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온실가스 감축, 안 지키면 ‘파리협정’ 제재 받나요?
A. 그렇진 않습니다. 세계 190여개국이 참여한 ‘파리협정’엔 징벌 규정이 없거든요. 다만 ‘기후위기 대응에 무임승차하는 나라’로 낙인 찍힐 수 있어요.
국제사회는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때 체결된 파리협정에 따라 세계 190여개 나라가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에 제출했지요. 한국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각 나라가 제출한 감축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런데 만약 어떤 나라가 이 목표를 달성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게 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파리협정에는 협정 참여 당사국들의 감축목표 불이행에 대비한 징벌 규정 자체가 없거든요.
사실, 과거 사례를 보면 징벌 규정이 있다고 해도 큰 효력은 없었습니다. 파리협정 이전,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했던 ‘교토의정서’의 경우, 감축 공약 불이행에 대한 징벌 규정이 있었어요. 1차 감축기간에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는 2차 감축기간에 더 많은 감축량을 할당하도록 했던 거죠. 하지만 여러 나라들이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거나(미국), 중간에 탈퇴(캐나다) 또는 의무감축 참여를 거부(일본, 뉴질랜드, 러시아)해버리면서 징벌 규정은 무의미해졌습니다.
징벌 규정이 있어도 이 모양인데, 파리협정은 제재 규정도 없이 대체 어떻게 당사국들이 감축목표를 이행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일까요? 그 ‘어떻게’의 핵심이 바로 파리협정 제13조에 담겨 있는 ‘투명성 체계’라고 할 수 있어요.
투명성 체계는 협정 당사국들의 감축 행동을 누구나 알 수 있게 투명하게 보고하는 것을 말합니다. 파리협정은 이 체계를 적용해 모든 당사국에게 내년부터 2년마다 자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현황, 감축목표가 포함된 국가결정기여(NDC)의 이행·달성에 관한 진전 추적 정보 등을 담은 격년투명성보고서(BTR)를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또 이렇게 제출된 정보는 기술전문가 검토팀의 검증과 공개적인 다자 검토를 거치도록 했고요.
교토의정서가 정해진 감축 기간이 끝난 뒤에 감축 실적을 따져보는 시스템이라면, 파리협정은 중간중간 감축 실적을 따져보는 시스템인 거예요. 당사국들에게 감축목표 이행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대신, 이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공개하도록 해 간접 압박하려는 것이지요. 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는 “파리협정의 투명성 조항에 따라 2024년부터 각 국가가 내는 보고서를 보면 (감축목표를 이행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아닌지 일단 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동료 압력)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2년 마다 감축목표 이행에 불성실한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재판 장이 서는 셈이죠.
여기서 감축목표를 불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나라로 지목되면 어떻게 될까요? 개발도상국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를 받을 수 있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나라가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감축 노력을 소홀히 한 선진국이라면 국제사회에서 변명이 불가능할 ‘불량국가’로 손가락질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것도 2년마다 반복적으로 말이죠.
전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무임승차하려는 나라’로 낙인 찍힌다는 것은 단지 국가 이미지가 손상되는 차원을 넘어서는 실질적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발전소 신규 가동을 준비하면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에는 소홀히 하고 있는 어떤 나라에는 이 위협이 남의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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