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생태계 ‘보안사고 감점’ 적용 놓고 논란 가중[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HD현대중공업에 3년간 -1.8점 ‘보안사고 감점’ 적용
한화오션과 양강 경쟁 구도서 ‘기울어진 운동장’ 사실상 시장 퇴출 의도
문재인 정부 때 현행 감점 기준 적용, 고무줄 늘리기식으로 처벌 강화
지난 7월 14일 방위사업청은 해군의 차기 호위함( FTX)인 울산급 배치-Ⅲ 5∼ 6번함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을 선정했다. 경쟁업체였던 HD현대중공업은 울산급 배치-Ⅲ 선도함(충남함)을 연구개발해 지난 4월 건조해 기술능력과 실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도 ‘보안사고 감점(-1.8점)’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면서 소수점 이하 근소한 차로 고배를 마셨다. 연구개발 및 선도함을 건조한 업체가 2∼6번함까지 5척의 후속함을 하나도 건조하지 못하는 사상 첫 사례로 기록됐다. 업계 관계자는 “함정사업은 기본설계를 수주해 연구개발을 완료한 업체가 선도함의 상세설계 및 건조까지 수의계약해 어느 정도의 수익성을 담보해줌으로써 대부분 적자 수주로 진행되는 함정 연구개발 경쟁력을 유지해왔다”며 “앞으로 이런 식이라면 누가 손해 봐가면서 설계 및 연구개발에 투자하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대해 한화오션측 관계자는 “2012년 대우조선해양이 KDDX 개념설계를 수행하고도 HD현대중공업의 기술 도용으로 2020년 기본설계 수주를 놓쳤다”고 반박했다.
방산학계 등 전문가들은 ‘기술력·실적’보다는 ‘보안사고 감점’이 승부를 결정짓는 현재의 제안서 평가 방식은, K-방산의 해양 방산 상태계를 무너뜨려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정부 방산 정책이 ‘벼룩(보안 사고 방지) 잡으려다 초가삼간(방산업체 경쟁력 저하· 해양 생태계 파괴) 태우는 꼴’로 K-방산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하책 중 하책 방산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HD현대중공업, 기술·실적 앞섰지만 마의 -1.8점 ‘보안사고 감점’으로 탈락
울산급 배치- Ⅲ 입찰경쟁 과정은 파행의 연속이었다. 2∼4번함 입찰은 지난해 SK오션플랜트(옛 삼강MNT )가 선정됐다. 최저입찰로 승부를 걸어 함정 부실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저가 입찰경쟁에 HD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아예 참여조차 않았다. HD현대중공업은 제안서 평가가 적용된 5∼6번함부터 입찰에 참여했으나 이번에는 도가 지나친 페널티가 적용된 ‘보안사고 감점’이 발목을 잡았다.
이와관련 한화오션측은 “2016년 울산급 호위함 배치- Ⅲ 기본설계 입찰에서 당시 대우조선해양도 보안사고 감점 1.5점을 받아 기술평가에서 HD현대중공업에 앞섰음에도 불구,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 및 선도함 사업을 수주했다”며 “같은 논리로 보안사고 감점이 적용되지 않았다면 기술력이 뛰어난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했어야 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화오션은 100점 만점에 최종점수 91.8855점으로, 91.7433점을 받은 HD현대중공업을 0.1422점 차이로 눌렀다. 기술능력평가 점수 80점, 비용평가 점수 20점,가·감점평가 점수 등 3개 분야로 구성된 제안서 평가에서 비용평가는 두 업체 모두 20점, 기술능력평가는 HD현대중공업이 72.3893점을 받아 71.4158점을 받은 한화오션을 0.9735점 차이로 크게 앞섰다.
하지만 가·감점평가에서 승부가 갈렸다. 중소·중견기업 참여 가점 항목에서 0.4697점을 받은 한화오션에 비해 HD현대중공업이 1.1540점을 받아 유리했다. 그러나 불공정 행위 이력에 따른 감점 항목에서 무려 -1.8점을 받은 HD현대중공업이 가·감점평가 합계가 -0.646으로 떨어지면서 가·감점평가에서 1.1157점 차이로 벌어져 수주에 실패했다.
방위사업청은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지난주 수주한 한국형 차기호위함(FFX) 울산급 배치-Ⅲ 5·6번함 건조사업 관련 HD현대중공업이 이의신청한 것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이 제기한 보안감점 규정 문제를 검토 중”이라고 해명했다.
방사청은 1일 모 매체가 보도한 ‘방사청 수주 이의신청 기각 잠정 결론’기사와 관련 “HD현대중공업의 이의제기 신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사실이 없고, 방사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잠정결론 내린 사실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체의 이의신청에 대해 규정상 7근무일인 오는 4일까지 결과를 통보해야 하지만 필요 시 연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방산업계는 지금까지 관례에 비춰 이번주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재심위원회(평가검증위원회)까지 간 뒤 시간끌기를 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 5년간 입찰 결과에 대한 업체의 이의신청 9건에 대해 방사청은 조정 2건, 중재 2건의 형식적 처리에 거쳐 ‘조정신청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HD현대중공업은 지난달 26일 FFX 울산급 배치-Ⅲ 5·6번함 건조사업과 관련해 방사청에 정식으로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문재인 정부 때 보안감점 기준 고무줄 늘리기 식으로 처벌·적용기간 강화
이번에 적용된 불공정 행위 이력은 HD현대중공업 직원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군사기밀 유출 사건을 말한다. 보안사고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과도한 페널티가 적용되고 기간도 3년 정도 길어 아무리 기술력·실적이 뛰어나도 제안서 평가에서는 경쟁회사를 이길 수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까지 함정사업에서 제안서 평가를 통해 나온 점수를 보면 대부분 소수점 이하에서 당락이 갈렸다. 2020년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KDDX) 사업의 첫 단계인 기본설계 사업을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할 당시 대우조선해양과의 점수 차이는 0.0565점에 불과했다.
이와관련 한화오션측은 “최근 10년간 수상한 사업실적 결과를 보면 13번의 설계 사업 중 한화오션이 절반이 넘는 7번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며 “특히 2016년 울산급 배치-Ⅲ 기본설계와 올해 합동화력함 개념설계 사업에서 한화오션이 05∼0.7점 앞섰다”고 밝혔다. 한화오션측은 “후속함 건조 사업에서 ‘상세설계,선도함’ 업체가 상대적으로 높은 기술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동일 조건의 평가가 이뤄지는 신형 군함 분야에서는 한화오션의 기술력이 더 높게 평가를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방사청의 점수 적용도 제멋대로 고무줄 늘리기식이다. 방사청의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에 반영되는 ‘보안사고 감점’ 규정은 문재인 정부 시절 2년 동안 3차례나 개정될 정도로 변덕이 심했다. 개정 방향은 ▲감정 비중 및 요소가 증가해 -1.3점에서 -1.8점으로 과도해졌고 ▲적용 대상기간과 감점 적용기간 역시 1년에서 3년으로 대폭 확대됐다.
특히 보안사고 감점 기준이 특별한 이유 없이 고무줄 늘리기식으로 수시로 변경됐다. 처음에는 보안사고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취지로 감점 -3.0점에 적용기간도 2년이었으나 업체들 건의로 2019년 9월 감점 -1.5점에 적용기간 1년으로 완화됐다. 그러다가 2021년 3월과 12월, 2022년 12월 등 3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지금처럼 감점이 적용혐의와 인원에 따라 커지고 적용기간도 3년으로 늘어나는 등 처벌 강화 쪽으로 점차 바뀌었다.모두 문재인 정부 때 벌어진 일이다.
◇함정사업 제안서 평가 대부분 소수점 이하 점수서 당락 갈려…“시장 퇴출 의미”
제안서 평가 결과 소수점 이하의 차이로 수주 여부가 결정되는 평가 구조에서 실점수 1.8점이란 차이는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런데 현행 보안사고 감점 기준을 보면 2021년 12월 31일 이전 기소된 사건이 입찰 등록 전 형 확정 시 3년간 적용된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2020년 9월 보안사고 관련자가 기소유예돼 당시부터 감점을 적용받다가 3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소급 적용돼 약 5년간 보안사고 감점을 적용받게 됐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1회 또는 1년도 아니고 3년 이상 보안사고 감점을 적용하면 경쟁업체는 아예 함정사업을 접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와관련 한화오션측은 “2020년 11월 있었던 KDDX 기본설계 입찰에서 감점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다”며 “20219년 9월 HD현대중공업에 유리하도록 개정된 규정(기무사 처분 통보에 의한 감점제도 삭제)에 따라 감점 적용이 되지 않고 HD현대중공업이 사업을 수주했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방사청은 2019년 9월9일 낸 보도자료에서 “민관규제개선추진단 제언을 받아들여 보안사고 감점을 축소(최대 -3점→ -1.5점)하고, 평가 대상기간도 최근 2년에서 1년으로 완화했다”며 “과도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보안사고 배점을 축소해 보다 많은 경쟁력 있는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특히 올해 연말부터 시작될 장보고 배치-Ⅱ 3번함, 울산급 배치-Ⅳ 선도함, 군수지원함 배치-Ⅱ 2번함 사업 등은, 지나친 ‘보안사업 감점’으로 발목이 묶인 HD현대중공업으로서는 어떻게 해도 한화오션의 경쟁 상대가 되기 어렵다. 이 가운데 잠수함을 제외하면 울산급 및 군수지원함은 HD현대중공업이 개발하고 건조해 기술능력에서 앞선 상황인 것과는 무관하다.내년에 계획된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사업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진행해온 전례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이 맡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마저 입찰경쟁에서는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결국 방산정책이 함정 기술 경쟁력 강화보다는 특정업체 독점으로 흘러 결과적으로 글로벌 함정 건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함정사업 독점구도 시 K-방산 해양 생태계 약화 불보듯
함정 건조는 사업의 핵심인 기술능력보다도 보안사고 감점이 수주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앞으로 3년간 한화오션은 함정사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세계 1위 조선소인 HD현대중공업은 특수선(함정) 분야 비중이 5%에 불과해 국내에서 장기간 수주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업 운영에 대한 고정비 부담이 과중해져 함정 수출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기일 상지대 교수는 “무기체계 경쟁입찰에서 기술점수를 포함한 전체 당락은 0.1점 이하 차이로 결정된다”며 “보안사고 감점 -1.8점 3년 적용은 HD현대중공업에게 함정 건조사업에서 퇴출시키기 위해 손 떼고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것으로, 상식에 어긋나는 과도한 페널티”라고 평가했다.이어 “해양 방산 함정 건조사업에서 특정업체, 그것도 1위 업체가 3년 동안 현실적으로 사업수주를 못한 정도의 치명적인 무기 체계 제안서 지침이 적용된 ‘보안사고 감점’은 좋은 의도와 달리 나쁜 결과,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최 교수는 “ 국내 방산 생태계가 대형화·통합화를 통해서 방위산업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은 몸집을 키워서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며 “하지만 한화가 대우조선해양과 통합한 뒤 몸집을 키워서 결국에는 발목 묶인 국내 1위 기업을 몰아내고 ‘골목대장’에 그칠 경우 독과점 불공정 거래 행위 부작용이 부각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특히 함정 전투체계는 한화시스템과 LIG넥스원이 담당하고 있는데, 한화시스템의 주고객 중 하나인 HD현대중공업이 시장에서 점차 퇴출되고 한화오션이 해양방산 함정건조사업의 독보적 지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렇게 될 경우 한화시스템이 한화오션 눈치를 보게 되거나 LIG넥스원의 함정전투체계도 납품 물량이 줄어드는 최악의 해양 방산생태계 독점구조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방산업계의 우려다.
이와관련 한화오션 관계자는 “지나친 우려”라며 “기업결합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건부 의견을 받아 준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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