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령 때 분리과세 필요하다[문희수의 시론]

2023. 8. 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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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논설위원
퇴직·개인연금 세금 혜택 확대
소득 취약한 고령층 지원 바람직
노후 지키는 국민연금만 불이익
분리과세 도입해 세금 낮춰야
실소득 늘수록 복지 지출 절감
청년에도 결국 큰 혜택 돌아가

정부가 내년 시행할 세법 개정안에서 노후생활 지원을 위해 사적 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기로 했다. 55세 이상 고령자에게 적용되는 퇴직연금·개인연금의 분리과세 기준금액을 올려 세금을 줄여 준다는 것이다. 분리과세 세율은 현행대로 3.3∼5.5%(지방소득세 10% 포함)를 유지하되, 세금 혜택을 받는 한도를 연 1200만 원에서 연 1500만 원으로 올렸다. 이렇게 하면 저율 과세 되는 연금액이 월평균 100만 원에서 125만 원으로 확대된다.

옳은 방향이다. 현행 세제에선 퇴직·개인연금을 연간 1200만 원 넘게 받으면 다른 소득과 합쳐 종합과세한다. 이 때문에 세율이 6.6∼49.5%인 종합소득세를 내거나, 분리과세를 신청해도 세금을 16.5%나 내야 한다. 물가 인상 등으로 생활비가 계속 늘어나는데, 당사자가 오랫동안 애써 저축한 연금을 월평균 100만 원까지만 빼 써야 혜택을 주는 세제는 가혹하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내년에 적용할 기준 중위소득과 최저생계비 미달 가구에 지원하는 생계급여를 역대 최대로 올린 것과도 맞지 않는다. 중위소득 인상으로 이 소득의 60%로 돼 있는 최저생계비도 덩달아 올라, 최저생계비의 53% 수준인 생계급여 최대 지원금이 1인 가구는 월 71만 원, 2인 가구는 월 117만 원이다.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도 이대로 가면 하한액이 내년엔 월 189만 원이 된다. 소득이 부족한 고령층 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는 ‘노후 감세’는 당연하다.

문제는 국민연금이다. 연금 수령때 아무런 세제 혜택이 없다. 분리과세 도입은 이번에도 불발됐다. 정부가 노후를 지켜준다고 말하는 국민연금이 불이익을 당하는 셈이다. 의무 가입인 퇴직연금은 제쳐놓더라도 개인연금은 경제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이 이용한다. 가입도 선택이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은 이보다 경제력이 취약한 전업주부·단기 근로자 등까지 포함해 사실상 전 국민이 가입한 강제 저축이다. 퇴직·개인연금 등 사적연금에 주는 세제 혜택을 국민연금에 주지 않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 물론 정부는 2002년부터 국민연금 보험료에 대해 100%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이중 세제 혜택은 곤란하다는 지적도 일리 있다. 그렇지만 퇴직·개인연금도 이미 세제 혜택이 있다. 국민연금에 과세하더라도 분리과세로 세금을 낮춰 주는 게 옳다.

일하는 고령층이 점차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5월 기준으로 고령층(55∼79세) 근로자가 912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다. 생계비가 모자라 더 돈을 벌려는 동기가 대부분이다. 전체 고령층의 68.5%가 계속 일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전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도 세금으로 고령층 ‘알바’ 자리를 만드는 일자리 사업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취지에서 보면 현재 63세 이상이 받는 국민연금을 다른 소득과 합쳐 종합과세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월 100만 원 이상의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1인당 월평균 수급액은 75만 원에 그친다. 월 25만∼50만 원 미만이 44.6%, 50만∼100만 원 미만이 30.25%다. 정부가 이런 국민연금에 세금 혜택을 거부하면서 노후를 지켜준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 분리과세 도입은 연금 개혁과 아무 관련이 없다. 세수가 줄어들 뿐이다. 정부로선 올 상반기 세수 부족액이 40조 원에 육박한 만큼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감세로 고령층의 국민연금 실수령액이 늘수록 복지부의 생계급여, 노인 일자리 사업 등 정부의 복지성 지출도 그만큼 절감된다. 가계의 부양 부담도 줄어들 게 분명하다. 고령층의 근로 활동 활성화에 따른 부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국민연금 감세 효과가 세수 피해보다 훨씬 클 것이다.

국민연금 세금 경감은 당장은 고령층이 혜택을 보겠지만, 길게 보면 청년층 혜택이 더 클 것이다. 국민연금은 더 오래 더 많이 내면서, 덜 받는 방향의 개혁이 불가피하다. 이런 개혁으로 가장 불리해질 청년층에 보험료 소득공제에 이어, 장차 연금을 받을 때 세금을 덜 내게 더 혜택을 주는 것은 연금의 지속 가능성에도 도움이 된다. 노후 감세를 하면서 국민연금을 제외할 이유가 없다. 시급한 개혁은 미루면서 세제 불이익을 방치하는 것은 민생을 위한 정부가 아니다.

문희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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