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씨에 반바지가 어때서” 출근용 반바지 찾는 남성 늘었다
“긴바지 입을 때랑은 피부로 느끼는 온도가 확 다르죠.”
서울의 30대 직장인 A씨는 종종 반바지를 입고 일터로 간다. 그가 다니는 회사(제조업)는 몇해 전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손보겠다며 ‘복장 자율화’를 선언했다. 입는 옷이 달라졌다고 조직이 180도 바뀐 건 아니다. 다만 체감온도가 35도 안팎으로 오르는 찜통더위에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일할 수 있어 만족한다. A씨와 동료들에게 이제 ‘반바지 출근’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A씨는 “초반에야 반바지를 입는 게 어색했지만 지금은 전혀 눈치를 보지 않는다”며 “그날그날 TPO(시간·장소·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반바지를 입기도 하고, 격식을 차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2일 산업계에 따르면, 폭우가 끝나자마자 폭염이 찾아오는 오락가락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반바지 출근룩’이 확산하고 있다. 조직마다 복장을 둘러싼 원칙과 분위기는 제각각이지만, 극한 기후로 인해 반바지 차림의 출근이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지난 6~7월 검색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남성 반바지’ 키워드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0%가량 증가했다. 반바지는 쪼리(플립플랍)와 반소매 티셔츠를 이어 남성 고객이 세 번째로 많이 찾는 검색어였다. 특히 바지통이 크고 기장이 긴 ‘데님 버뮤다 팬츠’ 검색량이 이 기간 120% 넘게 늘었다.
무신사 관계자는 “본격적인 폭염이 찾아온 가운데 실용성과 스타일을 중시하는 젊은 남성 고객층을 중심으로 반바지 출근룩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패션그룹 형지와 한국에너지공단은 여름철 시원한 옷차림으로 일하면서 체감온도를 낮추고 에어컨 사용량을 줄이자는 취지로 ‘쿨코리아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다. 각계 리더들이 가벼운 복장으로 사진을 찍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뒤 다음 주자를 지목하는 방식이다.
수년 전부터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이 복장 자율화를 시행해 왔다. 하지만 넥타이를 푸르고 반팔 셔츠를 입을 뿐 반바지는 금기시되는 곳이 상당하다. 단정하지 못하고 예의에 어긋나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2019년 9월부터 복장 자율화를 시작한 대한항공 사내 익명게시판에는 최근 ‘비도 오고 더워서 반바지 입고 출근했는데 뒷말을 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반바지 입고 출근하는 건 직원 개인 의사다. 누구도 뭐라 하면 안 된다”고 댓글을 달아 반바지 출근에 힘을 실어줬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0일 분홍색 반팔 피케셔츠를 입고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편한 옷차림을 한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오고 업무 몰입도도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추 부총리가 베스트드레서로 꼽은 직원은 반바지 차림이었다고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달 MZ세대 공무원 250여명과 만난 자리에서 ‘공무원이 반바지 입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삼성도 반바지 입고 출근한다. 반바지 입고 오든지 팬티 입고 오든지 알아서 하라”고 답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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