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김수현 前실장 주재 회의서 “탈원전 좌절되면 文대통령 리더십 문제 발생”

장은지 기자 2023. 8. 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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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하는 김수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06.21. 뉴시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주도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재한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탈원전 정책 추진 좌절 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리더십 타격을 우려하며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추진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실장은 지난달 19일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에 반대하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측을 압박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업무방해)로 재판에 넘겨졌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실이 2일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김 전 실장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이 2017년 9월 18일 주재한 대통령비서실 ‘에너지전환 TF(태스크포스)’ 회의에서 탈원전 정책 추진과 문 전 대통령 리더십의 연관성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회의에서는 “10월 중순경 발표 예정인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여부 관련 공론조사 결과 및 권고내용’으로 ‘공사재개’가 권고될 경우 탈원전 정책 추진 좌절로 인해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그 대책으로 월성1호기 조기폐쇄와 영덕 천지원전1·2호기 백지화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논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주무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기존 법률을 개정해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상태였다. 권고나 행정지도를 통해 조기폐쇄하는 방안도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손실 보상에 따른 국민 부담 가중 논란도 예상된다는 입장이었다.

김 전 실장도 같은 달 21일 주재한 TF 회의에서 산업부로부터 한수원이 배임과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을 우려해 조기폐쇄 의향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을 보고받았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시 한수원의 법적책임을 해소시키기 위한 어떠한 구체적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또한 김 전 실장은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그는 검찰 조사에서 “배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잘 협의해서 하라고 지시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기소 직후엔 “당시 TF는 이미 활동을 중단한 데다 검찰은 내가 뒤늦게 알았다는 증거밖에 제시하지 못했다”며 “검찰 기소는 전기요금 인상 책임을 탈원전 탓으로 돌리려는 현 정부와 여당의 정치 의도에서 비롯된 정책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TF 회의 한달 후인 2017년 10월 18일 문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 공사재개로 결정될 경우 뒷감당은 산업부가 책임지고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월성 1호기는 조기에 가동을 중단하고 이를 위해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제외하겠다”는 취지로 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도 공소장에 적시됐다. 당시 백 전 장관과 문 전 대통령 면담에는 송인배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만 배석했다.

이러한 진술을 종합해 검찰은 김 전 실장이 백 전 장관 등 산업부 관계자들과 공모해 원전 조기폐쇄의 법률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직권을 남용해 한수원에게 다른 대안을 포기하고 월성1호기 조기폐쇄 및 즉시 가동중단을 결정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한수원은 청와대 방침대로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중단하면 향후 법적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산업부 측에 지속적으로 냈다. 한수원 기술본부장 등은 2018년 3월 29일 산업부 원전정책과장을 만나 “월성1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게 한수원에 가장 이익이지만 정부 정책 등을 고려해 원안위 운영변경 허가 시까지 2.5년 가동 후 중단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보고했다. 산업부 측이 더 빠른 조기 중단 방안을 묻자 한수원 측은 “적합한 스토리가 없다. 무리하면 탈이 난다”며 재차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산업부 과장은 “이 건과 관련해 아무도 안 다쳐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산업부는 월성 원전 조기 폐쇄를 반대하는 한수원 고위 관계자에게 ‘인사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산업부 원전정책과장 등은 2018년 3월 2일 국회 인근에서 한수원 기술전략처장에게 “월성1호기 조기폐쇄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으면 산업부 국장, 과장이 다 옷을 벗어야 하는데 한수원이라고 아무런 일이 없겠느냐”라며 “처장님은 이 일을 잘못하면 어디 갈 데도 없지 않냐”고 압박했다. 한수원 부장에게는 “월성1호기 조기폐쇄 업무를 신속히 추진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이에 한수원 관계자들은 정부 결정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인사 압박을 받은 닷새 후인 3월 7일 ‘월성1호기 정부정책 이행 검토 TF’를 구성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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