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강남 아파트단지의 바람직한 미래상
서울 압구정 3구역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 재건축의 서울시 지침을 무시한 설계회사와 관련된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신통의 대표 주자로서 압구정 4개 구역의 재건축을 통해 시민들을 한강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넘어 강북의 서울숲 및 성수 지역과 보행교를 통해 연결시키는 야심 찬 구상을 세웠다.
그 중심에 있는 압구정 3구역에는 그런 공적인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용도지역을 상향하고 단지 내 도시계획도로를 폐도하고 기부채납 비율을 15%에서 10%로 낮추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가 주어졌다. 그러나 두 개 설계회사 수주경쟁의 결과는 주어진 용적률인 300%를 무시한 360% 계획에 단지 중앙을 관통하여 한강의 보행교와 연결되는 공공보행통로를 단지 외곽 스카이웨이로 둘러치는 안을 제시하여 주어진 지침을 무시한 설계회사가 선정되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단지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려면 돌아가는 50m를 단축할 수 있는 사랑교회 건물 안 10m 남짓의 복도가 있다. 비 내리는 날 비 젖은 우산을 들고 교회 안으로 들어서려면 눈치가 보이지만 한 번도 그 교회 식구들의 불편한 눈빛을 받아보질 못했다. 폐쇄된 사적인 공간을 내어주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 식구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강남’이란 1970년대 서울시의 강 건너 교외주거지로 개발되었다. 당시 국내 도시계획 분야에서 중요한 화두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페리(Perry)의 근린주구 개념과 이를 실현하는 물리적인 설계 요소인 통과 교통을 제한할 수 있는 슈퍼블록의 도입이었다. 이는 1920년대 미국 도시에서는 급속히 증가하는 자동차와의 충돌을 해결하려는 미국적인 과제와 유럽에서 전파된 전원도시의 미국화를 시도한 레드번(Radburn) 신도시 개발에 채용된 설계 개념이다. 당시 뉴욕시 교외 지역에 해당되는 뉴저지주에 건설되기 시작한 레드번 신도시는 도시계획사에 있어서는 중요한 획을 그은 설계적 기법들이 시도되었다.
미국 도시의 전통적인 격자형 도로로 나뉜, 연속된 작은 규모의 블록들이 보행자와 자동차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대안으로 레드번은 한 변이 300~400m인 슈퍼블록을 구성하고, 자동차는 수퍼블록 외곽의 가로 줄기에서 막다른길(cul-de-sac)로 나뭇가지처럼 연이어 진입하는 구조다.
그러나 핵심은 슈퍼블록 내부를 관통하는 공원녹지과 그로부터 가지처럼 뻗어 나와 각 주택으로 연결되는 보행 전용 연결 체계다.
인접한 슈퍼블록과 입체 보행로로 연결되고 모아진 보행녹도는 기차역과 같은 대중교통결절점과 중심 상업 및 커뮤니티시설들과 연결된다.
이런 슈퍼블록 3~4개로 구성되는 근린주구 중심 위치에는 녹도로 연결된 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이 100년이 다 되어가는 주거단지의 가치는 지금도 주변의 대형 필지 주택들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20년대 말 불어닥친 대공황으로 인해 개발회사는 파산하고 원래 계획의 일부만이 실현되어 이후 형성된 미국의 전형적인 교외 주거단지에 묻히게 되었다. 전후 미국의 교외 개발이 확대되면서 그 레드번의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구성보다는 슈퍼블록이나 컬드삭, 곡선형 도로 등 개별 요소들만이 변형되어 채용되었다.
또한 레드번의 공유되는 공공녹지가 아닌 개인화된 넓은 안마당과 결합하여 미국의 전형적인 저밀의 폐쇄된 주거단지들이 무분별하게 확산하여갔다.
국내에서도 슈퍼블록의 내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보행 연결 체계에 대한 개념은 사라지고 통과교통을 억제하기 위한 슈퍼블록이 기형적으로 도입되어 이루진 곳이 강남이다.
강남의 문제는 여기에 더해 교외주거지역이 아니라 극대화된 연결성이 필요한 서울대도시권의 도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 슈퍼블록 안 도로 체계는 길을 잃기 십상이지만 그나마 부분적으로 통과교통을 담아낼 수 있었고, 아파트단지들도 개방형으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어느새인가 단지 출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이 위압적인 폐쇄형 주거단지가 슈퍼블록 전체를 사적인 공간으로 독점하게 되었다.
한동안 서울시는 재건축을 통해 도심에 걸맞지 않은 슈퍼블록에 통과도로를 개설하고자 시도한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사유재산권을 앞세운 재건축단지 주민들의 반발로 갈등이 발생하자 타협안으로 제시된 것이 공공보행통로이다. 도심에 차량 통행의 연결성을 함께 수용 못 하는 것이 아쉽지만 보행의 연결만이라도 재구성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대안이다.
이번 압구정3구역의 공공보행통로를 수용하지 않고, 수용될 수 없는 욕망의 용적률을 얻고자 하는 투표 결과는 공공성을 대가로 제공되는 인센티브와 재건축 진행의 우선순위라는 떡을 얻을 명분을 잃게 만들어, 줄 서 있는 다른 재건축사업에 그 자리를 내어줘야 할 가능성이 크다.
2000만 서울대도시권의 실질적인 도심인 강남을 대규모 폐쇄형 주거단지로 계속 채우는 것은 더는 용납하기 어려운 욕망이다.
다시 한번 사랑이 넘치는 교회의 따뜻한 복도가 생각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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