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칼럼] '혁신도시' 나주의 기적
10년새 인구 30% 증가
지방탈출은 청년들 저항
먹이와 둥지 해결해줘야
저출산·지역소멸 막는다
얼마 전 난생처음 방문한 전남 나주. 대한민국 대표 과일인 나주배 산지로 유명한 곳이라 논밭이 펼쳐질 거란 짐작은 KTX에서 내리자마자 깨졌다. 나주 혁신도시에 진입하는 순간 수도권 일대 거대한 신도시를 만난 느낌이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곳곳에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기업과 기관들을 지나쳤다. 전남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활기가 넘쳤다.
지난 10년간 전라남도 인구는 줄고 있다. 나주시는 달랐다. 지난 6월 말 기준 인구는 10년 전보다 3만명 정도 늘어 11만7000명에 달한다. 30% 이상 늘어난 셈이다. 전남도청을 옮긴 무안을 제외하곤 전남과 광주를 통틀어 유일하게 인구가 늘어난 도시다.
나주는 2007년 허허벌판에 혁신도시를 착공한 이후 한전을 비롯한 산학연 협력 에너지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한 덕분에 인구 감소를 막았다. 나주에는 한전 자회사 2곳을 비롯해 한국전력거래소 등 에너지 관련 기관이나 기업이 모두 8개에 달한다. 덕분에 인구 유입 효과가 컸다. 주로 젊은 층이다. 거주자들이 젊어진 만큼 출산율도 평균 이상이다. 지난해 나주의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1인이 낳는 평균 출생아 수)은 1.03명. 전국 출산율 0.78명은 물론 전남도 평균 0.97명보다도 높다.
나주시 입장에서 과제가 없지는 않다. "더 성공적인 혁신도시 모습을 갖추려면 에너지 유관 민간기업이나 기관이 추가로 들어서야 한다"는 윤병태 나주시장 주장처럼 에너지 특화 산업단지를 완성해 나가는 게 중요한 과제다. 교육·문화시설도 확충하면 지방소멸을 막은 모범 사례가 될 전망이다.
나주처럼 혁신도시가 아니더라도 자발적으로 기업 유치에 나선 도시들도 적지 않다. 충청남도는 거주민이 늘어나는 수도권이 아닌 광역자치단체다. "충남도 인구 증가는 기업 투자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게 김태흠 충남도지사의 전언이다. 충남은 수도권 인근이란 이점에 안주하지 않는다. '목 좋은 구멍가게'처럼 찾아오는 기업만 투자받는 게 아니다. 적극적인 기업 유치에 나서면서 삼성전자 반도체 투자도 이끌어냈다.
지방정부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지역소멸을 걱정만 할 게 아니라 기업 육성과 투자 유치를 최상위 행정 목표로 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역 내 창업을 촉진하는 동시에 지방 소재 중소기업을 강소기업이나 대기업으로 키우고, 수도권 소재 대기업들이 투자할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사실 0.78명이란 합계출산율과 젊은이들의 지방 탈출은 청년들의 이기적이면서도 살기 위한 행동이다. 제대로 된 '먹이'와 '둥지'가 없는 청년들의 저항인 셈이다.
최근 네 쌍둥이를 낳은 직장인들이 화제였는데 그들은 SK나 포스코 같은 대기업 소속이다. '육아친화적 근무환경'을 갖춘 기업들이 출산이나 육아를 돕도록 출퇴근 시간이나 휴직제도를 설계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중소기업 고용 비중이 대기업보다 훨씬 많다. 중소벤처기업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대기업의 고용 비중은 18.7%에 불과하지만 OECD 회원국 평균은 35%에 달한다.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중소기업들은 대개 지방에 많다. 지역 불균형 발전과 지역소멸이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의 경우 중국 제조업에 밀리면서 많은 일자리를 잃자 미국 정치인들은 지역구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기업 유치에 나서는 데 혈안이다. 유치 성과에 따라 다음 선거에서 재선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를 이끄는 한국 정치인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정당들은 내년 총선에서 현역 의원 대상 공천 심사를 할 때 기업 유치나 인구 증가 기여도를 반영해볼 만하다. 혈세 낭비를 초래한 도로 건설 기여도보다는 국민의 공감대를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명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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