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해야 ‘노래자랑’ 보는 농어촌에 인터넷 왜 필요하냐고요?”
“전산망만 봐선 못찾는 농어촌 소외계층 민원, 현장 가면 보여요”
“확실한 걸로 줘.” “어머니, 이게 숫자 확실하게(크게) 보이는 거예요.” “한 달에 얼마씩 나간다고?” “첫 2년은 기계값 할부금 1만520원이랑 월 요금 1만2650원 해서 2만3170원씩 나가고, 2년 지나면 월 요금만 나가요.”
지난 7월27일 오후, 충남 보령시 웅천읍 웅천전통시장 근처 한 휴대폰 판매점. “두 달 전 증손녀 결혼식에 갔다가 휴대폰이 든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렸다”는 황순길(86)씨가 새 휴대폰을 개통하고 있다. 점주 옥승규(43)씨가 황씨에게 이것저것 따져 물었다. “노령연금 받으시냐”고 물은 뒤 월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벨소리와 통화음성 크기가 적당한지 하나하나 확인하며 알맞게 설정한다.
개통된 새 휴대폰을 건네받은 황씨는 “대천동(옛 대천시)까지 나가야 하는 줄 알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며,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가느라 읍내에 나왔다가 휴대폰 가게가 있어서 들어와 본 건데, 여기서 일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이동통신 회선을 개통하는 이용자 비율이 해마다 느는 추세지만, 황씨처럼 고령층에겐 먼 얘기다. 웅천읍은 지난 6월 기준 주민 수가 5890명뿐인 작은 읍으로, 평균 나이가 59살에 달한다. 읍내에 딱 하나뿐인 이동통신 판매점은 1~2인 가구가 대다수인 고령층 주민들이 바깥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없어선 안될 존재다. 3년 전 이곳에서 영업을 했다는 옥 점주는 “도시에서처럼 최신 스마트폰과 비싼 요금제를 팔긴 어려워도, 부모님 같은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으니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엘지유플러스(LGU+)는 웅천읍처럼 인구 수가 많지 않은 농어촌 지역이나 대리점이 운영되기 어려운 지역의 이동통신 판매를 지원하기 위해, 충청·전북과 전남 동부·서부 등 전국 농어촌을 12개 지역으로 나눠 각각 도매직영점을 두고 있다. 웅천읍을 관할하는 서해안 도매직영점은 충남 당진시, 태안군, 보령시, 서천군 일대 판매점 65곳을 맡아 거래하고 있다.
이날 만난 심재민(36) 엘지유플러스 서해안 도매직영점 선임은 충남 보령·서천·안면도 일대 판매점 16곳을 담당한다. 심 선임은 “월 차량 주행거리가 적을 땐 5000㎞, 많을 땐 1만㎞ 가까이 나온다. 엔진오일을 한 달에 한 번 꼴로 갈다보니, 이 곳 근무 1년 만에 ‘차 박사’가 다 됐다”며 웃었다.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진 도매직영점들은 전산망만 들여다봐선 알기 어려운 농어촌 지역의 통신 서비스 수요와 어르신 등 소외계층 주민들의 통신 관련 민원을 파악해내는 거점 구실을 한다. 심 선임은 “특히 유선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커버리지(제공 반경)를 넓혀 달라는 요청을 꾸준히 받는다. 농어촌 지역 고령 이용자들이 기껏해야 ‘전국노래자랑’ 정도 보는데 초고속인터넷이 왜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심 선임은 지난 6월 홍성 판매점에서 만난 고객 사례를 들려줬다. “한우 축사를 운영하는 분이었다. 소가 쓰러지면 바로 달려가 일으켜세워줘야 해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달아야 하는데, 엘지유플러스 초고속인터넷 망이 깔려 있지 않아 다른 통신사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어쩔 수 없이 쓰고 계셨다. 한 회선만을 위해 네트워크 공사를 하기엔 비용 부담이 크다는 걸 아는 판매점주가 같은 마을 축사 다섯 곳을 더 모아다 준 덕분에, 충청 인프라 담당에게 알려 네트워크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엘지유플러스는 “전국 도매직영점들에 심 선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력이 130여명 근무하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농어촌 소외계층 이용자들을 포용하기 위해 도매직영 체제 운영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서산·태안·보령/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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