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아파트면 이랬겠냐"…'철근누락' 날벼락에 LH 입주민들 분통
1일 방문한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에 있는 양주회천 A-15블록 아파트.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880세대 규모의 이 행복주택(대학생, 청년, 신혼부부 대상 내년 2월 입주)은 지하주차장 시공 과정에서 보강철근 154개 중 154개 전부가 누락된 곳이다.
◆ 지하주차장 철근 '0개' 양주회천...시공사 한신공영 "설계도면대로 했을 뿐"
단지 정문과 후문에 위치한 지하주차장 입구에는 잭서포트(임시 지지대)로 보이는 각종 기자재가 검은색 그물망에 가려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전날 국토교통부는 이 아파트를 '구조계산 누락'(전구간 전단계산누락)으로 보강철근이 들어가지 않은 유일한 곳이라고 지목했다.
국토부 발표 탓인지 현장에서 만난 시공사(한신공영) 관계자는 "단지 내로 들어가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반응했다. 그러면서 "설계사무실(범도시, 유엔피) 구조기술설계사가 지하주차장에 전담보강검토를 아예 안했다"며 "힘이나 하중만 계산한 도면이 통과됐고 우리는 그대로 공사만 했을 뿐"이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현재 한신공영은 8억9000만원을 투입해 슬래브(기둥상부에 리브가 있는 강판접합) 보완과 기둥신설 등 보수 작업에 돌입했다. 이르면 다음 주까지 보강을 완료할 계획이지만 국토부 점검 결과에 따라 더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사를 지켜보던 인근 주민은 "정말 철근이 하나도 안 들어 갔느냐"고 반문하면서 "찰흙덩이로 빚은 것과 마찬가지인데 저렇게 보강한다고 안전할지 잘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 경기 파주 초롱꽃마을 입주민들 분통..."천막 볼때마다 불안"
지난해 8월 입주를 시작한 경기도 파주시 동패동 초롱꽃마을 3단지는 양주회천 A-15블록 아파트도보다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입주민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대보건설이 시공하고 에스아이그룹, 에이유종합건축사 사무소, 한림구조엔지니어링이 설계를 맡은 이 단지는 지하주차장 331곳 가운데 12곳에 보강철근이 빠졌다.
한 입주민은 "강남 최고급 아파트였다면 이렇게 지었겠느냐"며 "시퍼런 천막을 볼 때마다 불안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 안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지하주차장 2곳에는 '위험'이라고 새겨진 빨간색 테이프로 싸여진 파란 천막이 자리했다. 인부들은 소량으로 타설된 시멘트를 천막 안으로 갖고 들어가 슬래브 보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사들은 '도면대로 공사한다'는 원칙이 있지만 이상 징후 발견시 발주처에 건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건설 산업의 각종 관행 전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지금 입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LH 발주)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시공, 부실 감리가 이뤄졌다"며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보강철근이 대다수 누락된 것으로 밝혀진 경기도 한 아파트 입주민의 말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91개 단지를 전수조사한 결과 15개 단지에서 기둥으로 쏠리는 하중을 견뎌주는 보강철근이 빠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과 입주예정자들이 패닉에 빠졌다.
특히 문제가 생긴 곳들은 대부분 대부분 청년과 소득기준에 맞는 신혼부부 등 저소득층을 위해 만든 행복주택이나 공공임대주택이다. 보금자리를 해결했다는 안도감이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는 불안감으로 바뀐 셈이다.
1일 LH 등에 따르면 문제가 발견된 15개 단지 중 5개 단지(4287가구)는 이미 입주가 이뤄졌다. 경기 파주 운정 A34블록과 남양주 별내 A25블록, 충북 음성 금석 A2블록, 충남 공주 월송 A4블록, 아산탕정 2-A14블록이다. 금석 A2블록은 기둥 123개 중 101개에서 보강 철근이 누락됐다.
한 입주민은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야하는 현실이 무섭다"며 "불안해서 당장 짐을 싸고 친척집에 간다는 주민들도 많다"고 했다.
이번 발표 전까지 LH와 아파트 측은 해당 주민들에게까지 사실을 숨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입주가 완료된 경기도 파주시 파주운정 A34블록 지하주차장 곳곳에는 '위험'이라고 적힌 테이프가 둘러져있었다. 천막 위에는 '페인트 도색 보수작업'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실제로는 철근 보강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이 아파트는 이번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지하주차장 기둥 331곳 중 12곳에서 보강철근이 빠진 것으로 드러난 곳이다.
한 입주민은 "입주 1년이 다 돼가는데 이제야 보강공사를 하는게 말이 되냐"며 "이마저도 철저히 숨겨가며 주민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입주를 진행중인 충남 아산배방 LH 14단지는 행복주택이다. 1139세대 중 691세대가 입주를 마쳤다. 세대별 면적은 최대 44㎡로 대부분 1인가구다. 한 입주민은 "힘겨웠던 주거문제를 해결해 홀가분한 기분이었는데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문제가 생긴 다른 아파트 입주민도 "입주자들이 모인 단체카톡방에서 모두가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지만 당장 이사를 갈수도 없고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많지 않아 패닉상태"라며 "신혼부부 전세대출을 받아 입주했는데 앞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한편 LH는 외부 기관을 통해 해당 단지들에 대한 안전진단에 나설 예정이다. LH 관계자는 "주민에게 먼저 상황을 설명한 뒤 외부 기관을 통해 정확한 하중 계산을 할 계획"이라며 "입주민의 신뢰 회복을 우선으로 해 모든 지적 사항을 충분히 반영할 것"이라고 했다. 국토부는 LH 외 민간 시행사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100여곳도 점검중인데, 이달 중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중 철근을 누락한 것으로 밝혀진 15개 단지 명단이 공개되면서 시공을 맡은 건설사들도 타격을 받고 있다. LH가 발표한 단지 중 시공 오류는 3곳이지만 명단에 공개된 건설사들이 모두 철근을 빼먹은 회사로 오인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는 대부분 중견·중소업체로 주가 하락과 수주 등 타격이 불가피하다. 향후 책임 소재를 묻기 위해서라도 설계와 시공 등 원인을 나눠 발표하는 등 정부의 대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날 LH가 발표한 철근 누락 15개 단지 시공에 참여한 건설사는 이날 일제히 주가가 하락했다. 효성중공업은 전날 대비 5.67% 하락하며 16만46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LH 발표에 따르면 효성중공업이 시공 중인 광주 선운2지구의 철근이 빠져 있는 이유는 구조계산 오류다. 설계오류로 처음부터 설계상에 철근이 빠져 있었다. 대림건설, 대보건설, 동문건설, 한라, 한신공영, 대우산업개발 등이 시공한 현장도 설계오류로 철근이 누락됐다.
지하주차장이 붕괴된 인천 검단신도시 현장은 시공사가 처음부터 설계에 관여하지만 발표된 단지들은 종합심사낙찰제(종심제)를 통해 건설사들이 수주를 따냈다. 이미 설계가 나온 상태에서 시공사들이 입찰에 참여해 설계대로 시공하는 식이다. 설계 오류의 1차 잘못은 설계사무소이고 이를 관리·감독하지 못한 발주처인 LH의 잘못이 크다.
LH가 발표한 단지 15곳 중 10곳은 모두 설계상의 오류다. 심지어 2곳은 아직도 조사 중으로 설계와 시공 등 부실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공사 전체 명단이 공개되면서 해당 건설사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건설사 한 관계자는 "설계가 처음부터 넘어오기 때문에 그대로 시공한다"면서 "전문적인 구조 계산이 포함되는 설계상의 오류를 시공사가 찾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LH측 역시 시공사가 시공 중에 설계상의 문제점을 발견해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시공사의 필수 의무 사항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발표 방식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부실시공은 책임소재가 명확해야 하는 만큼 발표 때부터 설계와 시공 등 순차적으로 원인을 나눠 발표하는 게 필요한데 한 번에 공개하면서 언급된 모든 건설사의 이미지 실추와 입주민도 혼선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건설사 다른 관계자는 "설계대로 시공했지만 철근을 빼먹은 파렴치한 건설사로 취급받고 있다"면서 "기업 이미지 훼손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단지마다 상황이 다른데 명확한 설명이 없고 누구한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너무 급하게 발표하다 보니 입주민들도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일부 건설사들은 향후 LH가 발주한 공사 물량을 따내는 데 불이익을 우려하면서 책임 소재에 대해 말을 아꼈다. 한 관계자는 "안타까운 부분이 있지만 LH는 중요한 발주처"라면서 "언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양주·파주(경기)=이정혁 기자 utopia@mt.co.kr 김평화 기자 peace@mt.co.kr 배규민 기자 bkm@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세 집 살림' 남편 사연 충격…"내연녀가 제일 뻔뻔" 김지민 분노 - 머니투데이
- '64세' 김연자 "'13년 열애' 연인과 동거 중…칠순 전 결혼하고파" - 머니투데이
- '몸캠피싱' 걸린 전업주부 남편…유포 영상 본 아내는 '이혼 선언' - 머니투데이
- 대본 던진 김지민, 김준호 거짓말에 "슬슬 멀어지자" - 머니투데이
- "딴 여자와 살림 차린 남편…양육비 안 주더니 이혼소송 걸어" - 머니투데이
- 23살 지적장애 아들 씻겨주는 엄마…'모르쇠' 남편 "덩치 커서 힘들어" - 머니투데이
- '입장료 연 7억' 걷히는 유명 관광지서…공무원이 수천만원 '꿀꺽' - 머니투데이
- "ㄱ나니? 그때 그 시절"...추억의 '싸이월드' 내년 부활한다 - 머니투데이
- '이혼' 벤, 전남편 폭로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됐지" - 머니투데이
- "치매 남편 손에 목숨 잃어"…안방서 둔기 살해→징역 15년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