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감독이 한국서 여전히 저작권료 받지 못하는 까닭
저작권 양도하는 매절 계약
불리한 조건 떠안는 작가들
저작권에 숨은 독소조항
저작인격권·제작권 논의해야
세계 각국에서 빅히트를 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1조원이 훌쩍 넘는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정작 저작권료를 단 한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저작권법이 '창작자가 저작권을 제작사에 양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어서다. 이는 비단 영화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창작을 위해 필요한 건 뭘까. 유영소 동화작가의 제언을 들어보자.
미국 작가들의 파업에 미국 배우노조가 연대하면서 할리우드 산업이 얼어붙었다. 지난 5월 2일부터 파업 중인 미국 작가조합 'WGA(Writer's Guild of America)'는 미국의 영화ㆍ텔레비전ㆍ라디오ㆍ온라인 미디어 등의 각본가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이다.
WGA는 제작자 단체인 AMPTP(영화TV 제작자연맹)와의 교섭에 실패한 후 파업을 단행했는데, 아직까지 작가의 처우 개선과 인공지능(AI) 활용 문제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짐작하겠지만 이 싸움의 배경에는 OTT 위주로 재편된 영화 영상산업의 변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작가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지금의 스트리밍 방식으론 재상영에서 파생하는 수익금을 계산할 수 없으니 보상과 창작환경의 안전망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작가들이 작업한 시나리오와 각본을 바탕으로 AI를 활용해 새로운 스크립트를 생성해선 안 된다는 것도 이들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배우 키미코 글렌(Kimiko Glenn)의 틱톡 영상물이 동료배우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넷플릭스의 흥행작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ㆍ2013~2019년)에 출연한 키미코 글렌은 해외 송출 7년간의 총 정산액을 공개했는데, 달랑 27.3달러(약 3만5000원)에 불과했다.
AMPTP에 요구하는 배우의 주장은 작가와 다르지 않다. 영상물 관련 데이터를 공개해 배우들에게 흥행에 따른 보상을 지급할 것, 기업 기밀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면 쌍방이 신뢰하는 제3자를 고용해 데이터를 분석할 것, 배우들의 연기와 몸짓을 AI를 통해 학습하지 말 것이 골자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한국에서 출판하는 작가한테, 이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인가. 뭐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정말 그럴까. 소설이나 동화를 쓰는 한국 작가들이 가장 많이 쓰는 건 '출판권 및 배타적발행권 설정' 계약서다. 종이책과 전자책 둘 다 만들어서 '많이 알리고 잘 팔아보라'고 출판사에 나의 저작물 이용을 허락해 준 거다.
종이책은 보통 한권 팔릴 때마다 정가 10% 안팎의 인세를 받으니 계산이 빤하지만, 전자책의 저작권료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가가 정해져 있어서 팔리는 전자책이야 그렇다 쳐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책 구독 플랫폼이 내 책의 수익을 계산하는 근거와 그 정보를 아는 작가가 있을까. 안다고 해서 어떤 협상이 가능할까.
사실 이 협상은 애초부터 가로막혀 있다. 작가가 출판사와 계약할 때 '저작물 이용'의 대부분을 출판사에 위임하는 계약서를 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출판사가 플랫폼 업체와 잘 협상하면 될 텐데, 작가들이 보기엔 이것도 여의치 않다. 변화된 독서 환경과 기술을 선제적으로 전망하기에 영세한 출판사들은 여전히 가난한 데다, 출판사는 작가 개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 자체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책의 경우는 좀 더 심각하다. 대형 독서 사교육 회사나 교육출판 대기업의 전자책 구독 플랫폼 업체들의 매절買切 계약이 횡행하기 때문이다.[※참고: 출판사가 저작자에게 1회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향후 저작물 이용을 통해 얻는 수익은 독점하는 계약을 뜻한다.]
작가는 매절료 협상에 끼지 못하고, 저작권료가 정해진 근거나 정보를 물어도 듣는 답은 뻔하다. "그런 건 기업 기밀이고 계산도 너무 복잡하니까 그냥 매절로 퉁친다. 그러니까 너는 그냥 그걸 받으라." 일정 금액 지불 이후로 수익을 재분배하지 않는 매절 계약은 우리 출판 역사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인데, 이제 디지털까지 이어받아 그 뿌리를 단단히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작가들에게도 AI의 활용과 저작권 문제는 최근 이슈다. 내 작업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헤아려보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나 불안감도 적지 않다. AI의 학습을 위해 거대 말뭉치가 필요하고, 내 작품이 거기에 들어서 저작권 침해를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국립국어원 말뭉치 저작권 침해 사건'이 명확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올해 과학기술통신부는 초거대 AI 활용을 지원하겠다며 동화 줄거리와 삽화 생성 데이터를 구축하는 학습 데이터 사업의 공고를 냈다. 문제는 과기부가 여기에 필요한 학습데이터로 수천편 이상의 동화작품을 요구했는데, 내가 쓴 저작물을 바탕으로 AI를 활용해 새로운 이야기를 생성하겠다는 의도에 자발적으로 응하는 작가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사업은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지원하라는 요건을 충족한 용역업체가 사업을 진행 중이다. 어떻게? 저작물 이용 권한을 위임받았거나 저작권을 양도받은 출판사가 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는 쌔고 쌨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들의 요구가 한국 작가들에게도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분야마다 속내나 형편은 달라도 문화예술의 채널이 디지털 시장으로 변모하면서 창작의 안전망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특히 이야기의 첫 씨앗을 품어 책을 출판하는 개별 작가들의 환경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요구할 수 있고 파업할 수 있는 미국의 작가들에게 가장 부러운 것은 행동하는 조직이 있고 그래서 협상의 자리에 작가의 의자가 있다는 그 자체이기도 하다.
국내에도 지향이나 장르를 두고 수많은 작가 단체들이 있지만 작가들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저작권 투쟁을 하는 단체가 없고, 당장 먹고살기 힘든 와중에 불공정 보상이라도 받아야 이어지는 고단한 삶이 처연하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약하고 가난하니까 작가들은 연대해야 한다. 함께 옆으로 늘어서서 몇번이고 한목소리로 주장해야 한다. 스트리밍의 방식으로도 공정한 보상의 안전망을 마련하라. 데이터를 공개하라. 영업 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면 쌍방이 신뢰하는 제3자를 고용해 데이터를 분석하라. 작가들이 쓴 저작물을 바탕으로 AI를 활용해 새로운 원고를 만들지 말아라.
사실은 미국까지 갈 것도 없이 한국 영상저작물 창작자들도 투쟁 중에 있다.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영화를 창작해도 저작재산권이 없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특약이 없는 한 영상저작물 이용의 권리는 영상제작자가 모두 양도받은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대놓고 창작자들의 보상을 가로막는 이 법 때문에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한국에서 창작자에게 보상하는 해외 저작권료를 받지 못한다. [※참고: 황동혁 감독이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에선 저작권료를 받았다.]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있다. 저작물을 쓰고 만든 작가에게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정으로 저작재산권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선택이어야 한다. 저작권을 회복하려는 영상저작물 창작자들 옆에 한 사람의 작가로 기꺼이 서겠다. 불공정한 저작권법은 개정해야 한다.
유영소 동화작가
dupery2@hanmail.net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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