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적' 삼성 이병철 회장의 후예들 'DX 기적' 만든다
[르포]일본 진출 교두보 '도쿄IT지원센터·도쿄GBC' 가보니
[편집자주]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일본 진출에 시동을 거는 한국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일본 벤처투자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다 기시다 정부가 경제 전반의 효율성·생산성 제고를 위해 사회 각 분야의 디지털전환(DX)에 속도를 내면서 새로운 먹거리가 늘고 있어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되고 있는 투자혹한기로 국내 스타트업 업계가 자금경색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일본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다.
지난달 20일, 일본 관공서 밀집 지역인 도쿄 카스미가세키 정중앙에 있는 카스미가세키빌딩. 35층 꼭대기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승수 도쿄IT지원센터장은 "이곳 가장 높은 층을 이 회장님이 집무실로 쓰셨다고 들었다. 5층에 우리 센터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금은 건물이 오래되고 낡아 지하주차장도 없지만 카스미가세키빌딩은 처음 지어진 당시 일본 중·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 명소로 꼽힐 정도로 인기였다. 우리나라 80년대 고속성장의 상징이던 여의도 63빌딩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재무성, 외무성 등 일본 정부의 중앙부처가 이 건물을 병풍처럼 둘러싸듯 지어져 있어 해외 엘리트 영업맨들의 일본 진출 거점으로 통한다. 이 센터장은 "여기 땅값이나 임대료가 너무 비싸 일본인들에겐 콧대 높기로 이름난 지역"이라며 "이런 곳에서 우리 스타트업들이 현지 투자사나 파트너를 만나야 업신여김 당하지 않고 사업을 잘 풀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가 일본 진출을 꿈꾸는 ICT(정보통신기술) 벤처·스타트업들의 요람인 '도쿄IT지원센터'와 '도쿄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옛 동경 수출인큐베이터) 2곳을 다녀왔다.
도쿄역에서 자동차로 20여분 이동 끝에 도착한 도쿄IT지원센터. 로비에 들어서자 일본 현지 창업 안내서와 전문서적이 꽂힌 책장이 있었다. 또 외부 파트너, 투자자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회의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2개의 대회의실을 지나 코너쪽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말끔히 정장을 차려 입은 한 젊은 남성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프리젠테이션(PPT)을 손보고 있었다.
이곳은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센터 운영 업무를 맡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2001년 센터 설립 이후 총 107개사가 거쳐갔다. 현재는 국내 유망 ICT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23개사 입주해 있다. 올해 초부턴 공유오피스를 대대적으로 확장하는 등 K스타트업 맞이에 분주한 모습이다.
센터는 해외진출을 위한 물리적인 거점 제공에 더해 현지 정착, 마케팅 지원을 총괄하는 비즈니스 플랫폼 기능을 수행한다. 이 센터장은 "일본 현지 금융기관들은 스타트업과 같이 일본 현지에서 거래 매출 실적이 없는 외국인 기업에 대해 거래계좌를 발급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실제로 일본 은행 거래계좌를 개설하지 못해 고충을 호소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며 "스타트업 초기 진출 과정에서 연락사무소, 지사·법인 설립 및 등록, 체류비자, 외국인 등록증 발급 등 정착에 필요한 사안을 센터가 계약 맺은 현지 세무·노무·특허 전문 법인, ICT 대기업 출신 현지인 전문가들이 돕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도쿄 GBC는 대기업 본사, 외국계 현지법인이 밀집한 미나토구 토라노몬 지역에 위치했다. 입구 쪽에 설치된 쇼룸엔 △원테크의 '스마트도어락' △에이엘로봇의 '산업로봇용 토크센서' △디카모의 '매장관리플랫폼' △나노메카의 '위조방지 필름' 등 국내 스타트업 제품 18개가 전시돼 있었다.
GBC의 '제품 개선 수출 현지화 프로그램'은 연간 10개사만 대상으로 '핀셋 컨설팅'을 제공한다. 2020년 1월에 입주해 지난해 1월 졸업한 액정표시장치 전자칠판 전문기업 스타트업 아하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약 30곳의 바이어를 발굴했다. 아울러 파트너십을 맺은 일본 현지 대기업 브라더공업과 전자칠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공급 계약을 위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ERP(전사적자원관리) 솔루션 전문기업인 영림원소프트랩은 지난해 5월 입주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일본의 ERP 시장규모는 국내보다 5배 정도 크며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독점적 시장 지배자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보다 더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림원소프트랩은 도쿄 GBC의 지원으로 일본 현지의 컨설팅기업과 협업해 일본에 최적화된 ERP시스템 개발을 최근 완료했다. 이밖에 도쿄 GBC는 신한퓨처스랩재팬과 함께 공동 육성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도쿄 GBC 김건 소장은 "일본에선 삼성전자의 후광 때문인지 한국 테크기업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라며 "우리 스타트업의 입주 수요가 최근 들어 대폭 늘고 있지만 센터 공간 활용엔 제약이 따라 기존 공간을 재배치하든지 추가로 공유오피스를 개설하는 등의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쿄IT지원센터, 도쿄GBC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한국대사관 정연우 과학관은 "일본으로 넘어오는 K스타트업 대부분 미래 신기술 분야를 선점할 수 있는 딥사이언스·딥테크 창업 기업이어서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며 "이들은 확실한 수요 시장을 타깃으로 한 BM(비즈니스모델)과 강한 추진력을 K스타트업의 매력 요건으로 꼽고 있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도쿄(일본)=류준영 기자 jo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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