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서점이 활기를 되찾았어요~
한때 매일 한 편씩 습작 삼아 시를 썼다 지웠다 했다. 그러다 한동안 시를 잊고 지냈다. 주말을 앞둔 저녁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난 2017년 늦가을 ‘길 위의 인문학’에 같이 참여했던 친구였다. 윤동주의 발자취를 쫓아가는 일일 답사에 동행했던 그 친구는 당시 우리를 인솔했던 고운기 시인을 기억하고 그의 시집 출간기념회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장소는 서울 문래동에 있는 ‘청색종이’였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문래창작촌 골목길로 접어드니 목적지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인터넷 지도를 보면서 찾아가건만 한참을 헤매야 했다. 첫 방문이어서 더 그랬다. 골목이 끝나는 곳에 파란 대문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대문 색깔이 ‘청색종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대문을 열자 협소한 마당이 있고, 왼쪽에 출입문이 있다. 비좁은 공간에 벌써 사람들이 여럿 모여 앉아 있었다.
오늘의 작가는 고운기 시인이다. 등단 40년을 맞이하는 올해 그의 7번째 시집이 나왔다. 자리에 앉은 참석자들은 시집을 꺼내서 펼치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참석자들 모두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시를 좋아한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사회자의 제안으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시를 낭독하기로 했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골라서 읽는 시간이다. 시집에서 목차를 훑어봤다. ‘길 위의 길’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길 위의 길 / 고운기
새길은 하늘로 날 듯 간다
산중 깊은 골 터널조차 쉬 뚫는다
내려다보이는 옛길은 하릴없이 햇볕을 쬐고 있다
마른 차선만 버짐처럼 저 길이 뜨거웠던 적 기억하라
땀을 받고
큰 숨을 받고
세상을 만드는 데 도왔다
옛길은 새길에게 자리를 내주고 두렵지 않다
두렵다면 길이 아니다
옛길과 새길, 우리는 길 위에 또 길을 만든다. 옛길은 사람이 무수히 지나다니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길이라면 새길은 사람의 편의를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길이다. 옛길이 좋다고 그 길만 고집할 수 없다. 우리에게 새길도 필요하다. ‘길 위의 인문학’으로 인한 인연 탓일까? 고운기 시인과의 만남에 이 시를 낭독했다. 시를 낭독하면서 시를 매개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의 낯선 자리가 점차 편안하게 바뀌어갔다.
고운기 시인은 1983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총 6권의 시집을 냈다. 현재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7번째 시집에서 그의 일상을 담담히 써내려갔다고 한다. 과거 암 수술을 받고 퇴원한 경험, 야구팀에서 연장자로서의 활약 등을 절제된 시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 그의 시에서 한 인간의 삶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건 고운기 시인의 삶이지만 우리 각자의 삶이기도 하다. 일상을 사는 건 누구나 다를 바 없다. 삶이란 게 녹록지 않기 마련이다. 삶의 한가운데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도 있을 테고, 또 그것을 이겨내면 예기치 못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삶은 마냥 기쁘지도 않고 마냥 슬프지도 않다.
정말 오랜만에 시에 심취해 본 시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오늘 시인과의 만남에 참석한 사람들은 시를 낭독하고 시를 주제로 대화하면서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이게 진정한 문학이 주는 치유의 힘일 게다. 그런데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은 다름 아닌 ‘2023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덕분이었다.
청색종이를 운영하는 김태형 대표를 만나서 ‘2023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대해서 들어봤다.
Q. 작은서점 지원사업이 궁금해요.
A. 아마도 2015년 무렵부터 전국적으로 작은서점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거예요. 사실 저희 같은 작은서점이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하지만,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습니다.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서점에 밀려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죠. 문체부에서 작은서점 행사를 지원하면 작은서점 운영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것 같아요. 작은서점에서 열리는 행사에 독자들이 참석하고 그러다 보면 작은서점을 알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문체부에서 사업을 이어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서점에서 작가와 독자들이 만나는 행사를 유치하고, 작가에게 출연료를 사례비로 제공할 수 있는 것도 다 지원사업 덕분입니다.
Q. 작은서점이 받는 지원비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신가요?
A. 올해는 4월부터 10월까지 작은서점에서 행사를 진행합니다. 이번에 시인 세 분의 출간기념회가 있어요. 7월 29일 고운기 시인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31일 박일환 시인과의 만남, 8월 12일 김정수 시인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어요.
Q. 작가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A. 아이고, 당연히 좋죠. 좋을 수밖에요. 작가는 자신의 시집을 알릴 수 있고 또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니깐요. 더구나 출연료를 사례비로 받습니다. 독자들은 작가를 만나 문학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어요. 그런 독자들이 작가를 만나기 위해 어렵사리 작은서점을 방문해주니 작은서점 입장에서 홍보가 되죠.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올해 6회째 실시하는 ‘2023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은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사업이다. 문학작가의 간접 일자리를 창출하고 작은서점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간 문학작가를 비롯해 문학거점서점 17개소와 작은서점 40개소에 문학작가 인건비, 공간 대관료, 문학 프로그램 운영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문학거점서점에서 문학 코디네이터로 활동할 ‘상주 문학작가’ 17명에게 월급여를 지급하고, 작은서점에서 활동할 파견 문학작가에게는 월 인건비를 지급한다. 지원사업에 선정된 문학거점서점과 작은서점에는 대관료 및 문학 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원한다.
10월까지 진행 중이라고 하니 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작은서점에서 열리는 행사에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떤 행사가 있는지 알고 싶다면 누리집(https://blog.naver.com/kjusj)에서 확인해 보자.
동네 곳곳에 작은서점들이 있다. 간판도 작고 공간도 협소해서 동네 주민들조차 그냥 지나칠 때가 많다. 그런 작은서점들이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로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작가, 독자, 작은서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이 있어서 나도 모처럼 문학에 심취해 볼 수 있었다.
이메일 연락처: geowin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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