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염 속 텐트장엔 물 웅덩이, 환자 807명...잼버리 계속해도 되나?

부안=김민소 기자 2023. 8. 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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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청소년 야영 대회 ‘잼버리’ 12일까지 개최
34도 폭염에 온열질환자 400여명
덩굴터널은 진흙탕, 그늘막은 땡볕
편의점 에어컨·냉장고에 모인 참가자들
잼버리 벨기에 대표단이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물 웅덩이 위에 플라스틱 팔레트를 깔고 텐트를 치는 사진을 올렸다. 대표단은 "몇가지 문제가 있고, 한국 측에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고 썼다. / 벨기에 대표단 인스타그램 캡처

“내 딸이 지금 잼버리에 가 있는데 모든 게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음식이 없고 햇빛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고 합니다. 뭐라도 해주세요. " (멕시코 국적의 한 남성)

“캠핑장에 간 두 딸과 연락했는데 매우 화가 나있고 텐트나 물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해요. 너무 겁이 나고 실망스러워요.” (슬로베니아 국적의 한 여성)

1일부터 전북 부안군 새만금 일대에서 ‘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행사가 열린 가운데 주최 측이 운영하는 페이스북에는 학부모들의 항의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야영장에 가 있는 자녀들이 폭염에도 물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고, 그늘막에서 휴식을 취하지도 못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심각한 폭염 상황에선 야외 행사를 지양하고 실내 행사로 대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잼버리는 세계스카우트연맹에서 4년마다 여는 청소년들의 야영 대회다. 올해 참가자 수는 청소년 스카우트 대원 3만50명, 지도자 3496명, 운영요원 9709명 등 역대 최다인 158개국 4만3000여명에 달한다. 전북은 2017년 행사를 유치한 뒤 여의도 면적 3배에 달하는 8.84㎢ 규모의 새만금 부지를 확보해 텐트 2만2000여개 설치하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열리는 대규모 국제 행사인 만큼 정부와 지자체는 성공적인 행사 개최를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소셜미디어에선 외국인 참가자들 중심으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잼버리 벨기에 대표단은 인스타그램에 물 웅덩이 위에 플라스틱 팔레트를 깔고 친 텐트 사진을 올리며 “여전히 몇 가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생각에 기대된다”는 글을 남겼다.

텐트를 설치해야 하는 부지에 지난달 30일 내린 비로 웅덩이가 생기자 주최 측은 플라스틱 팔레트 위에 텐트를 치도록 했다. 이에 한 이용자가 “그들은(주최 측)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다고 하나”라고 댓글을 달자 대표단은 “우리는 한국 측에 매일 우리의 우려를 공유하고 있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폭염도 잼버리 참가자들을 힘겹게 하고 있다. 오는 12일까지 잼버리가 열리는 부안에는 폭염경보가 발효된 상태다. 전날 최고 기온이 34도에 달했고 이날 오전 11시 기준 31도를 넘어섰다. 잼버리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대회 개막 이후 야영지 내에서 807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이 중 400명 이상은 온열질환자로 이들은 두통과 근육경련 등을 호소하며 야영장 인근에 마련된 진료소와 병원으로 향했다.

1일 잼버리 주최 측이 마련한 쉼터에서 외국인 참가자들이 지친 기색으로 쉬고 있다. / 김민소 기자

1일 오전 11시 잼버리 행사장에서 만난 프랑스 몽펠리에 지역에서 온 자로드(14) 군은 무더위에 눈을 뜨지 못했다. 그는 “밖에 있긴 힘든 수준의 더위다. 스카우트 정신으로 이겨내보려 한다”면서도 “프랑스에서 살던 지역보다 잼버리 현장 기온이 10도 넘게 높아 실내나 그늘이 아니고선 버티기 힘든 더위”라고 말했다.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참가자들이 온열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7.4㎞ 덩굴 터널과 그늘 쉼터 1720곳을 만들었지만, 대원들의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현장에 설치된 덩쿨터널은 대회 시작 전 내린 폭우로 바닥이 진흙탕이 돼 걸어가기 힘든 수준이었고, 그늘막 역시 얇은 천 하나로 덮여 뜨거운 햇볕을 막아내기 부족했다. 그늘막 아래서 쉬는 대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 대원들은 야영지 내에 설치된 편의점에 피신해 아이스크림 냉장고 속에 머리를 집어 넣으며 “너무 덥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이곳에서 만난 핀란드 국적 참가자는 “그늘 진 곳이더라도 너무 더워서 어지러움을 느낀다”며 “편의점 에어컨이나 냉장고 쪽에 붙어서 잠깐 쉬러 왔다”고 말했다. 일부 여성 대원들이 더위를 참지 못하고 티셔츠를 훌러덩 벗고 속옷만 입은 채 행사장을 돌아다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조직위는 2일부터 주요 캠프 및 클리닉(병원)의 냉방 기능을 강화하고, 셔틀버스 운행 간격도 30분에서 10분으로 단축했다. 야영지 내 병상을 50여개에서 150개씩 추가하면서 환자에 차질 없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또 조직위는 “온열질환자 발생에 대해 세계연맹과 폭염 관련 회의를 했다”면서 “온열질환자 예방을 위한 물 공급, 염분 제공, 과정활동 조정 등 여러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조직위에 따르면 이날 오전까지 125개국 스카우트 대원 2만4674명이 야영장에 입소했다. 당초 예정된 전체 참가인원인 158개국, 4만3281명의 55%에 그친다. 조직위는 사전 관광 프로그램을 신청한 일부 국가가 입영 일정을 늦춰 참가가 다소 더디다고 설명했다. SNS를 통해 확산하는 일부 참가자의 야영장 이탈 소문에 대해서는 “보고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한림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정도 폭염이면 야외행사는 지양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날씨와 관련한 안전기준이 없다”며 “위험을 안고 행사를 진행하는 것인데 이 정도 더위에서 계속 활동을 하는 것은 이 자체로 위험하다”고 말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영일인 2일 전북 부안군 하서면 야영장 델타구역에 마련된 편의점에 음료수와 얼음을 사려는 인파가 몰려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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