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약값 500만원…"폐암치료 포기하려던 순간 기적이"[인터뷰]

송연주 기자 2023. 8. 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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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폐암 치료제 '렉라자' 무상공급
서울서 첫 무상환자 혜택…EAP 3호 환자
대상자 국내 3천명…"환자에 너무 좋은일"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고윤호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지난 1일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종양내과 외래진료실에서 최근 비소세포폐암이 재발한 환자 정선옥 씨를 진료하고 있다. 정 씨는 유한양행이 건강보험 적용 전까지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한 폐암치료제 '렉라자' 동정적사용프로그램(EAP)의 3호 대상 환자로 등록됐다. 2023.08.02.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송연주 기자 = "월 500만원 상당 약값을 감당할 엄두가 안 나 폐암 표적항암제 치료를 포기하려 했어요. 운 좋게 목숨을 구한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유한양행의 폐암 치료제 무상 공급 프로그램(동정적 조기 공급 프로그램·EAP)의 서울 지역 첫 대상자가 된 정선옥(61세)씨. 지난 1일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종양내과 진료실에서 고윤호 교수에게 진료를 본 후 이렇게 말했다.

이날 정씨는 먹는 폐암 신약 '렉라자'를 무상으로 처방받았다. 한 달 여 전, 암 재발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그는 유한양행이 지난 달 시작한 EAP의 적용 대상이 됐다. 부산 고신대복음병원 1·2호 환자에 이은 렉라자 EAP 3호 환자다. 서울·수도권 지역에선 첫 사례다. 고가의 최신 항암제를 무상 공급 받게된 건 그의 표현대로라면 "정말 다행이었고, 운이 좋았다".

암 재발 사실을 알게 된 건 두달 전이다. 정씨는 지난 2021년 12월 처음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돌연변이를 동반한 비소세포폐암 3기 진단을 받은 후 작년 1월 은평성모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보조항암요법으로 4회의 항암치료를 힘겹게 받아 작년 4월 겨우 마쳤다. 그런데 1년 여만인 올해 6월 정기검사에서 재발 소견이 나타난 것이다.

주치의인 고윤호 교수는 "진단 당시 EGFR 변이가 양성이었던 환자라, 재발할 경우 표적항암제를 고려했다"며 "다행히 표적항암제 '렉라자' EAP가 시작하던 시점과 맞아 EAP 대상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렉라자 EAP'는 유한양행이 폐암 1차 치료제로 확대 허가 받은 국산 31호 신약 렉라자를 건강보험 적용 시점까지 무상 공급하겠다고 공표한 프로그램이다. 보험급여가 적용되기 전까진 비싼 항암제에 대한 환자 접근권은 거의 없다. 렉라자 등 3세대 최신 약물의 연간 약값이 7000만원에 이르는 점을 고려해, 유한양행은 한시적 무상 공급이란 통 큰 결정을 내렸다.

정씨가 EAP 대상이 될 수 있던 건 기준과도 맞아떨어져서다. 렉라자 1차 치료 적응증에 해당하는 모든 환자가 대상이다. 이전에 치료받은 적 없는 EGFR 엑손19 결손 또는 엑손21 치환 변이된 진행성·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다. 정씨는 EGFR 양성인 재발 환자이므로 대상이 됐다.

고 교수는 "EGFR 유전자에 변이가 생긴 환자 중 수술이 불가능한 국소진행성 단계이거나 전이된 환자, 기존에 수술을 했는데 재발된 환자가 EAP의 대상이다"며 "이번 환자는 재발된 경우이고, 처음 진단 당시 이미 전이됐다면 초치료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AP 적용 대상 환자는 국내에 연간 3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고 교수는 예상했다.

대상 환자 연간 3000명…"신약 마케팅? 환자에 너무 좋은 일"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고윤호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지난 1일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종양내과 외래진료실에서 최근 비소세포폐암이 재발한 환자 정선옥 씨 진료를 마친 후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씨는 유한양행이 건강보험 적용 전까지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한 폐암치료제 '렉라자' 동정적사용프로그램(EAP)의 3호 대상 환자로 등록됐다. 2023.08.02. myjs@newsis.com

렉라자 무상 공급은 최신 치료의 혜택을 비용 부담없이 받는다는 데 우선 의미가 있다.

정씨는 "재발된 걸 알았을 때 경제적인 걱정이 앞섰다"며 "3세대 약값이 한달에 500만원이라는데, 우리 가족 월급보다 큰 돈이다.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3세대 표적항암 치료를 포기하겠다고 얘기하러 갔을 때 선생님이 EAP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니 조금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렇게 포기의 순간에 있을 때 뜻밖의 행운을 얻었다"고 말했다.

3세대 최신 약물이 환자에 조기부터 쓰여 치료효과를 높이는 기능도 기대할 수 있다.

고 교수는 "1~2세대 표적항암제를 사용하거나 3세대 '타그리소'를 본인이 부담해 사용하는 환자의 상당수는 렉라자 EAP의 혜택을 볼 수 있다"며 "1세대는 보통 10개월, 2세대는 14~15개월이면 약의 효능이 떨어진다. 반면 3세대는 23개월 이상 효과가 유지된다. 아직 생존기간 데이터는 없지만 1세대에 비해 생존기간을 30% 연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뇌전이가 동반된 환자에게 렉라자의 효과가 좋다"며 "다른 표적항암제와 달리 심장 관련 부작용도 적다. 1~2세대 및 타그리소 마저도 장기 사용 시 심장 관련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렉라자는 이런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아 좀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AP로 렉라자 사용이 확대되면 1~2세대 약물 사용은 줄어들 것으로 봤다. 궁극적으론 치료효과가 높아질 거란 설명이다.

고 교수는 "렉라자 무료 공급으로 1~2세대 사용 환자군이 크게 줄고 타그리소(3세대 경쟁약) 사용 환자군도 거의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며 "치료 효과도 높아질 것이다. 신약 마케팅, 약가 협상을 겨냥한 여론전이란 시각이 있는 것도 알지만 분명한 건 환자에게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은평성모병원 EAP 확정 환자 6명…다학제 진료로 빠른 심사"

은평성모병원에는 정씨 외에도 렉라자 EAP 확정 환자가 6명에 달한다고 했다. 빠른 심사와 효율적인 협진으로 신속한 적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렉라자 EAP는 전국 2~3차 의료기관에서 반드시 각 의료기관 마다 생명윤리위원회(IRB) 승인을 획득하고 담당 주치의 평가, 환자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고 교수는 "생명윤리위원회와 심사 계획을 미리 준비해, 렉라자 1차 치료제 허가 후 빠르게 환자에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며 "정씨의 경우 7월 초 윤리위 심사에 올려 약 20일만에 통과됐는데 다른 기관 프로세스에 비해 빠른 속도다"고 설명했다.

연간 20~30명이 이 병원에서 렉라자 EAP 혜택을 받을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그는 "또 다학제 진료가 잘 되는 점도 빠른 운영이 가능했던 이유다. 종양내과, 흉부외과, 호흡기내과 등이 잘 협진해 치료방향을 효율적으로 정한다"며 "환자는 다학제 진료가 잘되고 임상연구를 통해 최신 약물 치료 기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형편 때문에 최신 치료를 포기하려 했던 내가 혜택을 받게 된 건 고마운 일이다"며 "환자들이 EAP 프로그램을 알 수 있도록 많이 알려졌음 좋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ongyj@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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