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될 때마다, 커지는 트럼프의 공화당 내 지지율
트럼프, 2016년 대선 때 “뉴욕시 한복판서 사람 쏴도, 내 지지율 안 떨어져” 호언
NYT 최신 여론 조사에선 바이든 vs 트럼프, 43%로 동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 후 벌써 세번째 기소됐다. 이에 따라, 그의 소송 비용도 갈수록 커져간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외곽 조직인 ‘세이브 아메리카(Save America)’가 지지자들로부터 받아 트럼프 측에게 전달한 소송비 후원금만 올 상반기에 4020만 달러(약 520억 원)에 달했다. 작년엔 이 액수가 1600만 달러였다.
트럼프는 지난 3월 뉴욕 주에서 포르노 여배우와의 성추문 사실을 입막음하려고 돈을 지급하고 비즈니스 기록을 위조하는 등의 혐의로 기소된 데 이어, 6월에는 대량의 기밀 문서를 자신의 휴양지로 몰래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이어 8월1일에는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미국 정부를 기만하려고 모의한 혐의 등으로 세번째 기소됐다. 조만간 조지아 주에서 대선 결과를 뒤엎기 위해 주 정부관리에게 압력을 가한 혐의로 또 기소될 전망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트럼프가 기소될 때마다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더욱 견고해졌다.지난 3월 24일 로이터ㆍ입소스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중에서 1위인 트럼프와 2위인 플로리다 주지사 론 디샌티스의 지지율은 44% 대 30%였지만, 3차 기소 직전에 발표된 7월31일의 뉴욕타임스(NYT)ㆍ시에나 칼리지 조사에선 지지율 차이가 54% 대 17%로 벌어졌다.
또 같은 조사에서 트럼프는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과의 가상 대결에서 43%로 동률을 기록했다. 미국 대선까지는 아직 15개월이 남았지만, CNN 방송은 7월30일 “트럼프가 재선될 가능성은 매우 실존한다(very real)”이라고 전망했다.
◇두들겨 맞을수록, 트럼프의 공화당 장악력은 커져
뉴욕타임스ㆍ시에나 칼리지가 공동 조사한 ‘공화당 경선에서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트럼프는 2위인 디샌티스 주지사를 무려 34% 포인트 앞섰다. 3위부터 나머지 후보들의 지지율 총합은 17%, 무응답이 13%였다.
또 8월1일 최신 여론조사 결과들을 집계해 발표한 파이브서티에이트(538) 조사에서도, 트럼프는 53%, 2위인 디샌티스는 16%였다. 한때 디샌티스는 ‘리틀 트럼프’로 불리며 공화당의 대안(代案)으로 떠올라 2월 중순 지지율이 39%(트럼프는 41%)까지 치솟았지만, 그게 지금까지 디샌티스가 거둔 최고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대선의 공화ㆍ민주 당내 경선에서, 공화당의 첫 경선인 내년 1월15일의 아이오와 주 당원대회(코커스)를 6개월도 안 남긴 시점에서 한 후보가 2위 후보를 이렇게 압도적으로 앞서고 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지 못한 경우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네번째, 다섯번째 기소가 이뤄진다고 해도, 현재로선 공화당 경선 레이스의 판도가 바뀔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것이다.
트럼프는 2016년 처음 미국 대선 출마했을 때에, 한 유세에서 “내가 (뉴욕시 맨해튼의) 5번(Fifth) 애버뉴 한복판에서 누구를 쏘더라도, 지지자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었다. 그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MAGA 지지 기반
트럼프의 공화당 내 가장 강고한 기반은 바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약자인 MAGA 지지층이다. 블루칼라 직업에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띠고, 이들의 불만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적 발언과 정책에 호응하는 집단이다. NYT 여론조사에선, 공화당 성향 응답자의 37%가 MAGA였다. 이들은 ‘트럼프가 잘못은 했지만 지지한다’는 입장이 아니다. MAGA 지지층은 ‘트럼프가 잘못 한 것이 없다’고 믿는다. 트럼프가 교도소에 가더라도 그의 무죄를 확신하는, 거의 ‘신앙’ 수준이다.
예를 들어, NYT 여론조사에서 MAGA로 분류된 응답자 319명 중에서 트럼프가 ‘심각한 연방 범죄를 저질렀다’고 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공화당 성향 응답자 중 13%, 민주당 성향 응답자의 86%가 ‘그렇다’고 답한 것과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이 37%는 트럼프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작년 11월 미국 중간선거 때의 41%에 근접한다. 물론 공화당에는 이 MAGA 기반 외에도, ‘트럼프는 절대로 안 된다’는 공화당 유권자 25%, ‘다른 후보가 없으면 트럼프에 기울 수 있다’는 유권자 37%도 존재한다. 그러나 40% 가량의 확고한 트럼프 지지층을 빼면, 디샌티스를 비롯한 다른 공화당 경선 후보가 결집할 수 있는 당내 지지율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트럼프, 범죄했다’ 공화당 응답 소폭 증가해도, 여전히 지지
미세하지만, 전체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 중에서도 트럼프가 ‘심각한 연방 범죄를 저질렀다’는 응답은 작년 7월10%, 9월 6%를 거쳐 이번 조사에선 13%로 조금 늘었다. 하지만,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응답도 같은 기간 80%에서 74%로, 여전히 4분의3을 차지한다.
절대 다수의 공화당원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는 기소 자체가 민주당 정부의 ‘불순한’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대표인 크리퍼드 영은 CNN 방송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들의 눈으로만 세계를 본다. 그들은 트럼프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기소도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공화당 유권자의 40~45%인 이 지지자들과 트럼프 사이의 유대감은 외부에서 깨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 유권자들은 여러 미국 매체 인터뷰에서 “바이든도 부통령 시절에 비밀 서류를 가져갔었다”며 “트럼프 기소에는 어떻게 해서든 트럼프의 출마를 막으려는 정치적 동기가 깔려 있다”고 말한다.
CBS뉴스의 6월 조사에서 공화당 성향 유권자의 76%는 비밀 서류 유출에 대한 기소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답했다. 또 ‘트럼프가 핵ㆍ군사 기밀을 가져간 것이 안보에 위협적이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80%는 ‘그렇다’고 답했지만, 공화당 성향 유권자는 38%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 3월 CNN 조사에서도 공화당 성향 유권자의 84%는 “바이든이 합법적으로 2020년 대선을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트럼프에 대해 개인적으로 갖는 비호감도와 실제 투표 행위를 분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6년 미 대선에서도 공화당 성향 17%를 포함해서 전체 유권자의 55%는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선거에선 트럼프가 이겼다.
◇트럼프ㆍ바이든 오차 범위 내에서 각축
트럼프가 퇴임 후 여러 건의 기소로 인해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NYTㆍ시에나 칼리지 조사에서 트럼프에 대해 ‘우호적인(favorable)’ 의견은 41%에 그쳤다. 51%는 ‘그가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답했다. 그런데 트럼프와 바이든의 가상 대결에선 양측이 43%로 동률이었다.
이런 결과가 나온 원인으로는, 우선 바이든의 ‘개인 점수’가 너무 낮았다. 즉, 인물에 대한 호감도는 트럼프보다 2% 포인트 높은 43%였지만, 직무 수행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39%에 그쳤다.
또 2020년 대선 때 드러난 양측 골수 지지층 간의 단층선(fault line)은 여전히 확고했다. NYT 여론조사의 응답자 구성에서 트럼프는 대졸 미만의 학력을 가진 백인 유권자층, 바이든은 비백인과 대졸 이상 학력의 백인 유권자 층에 확고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다.
바이든으로선 앞으로 15개월 남은 미 대선을 앞두고, 반(反)트럼프 여론이 형성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유권자층을 규합하기 위한 정책을 펴고 업적을 내야 한다.
공화당의 다른 경선 후보들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이 내년에 기대해 볼만한 것은 공화당 경선과 함께 전개되는 트럼프의 재판 일정이다. 트럼프는 유세 기간 중에라도 일부 법정에는 직접 출석해야 한다. 내년에 전개될 이 재판 진행 상황이 지금의 대선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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