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본질을 알아야 공공SW사업 개선 해법이 보인다.
올해 대형 공공 소프트웨어(SW)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여러 이슈를 접하며 복잡한 심경에 휩싸였다. 그간 내재됐던 묵은 병폐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시기가 된 것인지,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시대에 걸림돌로 작용히지는 않을 지 우려스러운 마음이 그치질 않았다.
최근 발생한 이슈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했다. 사업자의 역량 부족을 탓하는 목소리가 가장 먼저 터져 나왔으며, 뒤이어 발주기관의 사업관리 부실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 대기업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고, 아직도 과업범위를 명쾌하게 확정짓기 어려운 제도의 문제라는 반론이 제기됐고 애초부터 부족한 사업예산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었다.
과연 이렇게 다양한 시각 중 가장 타당한 분석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오랫동안 제기됐던 문제임에도 왜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것인지 정확히 짚어주는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기업은 공공SW사업을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는가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서 매년 공표하고 있는 'SW천억클럽' 자료를 분석해보았다. 천억클럽에 포함된 기업 중 공공부문에서 가장 많은 수주액을 기록하고 있는 20개사 영업이익률을 분석하면 놀라운 결과를 접할 수 있다.
매출 1000억원 이상을 기록한 기업(천억클럽)의 전체 평균 영업이익률은 7.3%인데 반해 공공수주액 TOP 20에 속한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1.1%로 큰 차이를 보인다. 500억 클럽, 300억 클럽, 100억 클럽의 수치를 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모든 클럽의 전체평균보다 공공매출이 높은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5.6%P가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공공부문에서 획득하는 수익성이 낮다는 기업의 하소연은 과장이 아닌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이에 대한 원인으로 가장 많이 제기되는 것은 잦은 과업변경과 그에 따른 기업 부담 가중이다. 물론 예산편성 때부터 과업의 범위에 비해 사업비가 낮게 책정되는 원론적인 문제부터 지적될 수 있지만 적어도 최초 예산편성은 프로세스와 지침이 비교적 명쾌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곳에서 수차례 검토를 거친다. 반면, 사업 중간에 변경되는 과업에 대한 예산 책정은 프로세스와 지침상에 존재하지만 실제로 예산을 반영하기 위한 수립 근거는 부족하다. 그저 낙찰차액을 활용할 수 있다는 매우 가변적인 조건 정도만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추가되는 과업만큼 다른 부분의 과업을 축소시켜 최초 책정된 예산에 맞추면 해결될 일이다. 그러나, 이 역시 현재의 인식과 관행을 감안하면 요원하기만 한 일이다. 발주 담당자가 일부 과업에 대한 축소를 결정했을 때 초기부터 정확한 규모를 책정하지 못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책임추궁을 면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고 실제로도 발주현장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결국 과업이 추가돼 마땅히 반영되어야 할 예산 책정은 방법조차 찾기 힘들고, 추가되는 만큼 축소시켜 조정할 수도 없어 사업자들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는 형국이다.
오랜 기간 이러한 한계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으면서 단기적 처방을 위한 제도 개선 조치가 줄을 이어 왔다. 근본적인 한계는 결국 부족한 예산이라는 지적이 많지만 이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SW사업의 과업규모와 내용은 초기에 확정이 가능한가?
그간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지는 것에 망설여 왔다. 더구나 명확한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초기부터 구체적인 과업내용과 규모를 확정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갖고 사업자에게는 부담을 주고 발주자들조차 옥죄어온 것은 아닌가?
소위 말하는 시스템통합(SI)방식의 주문형 제작 SW가 아닌 기업이 자체 개발하는 패키지SW와 서비스들의 개발 문화를 살펴보자. 최초 기획·설계가 면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주문형 제작SW와 다를 바 없으나 개발 과정에서 활발한 논의와 토론을 거쳐 수없는 수정·보완을 거친다. 심지어 베타테스트를 거쳐 중대한 기능변경을 감행하기도 하며 이를 바탕으로 기능 범위 등이 최초 기획 당시에 비해 상당부분 바뀌는 경우가 다반사다. 때에 따라서는 출시 예정일을 연기하기도 한다.
무형의 가치로 구성되어 있는 SW의 특질이 그런 것일 수 밖에 없다. 사람의 생각으로만 모여져 있던 개념들을 개발 과정에서 구현하고 작동시켜 보면서 필연적으로 변경 사항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과정이 SW개발이다. 그러나 기업 자체 개발 SW는 이런 본질을 감안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데 왜 유독 공공부문의 주문형 제작 SW에서만큼은 외면당하는 것인가.
해외에서는 이미 이런 SW의 본질을 감안한 발주제도가 정착되어 있다. 미국 연방조달 규칙에서는 SW사업 추진 때 애자일 개발 방법론을 기본으로 적용하라는 권고가 명시되어 있으며 계약 방식도 사업자에게 과업량을 초과한 경우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는 '원가 정산 계약(Cost Reimbursable'이 제도화 되어 있다.또한 확실성이 큰 모듈은 고정가격 계약을 하되, 불확실성이 큰 모듈은 변동가 계약을 하는 하이브리드 계약방식을 허용해 매우 특수한 경우에만 정산 계약을 허용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유연한 제도를 보유하고 있다. 영국정부 역시 애자일 개발 방법론을 기본적으로 지향하고 있으며 아예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과업의 변동성을 고려한 계약을 유도하고 있다.
그간 우리는 “명확한 과업 내용과 규모의 조기 확정 필수”라는 명제를 금과옥조처럼 생각해왔으나 이제는 본질적으로 SW사업의 과업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결의 첫걸음을 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쯤에서 업계를 대표하는 중책을 맡은 입장에서 몇 가지 제언을 해본다. 먼저 앞서 살펴본 대로 SW의 본질적 특성을 고려한 유연한 사업관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우선, 과업의 추가로 인한 예산 반영을 위해 최초 예산 편성 때부터 적정 비중의 예비예산을 배정할 수 있도록 세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예산들이 적정하게 배정되고 지급되어야 하므로 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소프트웨어진흥법에 규정되어 있는 과업심의위원회의 변경 인정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기능이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이를 위해 기재부를 필두로 관련 부처들이 참여, 변경 예산(안)을 검토할 수 있는 조정위원회의 설치를 제안한다.
또한 사업 수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업의 추가나 축소를 발주 담당자가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발주 담당자가 과업의 변경을 주도하더라도 감사원 등의 지적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면책 근거를 마련해주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해외의 선진사례를 참고하여 확정계약 일변도의 계약제도를 정산·개산방식의 계약제도로 전환해 SW사업의 변동성을 반영해야 한다.
두번째는 역시 온전하고 적정한 대가가 지급될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 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팬데믹 시국에서 급격하게 상승한 물가와 인건비로 인해 기업들이 매우 곤란한 상황임에도 개발사업 대가의 핵심 지표인 기능점수 단가는 2020년 이후 공표되지 못하고 있다. 협회가 업계의 빗발치는 요구에 부응, 연내 공표를 검토하고 있지만 예산 당국의 동의 없이는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여러 방면에서 어려움이 있는 것을 알고 있으나 산업 자체가 고사될 위기가 찾아오기 전에 신속한 결단이 필요한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결국 궁극의 목표는 디지털 대전환에 걸맞는 공공정보화의 혁신이다. 우리나라의 공공정보화시스템을 대부분 주문형으로 제작해야 한다는 기계적 관행에서 벗어나 서비스 도입, 사서 쓰는 SW 체계로 급속히 전환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유관 부처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클라우드 구축을 기반으로 한 SaaS도입 기관에게 적정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도입 사례를 확산시킬 수 있는 'SaaS First'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간 오랜 시간에 걸쳐 “소프트웨어의 정당한 가치를 바탕으로 한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외쳐왔다. 하지만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과연 그 외침들이 성과로 이어졌는지 자평해볼 시간이 찾아왔다. 수많은 시도들이 있어왔지만 여전히 관련 지표들과 업계 체감도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깝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는 본질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발상을 전환하고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냉철한 비평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다른 시각의 해법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의 끈도 놓아서는 안된다. 머지않은 미래에 “2023년 발생했던 이슈들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들이 만연하길 기대해본다.
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jhjoh@sw.or.kr
〈필자〉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은 2001년 유라클을 창업해 23년간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소프트웨어(SW) 기업가이다. 2021년 2월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제18대 회장으로 취임했고, 올해 2월 19대 회장으로 재선임돼 SW산업 발전과 생태계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또, 벤처기업협회 수석부회장, 컴투스홀딩스 사외이사, 재단법인 이노베이션아카데미 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해 9월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산업생태계분과위원장직을 맡은 데 이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1기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국무총리실산하 데이터기반행정활성화위원회 위원으로도 위촉돼 SW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수립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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