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이 재정신뢰 갉아먹었다”…피치, 美 신용등급 한 단계 강등
2011년 S&P에 이어 두 번째 강등
아시아 증시 일제히 약세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1일(현지 시각)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종전 ‘AAA’에서 ‘AA+’로 낮췄다. 최고등급에서 바로 아래 등급으로 한 단계 강등한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2011년 또 다른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춘 데 이어 12년 만에 다시 한 번 나온 굴욕적인 조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유는 같다. 나랏빚이 과도하게 늘고 있고, 이를 놓고 정치권이 ‘벼랑 끝 대치’를 반복해 이 자체로 국가 신뢰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피치는 “향후 3년간 예상되는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운영체계)의 악화 등을 반영한다”고 강등 배경을 설명했다.
2011년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했을 때는 세계 금융시장에 큰 혼란이 벌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충격이 채 잊히지 않은 데다 유로존 부채 위기 등이 겹쳐서 일주일 새 미국 증시가 15%, 코스피는 17% 급락했다. 이번 피치 강등 소식에 2일 아시아 증시가 2~3%대 약세를 보이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美 정쟁이 재정관리 신뢰 갉아먹어”
미국 정부부채는 2008년 금융 위기 후, 그리고 2020년 코로나 팬데믹 후 뚜렷하게 늘었다. 피치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3%로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해 3.7%에서 급격히 느는 것이다. GDP 대비 정부부채 규모도 올해 112.9%에서 2025년엔 118.4%로 높아질 걸로 예상했다. AAA 등급 국가들은 이 비율(중간값)이 39.3%, 바로 밑 AA 등급 국가도 44.7%인 데 비해 미국은 2.5배 이상 높다.
피치는 특히 재정 및 부채 한도 문제를 놓고 미 정치권이 악화일로를 걸어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피치는 평가 결과서에서 “지난 20년간 미국 거버넌스의 표준이 꾸준히 악화돼왔다”며 “지난 6월 부채 한도를 2년간 유예하기로 초당적 합의를 했지만, 부채 한도와 관련해 반복된 정쟁과 막판 타결은 재정 관리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었다”고 꼬집었다.
미 의회는 2001년 이후 현재까지 부채 한도를 20번 높였다. 과거 대부분의 경우엔 정부부채가 상한에 다다르기 전에 의회가 먼저 한도를 올려줬다. 하지만 최근 미국 정치 분열이 심해지면서 부채 한도 상향은 정쟁 대상이 되는 경우가 늘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 8월 행정부와 하원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이 부채 한도 인상을 두고 막판까지 극한의 대립을 벌이다가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시한 이틀 전에 겨우 타결했었다. 올해 6월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두 번째 강등…”2011년보단 충격 작을 것”
백악관과 재무부는 피치의 강등에 강하게 반발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 직후 성명을 내고 “미국 경제가 가장 강한 회복세를 보이는 이 시점에서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하는 것은 현실에 어긋난다”고 했다. 재닛 옐런 미 재부무 장관도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자의적이며 오래된 데이터를 토대로 한 것”이라며 “미 국채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유동자산이고 미국 경제는 튼튼하다”고 반박했다.
또 이번이 첫 강등도 아닌 데다, 미 경제가 회복세에 있어 충격파가 2011년보단 적을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미국 적자의 장기 궤적이 우려할 만하긴 하나, 국가 부채 상환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채권 전문가인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고문도 트위터에 “발표 타이밍도 그렇지만 많은 면에서 이번 강등은 뜻밖”이라며 “미국 경제나 시장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비영리단체인 ‘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의 마크 골드바인 수석 부사장은 워싱턴포스트에 “피치의 등급 하향은 미국에 큰 경고 시그널”이라며 “추후 또 한 차례 강등 시 미 정부의 재정 건전성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했다.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코스피가 1.9% 내린 2616.47에, 코스닥은 3.18% 내린 909.76에 마감했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이날 2.3% 미끄러지며 작년 9월 14일(-2.78%) 이후 약 11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보였고, 홍콩 항셍지수는 2%대 떨어졌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4.7원 급등해 1298.5원에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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