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국토부 퇴직자들 건설업서 '인생 2막'…순살 아파트는 예견된 부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의 철근 누락 사태를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을 뿌리 뽑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LH 전관예우, 불량 자재 납품, 감시 시스템 미작동 등 부실 공사를 유발하는 이권 카르텔을 사태의 핵심으로 지목하면서다. 전수조사와 책임자 강력 처벌 등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했으나 이권 카르텔의 핵심을 건드리려면 국토부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 장관은 지난달 31일 'LH 무량판 구조 조사결과 발표'에서 "윤석열 정부는 반 카르텔 정부"라며 "건설분야의 이권 카르텔도 본격적으로 뿌리 뽑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르텔은 LH만 얘기하는 게 아니고, 시흥은계지구 상수도관 공사에 불량 자재를 납품한 업체들 등 우리 사회 이권 카르텔의 모든 문제를 다 들여다보려한다"며 "인사, 법적 조치뿐만 아니라 수사·고발조치까지 해서 LH와 민간 건설을 둘러싼 총체적인 이권 카르텔을 정밀 겨냥해 끝까지 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카르텔 문제 제기는 LH 전관예우에서 시작됐다. LH 퇴직자들이 설계사와 감리회사 등 건설업계로 진출하면서 감시·감독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이한준 LH 사장은 "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가 60년이 된 조직임을 감안하면 수백명이 은퇴해 건설업계로 이동했다"며 "(LH 출신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최근에 간 사람이 있는지 등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회사에는 전관들이 다 있더라"고 지적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LH 전관들이 설계사나 감리사로 넘어가 로비를 해서 공공 사업을 등을 따내면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라며 "예를 들어 10억원 규모의 설계를 따내면 로비 등에 소요된 비용을 빼고 8억원에 공사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을 딴 설계 업체가 중간에 마진을 챙기고 재하도급을 주게돼 설계 자체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카르텔이 부실로 이어지는 요소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건설업계 카르텔에서 국토부도 예외는 아니란 지적이다. 국토부 공무원들 역시 퇴직 이후 건설 관련 협회 등 건설업계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장관이 이권 카르텔을 깨겠다고 했지만 국토부 직원들이 동조할지는 의문"이라며 "퇴직 후 자신들의 밥벌이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건설업계의 이권 카르텔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국토부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명기 고용노동부 건설분야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는 "이권 카르텔을 깨야 한다는 방향성에 대해 적극 지지한다"며 "하지만 건설업계에 끈끈한 인맥, 서로의 이권을 위해 눈을 감아주는 문화 등으로 형성된 이권 카르텔을 깨려 한다면 일단 국토부부터 개혁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실 시공 책임 설계사 1명, 감리자 1명 처벌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공조직이든 협회든 시공사든, 문제를 일으킨 조직 전체에 타격을 주는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카르텔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민간 아파트 300여곳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한다. 이달 중 안전점검 방식과 일정을 확정해 이르면 연내 최종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민간 아파트 단지 중에는 지하 주차장뿐 아니라 주거동에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곳도 다수 포함돼 있어서 조사 결과에 따라 파장이 클 전망이다.
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준공된 전국 민간 아파트 중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단지는 모두 293개다. 이 중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105개 단지, 이미 입주를 마친 곳은 188개 단지다. 해당 민간 아파트 중 일부는 지하 주차장뿐 아니라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월 외벽이 붕괴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도 주거동에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곳이었다.
이번에 '철근 누락'이 밝혀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15곳은 지하주차장에만 무량판 구조를 사용했다. 무량판 구조는 무게를 버티는 보 없이 기둥이 직접 슬래브를 지지하기 때문에 기둥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철근을 보강하는 게 필수적이다. 앞서 무너진 인천 검단 LH아파트 지하주차장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도 무량판 구조에 무단 설계변경·부실시공·감리 등이 겹치면서 무너졌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무량판 구조는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안정성이 검증된 공법"이라며 "구조에 맞춰 제대로 설계·시공·감리를 하지 못하는 건설업계의 '인적 오류'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 국토부 293개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최종 결과는 3~4개월 소요 예상
국토부는 이달 중 293개 민간 아파트 점검 일정과 방법을 확정해 착수할 방침이다. 안전점검 방식은 주민들이 추천하는 제3의 안전진단 전문기관이 맡는 방안이 유력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철근 누락으로 주거 불안이 커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민간 아파트도 최대한 일정을 서두를 것"이라며 "이달 중에는 조사 대상과 세부 일정을 확정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LH 아파트처럼 단지명을 완전히 밝히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단지명 공개에 따라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발도 있을 수 있어서다.
최종 안전진단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3~4개월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달 말 발표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91개 무량판 구조 단지 전수조사 결과도 올해 5월에 시작해 4개월가량이 걸렸다. 실제 점검에 착수하면 무량판을 적용한 부분의 설계 도면과 구조계산서를 분석하고, 초음파를 이용해 철근이 제대로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는 비파괴 검사를 하게 된다. 콘크리트 강도 조사도 거친다. 안전점검 결과에서 문제가 확인되면 정밀안전진단을 거쳐 보수·보강 공사를 진행한다.
국토부는 안전진단에 필요한 비용은 건설협회가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보수 ·보강 비용은 공사가 진행 중인 단지에서는 시공사와의 협상을 통해 가능하다. 다만 입주가 완료된 단지는 자체 비용으로 추진한다. 민간 아파트는 총 공사비의 3%를 하자보수 예치금으로 적립해두고 있다. 다만 이를 사용하려면 주민 동의가 필요하다.
또 상황에 따라 조사 대상 민간 아파트 단지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이번 전수조사 기준으로 삼은 2017년 이전에 준공된 아파트를 포함하면 무량판 구조 적용 단지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정부는 LH가 본격적으로 무량판 구조를 도입한 2017년에 맞춰 이번 조사 시점을 설정했다.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방윤영 기자 by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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