살인 강간 고문 정권 타도를 위한 투쟁위원회’ 약칭 ‘타투’를 만들었다. 2월부터 6월까지 ‘타투’는 6월항쟁의 선봉에 섰다. 여세를 몰아 우리는 6월26일, 부평역 앞 광장에서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을 창립하였다. 미 제국주의의 간섭을 물리치고, 독점 자본의 수탈로부터 자유로운 세상, 군사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자고 우리는 선포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동운동은 쉬웠다. 감옥에 가는 것도 쉬웠다. 하지만 민중의 정치세력화는 무척 힘들었다.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군부세력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이곳에서 유럽의 사회당과 같은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은 신기루를 좇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였다. 1987년 민중후보 백기완 선생과 함께 첫걸음을 뛰었고, 우리는 진보정치의 산을 오르는 암벽 등반을 하였다. 암벽 등반의 선봉을 맡은 이가 노회찬이었다. 절벽을 타고 기어올라 우리는 기어이 정상에 올라섰다.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을 창당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해보아야 뭘 하나? 다 아는 이야기인데. 마이크를 잡은 나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하나를 공개하였다. 1989년 10월, 나는 노회찬과 함께 지하신문을 만들었다. 지하신문의 제호는 ‘사회주의자’였다. 1936년 일제 치하에서 이재유 선생이 만든 지하신문 ‘적기’(赤旗)의 현대판이었다. 사회주의자 창간호를 발간하고 우리는 너무 고무되어 뒤풀이를 아니 할 수 없었다. 그 시절 삼겹살이면 최고의 안주였고, 김치를 곁들여 볶아먹으면 부러울 게 없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노회찬의 집안 이야기를 들었다. 1951년 1·4 후퇴 당시 노회찬의 아버지는 흥남에서 내려왔다. 몇 달 뒤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려왔으나 아버지는 다시 할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나는 개인숭배를 싫어한다. 개인숭배가 지배적인 나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노회찬은 달랐다. 노회찬은 그곳에 가고 싶은 그리움으로 가슴이 벅차 있었다. 노회찬에게 그곳은 어머니의 품처럼 그리운 곳이었다.
이광호 작가의 ‘노회찬 평전’은 우리가 모르는 노회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각할수록 아까운 분이다. 평등과 통일을 염원하는 이들에게 일독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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