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참사 현장에 달려가야 하는 이유 [메아리]
가족이 희생당했는데 계산기 두드리겠나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그 진심 전해질 것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미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둔 2012년 10월 미 동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로 200명 이상이 숨졌다. 연임에 도전하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유세 일정을 대거 취소하고 현장에 달려갔다. 그가 뉴저지주 참사 현장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은 큰 울림이 있었다. 침통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한 이재민 할머니를 두 팔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전속 사진사 피트 수자의 역량도 한몫했겠으나, 그의 얼굴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그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자 일각에선 “샌디의 힘”이라고 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시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크게 바꿀 수 없어서”라는 대통령실 설명이 큰 논란이었다. 대형 참사에도 귀국 대신 우크라이나 방문을 택한 이유였다고 한다. 중요한 외교 일정이었다 쳐도, 현장 유족들로선 버림받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귀국 후에 찾은 곳도 경북 예천 산사태 피해 현장, 그리고 충남 공주시 농작물∙축사 피해 현장이었다. 대통령실 입장에서야 같은 폭우 피해 현장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선순위로 치자면 단순 자연재해 현장이 아니라 명백한 인재(人災)이자 관재(官災)인 오송 지하차도를 찾았어야 했다. 국무조정실도 지난주 감찰 결과를 발표하며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를 살린 기관이 없었다”고 했다. 그 기관들을 지휘하는 최고 책임자가 대통령이다.
뻔히 이런 논란을 보고서도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유사 발언을 한 건 배짱인지 소신인지 알 도리가 없다. 현장에 늦게 간 이유에 대해 “내가 사고 현장에 일찍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지사는 참사 발생 당일 관련 사실을 보고받고도 오송 대신 괴산 지역을 먼저 찾았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들은 아니다. 대통령이, 또 도지사가 현장에 직접 간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게 팩트이긴 하다. 수해 전문가가 아닌 이상, 현장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는 게 외려 혼란만 부추길 수도 있다. 굳이 현장에 없어도 실시간 보고를 받고 주문을 할 수도 있는 세상이다. 효율성을 따지자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참사 대응에 계산기를 두드리는 건 틀렸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국민의힘에서 ‘당원권 10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건 국가적인 폭우 참사 속에 골프를 쳤다는 이유다. 홍 지사의 당초 주장처럼 객관적인 상황만 보자면 그가 골프를 못 칠 까닭은 없다. 그는 대구시장이고 대구지역에는 큰 수해가 없었다. 그럼에도 당윤리위원회는 “국민 일반의 윤리감정과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위”로 결론지었다.
가족이 같은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보면 답이 명확하다. 자식이 목숨을 잃었는데, 사고 현장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는 부모는 없다. 앞뒤 재지 않고 그들을 현장으로 달려가게 하는 건 머리가 아닌 가슴, 이성이 아닌 감성이다. 주검을 껴안고 부둥켜 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어도 그렇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해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도 일산에 거주하는 수행기사가 강남 자택까지 오는 걸 기다리느라 100분 넘게 지나서야 현장 부근에 도착했다. 택시로 20분이면 닿을 거리였다. 가족의 일이라면 달랐을 것이다. 미친 듯 달려가도 부족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됐지만, 그가 도덕적으로까지 면책될 수 없음은 그래서다.
국민이, 도민이, 또 시민이 내 자식, 내 부모라 생각하면 굳이 머리로 고민하지 않아도 대응은 자연스레 달라진다. 현장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진심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게 참사를 대하는 리더의 자세다.
이영태 논설위원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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