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폭염·벌레와 전쟁’…삼중고 겪는 새만금 잼버리
개막했지만 행사장 곳곳 뻘밭…참가자는 폭염·벌레와 사투
간척지 야영장 ‘34℃ 폭염’에 몸살…시민사회 “예견된 인재”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이 폭염에 애들 텐트생활이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지난 1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일대에서 막을 올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인근에서 일하는 한 현장 노동자의 말이다. 지난 장마 뒤 아직도 곳곳이 뻘밭인 데다 낮에는 폭염이, 밤에는 벌레가 극성을 부려 참가 청소년들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푹푹 찌는' 폭염 속 텐트 치고 야영 괜찮나
한국에선 1991년 강원도 고성 대회 이후 32년 만이다. 세계에서 2회 이상 잼버리를 개최한 나라는 한국이 여섯 번째다. 새만금 잼버리의 슬로건은 'Draw your Dream!'. 미래 세대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잼버리를 통해 자신의 꿈을 마음껏 그려나가라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꿈을 마음껏 그리기에 지금 새만금 잼버리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치 않다. 수난(水難)과 폭염, 벌레와의 싸움으로 3중고를 겪으면서다.
1일 오후 부안군 새만금 매립지에 마련된 잼버리 부지. 면적 8.84㎢으로 축구장 1071배, 여의도 면적의 3배 규모다. '청소년의 문화올림픽'으로 불리는 새만금 잼버리에는 159개국 청소년(만 14~17세)·지도자·운영요원 4만3225명이 참가했다. 스카우트 대원들은 이 부지에 세워진 텐트 2만2000동에서 야영한다. 한시적이지만, 새만금 잼버리대회가 열리는 부안군(인구 4만9817명)과 맞먹는 도시 하나가 더 생긴 셈이다.
장마가 끝났지만 침수로 바닥은 뻘밭이었다.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 씽크홀이 보였고 대부분이 진흙탕이어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잠깐 걸었는데도 신발이 진흙탕에 빠지기 일쑤였다. 텐트가 들어설 야영지도 군데군데 물에 잠겼다. 애초 농지 기준에 맞춰 평평하게 조성해 배수가 제대로 안 된 탓이다.
조직위는 부랴부랴 침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텐트 밑에 깔 플라스틱 팔레트 10만개를 준비했다. 하지만 큰비가 오면 침수를 피하기 어려워 보여 대회 기간 비가 오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달에 대회 끝나는데"…메인센터는 내년에 준공
대회 준비 부족도 드러났다. 야영지는 세계 청소년의 화합 장소라고 하기에 시설이 채 마무리가 안돼 민망할 정도였다. 아직 참가자가 도착하지 않아 국기만 걸린 빈 텐트가 대부분이었고, 주변 정비가 되지 않아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설도 눈에 띄었다.
특히 잼버리 대회는 이달 중순 끝나는데 480억 원을 들인 메인센터 건물공사는 내년이나 완료되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허가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는 게 조직위의 해명이다.
야영지 밖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잼버리 웰컴센터 진입 도로는 아직도 공사 중이었고 갓 포장한 아스팔트에선 매캐한 냄새 솟구쳐 코를 찔렀다. 도로 양편에는 흉물스럽게 폐건축자재가 널 부러져 있었다. 외주업체들이 안내 간판과 현수막을 붙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낮에는 뻘밭·폭염, 밤에는 벌레 극성
무엇보다 외국인 참가자들은 가혹한 폭염에 힘겨워 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매립지 한가운데서 청소년들이 폭염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천막, 그리고 수증기가 분사되는 덩쿨 터널뿐이다. 참가자 대부분은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텐트에 머무는 대신, 에어컨이 있는 기념품 매장이나 편의점으로 몰렸다.
약간의 그늘만 있어도 인파로 북적였고, 몇몇 참가자는 폭염에 지친 듯 손 선풍기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강한 스카우트 정신으로 날씨도 극복할 수 있다'는 대회 조직위원회 설명과 실제 현장 상황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날 부안 지역은 낮 최고 34.5도까지 기온이 올라 폭염 경보가 발효됐고, 밤에도 최저기온이 25도를 넘는 열대야가 나타났다. 오늘(2일) 체감기온도 35도를 넘나들며 폭염이 예상된다. 장맛비가 그친 이후 대회가 열리는 부안지역을 포함해 전북 14개 시·군에 수일째 폭염특보가 내려졌으며, 최고 체감온도는 35도 안팎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열 순환이 잘 안되는 텐트 안의 한낮 온도는 이를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폭염에다 사방이 탁 트인 간척지여서 온열질환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대회 시작과 동시에 벌써 온열질환자가 21명이나 발생했다. 대회 전날 야영장에서만 11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이날(1일) 낮에도 10명이 추가됐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도 계속 환자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2일 저녁엔 첫 공식 행사인 개영식이 열릴 예정인데 4만 3000여 명이 한데 모이는 만큼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잼버리 주최 측과 전북도는 칡넝쿨과 등나무로 만든 그늘터널에 물안개를 분사하고 얼음과 차가운 물을 나누어주는 등 더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폭염에 대비해) 병상을 충분히 확보하고 대회 참가자들에게 물과 염분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위기상황 대응 매뉴얼에 폭염 시 그늘에서 쉬고 얼음물을 제공한다는 정도만 나와 있을 뿐 뚜렷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잼버리 부지 내 병원에선 쉬거나 간단한 처치 정도만 가능한 상황이다. 가까운 연계 병원까지는 차로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고, 헬기로 가야 15분 안에 이송할 수 있는 거리다.
밤에 날아드는 곤충의 습격도 걱정거리다. 야영지가 간척지인데다 주변 곳곳에 배수로가 널려 있어 벌레 발생에 취약하다. 잼버리 조직위는 안전사고뿐 아니라, 온열질환, 벌레 물림 등으로 하루에 환자가 430여 명 발생할 걸로 추산하고 있다.
조직위 '성공적 잼버리' 장담에…지역정치권, '정치적 추진' 발끈
이처럼 한눈에 보아도 안전이 우려됨에도 대회 조직위원회는 여러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다면서 성공적인 잼버리를 자신했다. 최창행 조직위 사무총장은 "매우 더운 날씨를 충분히 예상했다"며 "우려하는 것과 달리 참가자들은 굉장히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으며 야영 생활에도 익숙하다"고 강조했다.
조직위는 폭우에 대비해 100개의 간이펌프시설이 설치돼 침수 피해를 예방하고, 폭우를 피할 수 있는 342개의 실내구호소를 마련했다. 또 무더위에 대비해 7.4㎞ 덩쿨터널과 1720개의 그늘쉼터, 57개의 안개분사시설도 가동한다. 이밖에 176명의 의료인력이 상주하는 잼버리병원과 영지 인근 5개의 협력병원이 스카우트 대원들의 건강과 치료를 책임진다.
하지만 일부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는 잇단 온열질환자 속출은 예견된 인재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정의당 전북도당은 논평을 내고, 폭염 경보와 소나기가 예상돼 참가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야영지 대체 장소를 마련하거나 대회 기간을 축소하라고 주장했다.
전북 민중행동과 평화와인권연대, 환경운동연합도 공동성명을 내고, 온열 질환과 벌레 물림 등 안전 사고가 우려된다며 야영지 행사를 전면 취소하거나 대회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애초 농지 기준에 맞춰진 새만금지역을 정치적인 이유로 잼버리 대회장소로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며 "야영지 배수문제는 물론 폭염특보로 인한 안전문제, 곤충 발생은 해결될 수 없음이 명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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