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정쟁에 美 부도위기 반복"… 옐런 "시대착오적 결정"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2023. 8. 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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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신용등급 12년만에 또 강등
석달 전 '부정적 관찰 대상'
경고 날린후 실제 강등 단행
"부채 증가·거버넌스 약화"
美재정적자 GDP 6.3% 전망
지난해보다 2배가량 치솟아
백악관 "결정에 강력 반대"

◆ 美 신용등급 강등 ◆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1일(현지시간)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한 것은 지난 5월 미국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한 지 3개월 만에 이뤄진 조치다. 피치는 지난 5월 24일 미국의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에 미국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피치는 당시 "미국 디폴트(X-데이트) 예상일이 빠르게 다가오는데도 부채 한도 상향, 유예 등 문제 해결을 막는 정치적 당파성이 커지는 것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달 31일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 합의안이 하원을 통과하며 미국이 디폴트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피치는 석 달 뒤 신용등급 강등을 강행했다.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 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 약화 등이 주된 이유다. 지난 6월 미국 의회가 2025년 1월까지 부채 한도를 유예하기로 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피치는 보고서에 "지난 20년간 부채 한도 문제를 두고 정치적으로 대치하다 막판에 합의하는 일이 반복되며 거버넌스가 약화됐다"면서 "미국 정부는 다른 나라와 달리 중기 재정 체계가 부족하고 예산 편성 과정이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요인은 여러 경제 충격, 감세, 새로운 재정 지출과 함께 지난 10년간 부채 증가에 기여했다"고 진단했다.

미국 경제에 대해서도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피치는 세수 감소, 재정 지출 증가, 이자 부담 증가 등으로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정부 재정적자는 202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3.7%에서 2023년 6.3%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봤다. 또 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이 2024년 6.6%, 2025년 6.9%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피치는 "10년간 금리 상승과 부채 증가로 이자 상환 부담이 증가하고, 인구 고령화와 의료비 상승으로 재정 개혁이 없는 한 고령층에 대한 지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신용 여건 악화, 기업 투자 감소, 소비 둔화로 미국 경제가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에 약한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3대 국제 신용평가사가 미국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2011년 AAA에서 AA+로 내린 이후 12년 만이다. S&P 역시 당시 국가 부채 상한 증액에 대한 정치권 협상 난항 등을 강등 배경으로 지목했다. 이 조치로 당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고 주가가 급락하는 등 국제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다.

12년 만에 다시 한번 '굴욕'을 맛본 백악관은 강력 반발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피치의 강등 조치 직후 성명을 내고 "피치가 적용한 평가 모델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하락했다가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개선됐다"며 "세계 주요국 중 미국이 가장 강한 회복세를 보이는 이 시점에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하는 것은 현실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이날 피치의 결정에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전했다. 그는 "자의적이며 오래된 데이터를 토대로 한 것"이라며 "미국 국채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유동 자산이며 미국 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치의 결정은 미국인, 투자자 그리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피치의 기습적 강등은 미국 학계에서도 논란을 사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지난 1년 동안 가장 큰 경제 뉴스는 미국이 경기 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BBC는 전했다.

앨릭 필립스 골드만삭스 수석 미국 정치경제학자는 BBC에 "이번 등급 강등은 주로 거버넌스와 중기 재정 문제를 반영하지만 새로운 재정 정보는 반영하지 않는다"면서 "등급 변경에 따라 국채를 강제로 매도해야 할 주요 보유자가 없을 가능성이 커 이번 조치가 금융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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