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폭염에 두 번 우는 농민들···“올해 농사 모두 망쳤다”[현장에서]
“집중호우에 이은 폭염으로 고온 다습한 환경이 조성되다 보니 곰팡이·세균 병이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이러다 과수 농사를 망칠까 봐 걱정입니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 1일 오후 전북 장수군 계남면에 있는 한 과수원에 들어서자 사과나무 가지에 달린 병든 열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과 열매 곳곳엔 검은 반점이 생겨 있었다. 일부 열매의 표면은 흉물스럽게 움푹 파여 있었다.
2만1000㎡의 규모의 과수원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류기행씨(60)는 “폭우에 이어 폭염이 닥치면서 10% 이상의 사과나무에서 탄저병이 발생했다”며 “병든 사과 열매를 볼 때마다 속이 타들어 간다”고 하소연했다.
류씨는 “요즘 새벽 5시부터 과수원에 나와 병든 사과 열매를 따는 것이 일상이 됐다”며 “탄저병이 발생한 데다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사과 열매의 ‘햇볕 데임(일소)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어 피해가 더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 병·해충이 기승을 부리면서 농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과수원을 둘러보며 연신 땀방울을 닦던 류씨는 “올해처럼 변덕스러운 날씨는 처음 겪는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지난 4월 이상 저온 현상으로 착과율이 30%나 떨어진 상황에서 폭우·폭염이 겹치면서 탄저병까지 발생해 가을철 수확량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장수군 산서면의 고추밭 곳곳에서도 탄저병이 발생하는 등 농작물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빨갛게 익어가던 고추가 누렇게 말라가고 있는 모습을 본 농민들은 “수확량이 애초 예상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정부와 자치단체의 권장에 따라 논에 벼 대신 콩을 심었던 농민들도 막대한 피해를 보고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전북은 전국에서 논콩 재배면적이 가장 큰 곳이다. 하지만 이번 집중호우로 인해 논 콩 재배지 1만1577㏊ 가운데 절반 가량인 5315㏊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김제 진봉면에 사는 농민 문윤만씨(66)는 “논에 자라는 콩은 흙탕물에 하루만 침수돼도 뿌리가 90%가량 고사한다”고 말했다. 문씨는 “논 콩 재배지가 7월에만 흙탕물에 4번이나 잠겨 수확을 포기해야 할 처지라 보상신청을 했더니 농민들 실수도 있다면서 (보상액을) 20% 깎으려 하더라”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올해 정부에서 논콩을 ‘전략 작물’로 지정하고 1㏊당 최대 250만원 농가 지원금을 내걸면서 재배면적이 많이 늘어났다”며 “국가 재난 수준의 기상재해로 논 콩 재배지에서 큰 피해가 발생한 만큼 보상이라도 제대로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해를 입은 시설재배 농민들 상황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닐하우스 93동 가운데 87동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본 김구태씨(59·익산시 용안면)는 “30년 넘게 농사짓고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수박과 상추를 재배하던 36동의 경우 출하 시기를 목전에 두고 수해를 입었다. 물이 빠진 이후에도 건질 것이 없어 자포자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전북농업기술원은 장마에 이은 폭염으로 탄저병과 무름병, 역병 발생은 물론 응애와 나방류 등의 해충도 확산할 우려가 크다며 전용 약제로 방제를 철저히 하는 등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집중호우로 전략 작물인 논 콩과 가루 쌀, 조사료의 피해가 심각함에 따라 올해만 재해피해 농가에 직불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전략 작물 재배 이행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창효 선임기자 c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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