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피나스’의 힘은 다양성…혼혈선수들이 일군 월드컵 첫승

이준희 2023. 8. 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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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승리였다.

필리핀에 월드컵 승리를 안긴 주역은 미국 태생 선수들이었다.

세델프 투파스 대표팀 대변인은 "(필리핀 국가대표로 뛰는 월드컵은) 선수들이 그들 부모에게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라고 했다.

페어는 콜롬비아전 때 교체 투입돼 남녀 대표팀을 통틀어 최초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혼혈 선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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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여자 월드컵]대표팀 다수가 미국서 자란 혼혈 선수들
우려 딛고 국민영웅 돼 축구 열풍 불러
필리핀 여자축구 대표팀 서리나 볼든이 7월25일(한국시각) 뉴질랜드 웰링턴 리저널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월드컵 조별리그 A조 2차전 뉴질랜드와 경기에서 선제 결승골을 뽑은 뒤 기뻐하고 있다. 웰링턴/AP 연합뉴스

역사적인 승리였다. 전반 24분 헤더 선제 결승골. 골을 터뜨린 서리나 볼든(27)은 경기장을 내달리며 포효했다. 필리핀 역사상 첫 월드컵 득점이었다. 이어진 약 70분 동안 필리핀은 슈팅 숫자(4-15)에서 밀리며 고전했다. 하지만 수문장 올리비아 맥다니엘(35)은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과는 1-0 승. 필리핀은 그렇게 지난 7월25일(한국시각) 뉴질랜드를 꺾고 사상 첫 월드컵 승리를 따냈다.

필리핀에 월드컵 승리를 안긴 주역은 미국 태생 선수들이었다. 볼든과 맥다니엘을 포함해 필리핀 대표팀 23명 중 18명이 미국에서 태어났다. 여자축구 최강국 미국에서 자란 이들은 이번 대회에서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나라를 대표했다. 그리고 필리핀에 축구협회가 생긴 지 116년 만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피파랭킹이 필리핀(46위)보다 20위 높은 개최국 뉴질랜드(26위)를 상대로 만든 쾌거였다.

필리핀 여자축구 대표팀 올리비아 맥다니엘이 7월30일(한국시각) 뉴질랜드 오클랜드 에덴파크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월드컵 조별리그 A조 3차전 노르웨이와 경기에서 공을 움켜쥐고 있다. 오클랜드/EPA 연합뉴스

선수 다수가 미국 출신이지만, 단순히 성적을 위해 급조한 팀은 아니었다. 수비수 할리 롱(27)은 “나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집에서는 언제나 필리핀 사람이었다”며 “필리핀을 대표하는 데 한 치 망설임도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대표팀 별명을 지난해 말디타스(Malditas)에서 필리피나스(Pilipinas)로 바꿨다. ‘화끈한 숙녀들’이란 뜻의 말디타스가 스페인어로 ‘저주받은’이란 의미인 데다 선수단에서 “말디타스는 필리핀인의 아름다움을 상징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새 별명 필리피나스는 ‘필리핀 여성들’을 뜻한다.

사실 필리핀 축구대표팀은 남녀 모두 이중국적자가 많다. 그 배경에는 한 게임이 있다. 2005년 축구게임 ‘풋볼매니저’를 즐기던 팬들이 게임 속 유망주 형제가 필리핀 이중국적임을 발견했고, 이에 필리핀축구연맹(PFF)은 이들을 설득해 국가대표로 발탁했다. 필리핀 A매치 최다득점자(52골) 필 영허스밴드와 그의 형 제임스다. 이후 필리핀은 적극적으로 이중국적자를 데려왔고, 선수들은 필리핀 축구에 다양성을 심었다. 게임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월드컵 승리로 이어진 셈이다.

한 축구팬이 7월30일(한국시각) 뉴질랜드 오클랜드 에덴파크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월드컵 조별리그 A조 3차전 필리핀과 노르웨이의 경기에서 필리핀 여자축구 대표팀 별명 ‘필리피나스’가 적힌 응원 도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클랜드/EPA 연합뉴스

초기에 ‘필리핀을 대표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여자 대표팀은 이제 국민 영웅이 됐다. 이들이 펼친 활약은 필리핀 국내 축구 인프라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세델프 투파스 대표팀 대변인은 “(필리핀 국가대표로 뛰는 월드컵은) 선수들이 그들 부모에게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라고 했다. 앨런 스타이치치 필리핀 감독(사퇴)은 “우리는 필리핀의 심장, 피, 용기,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도 이번 대회에 여자 대표팀 최초로 혼혈 선수 케이시 유진 페어(16)를 발탁했다. 페어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페어는 콜롬비아전 때 교체 투입돼 남녀 대표팀을 통틀어 최초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혼혈 선수가 됐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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