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레드백’ 승리···K제조업의 위기와 기회

정상범 수석논설위원 2023. 8. 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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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독일 제치고 잇단 수주성공
현대차·포스코 혁신으로 체질 개선
미국·프랑스 등 ‘제조업 부흥’ 사활
신수종 발굴·기득권 혁파로 승부를
[서울경제]

지난달 말 국내 방위산업계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한화의 장갑차 AS21 ‘레드백’이 독일 라인메탈의 ‘링스’를 제치고 호주에서 2조 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따낸 것이다. 현지 언론은 한화가 인공지능(AI) 및 표적 탐지 네트워크 시스템을 갖춘 미래형 장갑차를 앞세워 수주했다고 전했다. 앞서 K2전차는 폴란드의 전차 도입 사업에서 독일의 레오파르트를 누르고 유럽 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과거 소달구지를 끌고 다녔던 한국이 ‘전차 군단’의 독일을 눌렀으니 괄목상대라고 할 만하다.

K방산의 ‘수출 빅뱅’은 가격 경쟁력, 기술이전 및 현지 생산 전략, 신속한 대량 공급 등이 맞물려 이뤄낸 값진 성과다. 레드백의 경우 가상현실 인식 기능을 비롯해 최첨단 센서, 회피 기동 능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한국이 ‘글로벌 방산 수출 빅4’에 진입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반짝 호황이 아닌 지속 성장을 이어가려면 갈 길이 멀다.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주요 부품·소재의 국산화와 함께 산업 간 협력 체계 구축, 범정부 차원의 전방위 지원, 정교한 외교력 등이 뒷받침돼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살아남을 수 있다.

제조업의 총아인 자동차도 질주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분기에 4조 2379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역대 최대의 분기 실적을 경신했다. 친환경 자동차 등 부가가치가 높은 차종 판매 확대와 꾸준한 원가 절감 효과 덕택이다. 현대차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그룹의 체질을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도심항공모빌리티(UAM)·로봇 등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포스코도 최근 2차전지 사업에 주력하면서 비철강 부문의 매출 규모를 60%까지 끌어올리는 등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포스코는 2030년까지 원료부터 전구체·양극재로 이어지는 2차전지 밸류체인을 완성해 친환경 소재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국내 산업계에 제조업 혁신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각국은 제조업 부흥에 사활을 걸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메인주 오번의 산업용 내화·내열 원단 공장을 찾아 제조업 살리기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국 내 연구개발(R&D) 및 제조 과정에 파격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스타트업 국가를 만들겠다”면서 ‘라 프렌치 테크(La French Tech)’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인도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통해 서비스업 위주인 경제 시스템을 제조업 기반으로 재편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제조업을 홀대하고 과도하게 금융업을 키워 허약해진 경제 체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국과 대비되는 행보다.

한국이 ‘제조업 전성기’를 되찾고 재도약하려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ASML은 미세 반도체 회로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반도체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독점 생산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거인으로 꼽히는 NXP는 불황기에도 올 상반기 37억 달러(약 4조 70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해 지난해 기록 경신을 앞두고 있다. ‘반도체 국가’를 지향하는 네덜란드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개방적 인재 정책, 오픈이노베이션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제조업은 과거 위기 때마다 우리 경제의 회복을 주도하고 고용 안정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제조업의 뿌리를 탄탄하게 해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다양한 신산업의 꽃도 피어나게 할 수 있다. 우리도 과감한 규제 혁파와 정부의 파격적 지원,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통해 ‘제조업 대전환(Big Shift)’에 속도를 내야 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략산업의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2차전지·원전·바이오 등 미래 신수종 사업을 키우는 데 민관이 한 몸으로 뭉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AI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고 기존 생산 라인을 미래형으로 전환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 아파트 부실 시공에서 드러났듯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질서를 왜곡하는 기득권 카르텔을 혁파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 한국의 제조업은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 서 있다. K제조업에서 희망을 찾으려면 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혁신을 서둘러 ‘제조업 대격변’ 시대를 주도해나가야 한다.

정상범 수석논설위원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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