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을 쫓아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캐스팅이 반복되는 드라마 판에 맛깔 나는 연기를 선보이는 뉴 페이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바로 실력과 인기를 검증받은 뮤지컬 배우들이다.
PD가 모셔온 뮤지컬계 여왕 김선영
1999년 뮤지컬 '페임’으로 데뷔한 김선영(49)이 JTBC '킹더랜드’로 드라마에 입성했다. '킹더랜드’는 거짓 웃음을 경멸하는 재벌 2세 호텔 본부장 구원(이준호)과 웃어야 하는 호텔리어 천사랑(임윤아)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김선영은 구원의 이복 누나 구화란 역을 맡아 그룹 후계자 구도를 두고 동생과 갈등을 빚는다. 똑 부러지지만 앙칼진 고음이 아닌 저음의 목소리와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을 보고 있으면 실제로 오너 2세 중 이런 사람이 실존할 것 같다.
이번 출연은 그의 팬인 임현욱 PD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임 PD는 "예정됐던 공연이 있는데 감사하게도 출연을 승낙해주셨다.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셨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임 PD가 감사 인사를 전할 만도 한 게 김선영의 도전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뮤지컬계에서 김선영의 위치는 한국 뮤지컬의 역사나 마찬가지인 필모그래피가 말해준다. 2000년 '렌트’, 2006년 '미스 사이공’과 '에비타’, 2012년 '엘리자벳’, 2013년 '위키드’ 등 수많은 대작의 한국 라이선스 초연에 출연해왔다. 특히 2004년 '지킬 앤 하이드’ 초연 앙코르공연에서 '여왕 루시’라는 별명을 얻으며 본격적인 김선영의 시대를 열었다.
김선영은 드라마 방영 시작 전 "‘킹더랜드’라는 멋진 작품으로 데뷔 후 처음 시청자분들을 만나게 되어 더없이 기쁘고 영광스러운 마음이다"라며 "좋은 작품과 캐릭터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짧은 각오지만 겸손함이 느껴진다. 김선영이 오랫동안 '퀸’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 아닐까.
로맨틱한 직진 연하남의 정석 민우혁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닥터 차정숙’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엄정화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 캐릭터가 있다. 차정숙의 생명을 구한 담당 의사이자 험난한 인턴 생활의 등불이 되어준 연하남 '로이 킴’이다. 언제나 꿋꿋한 차정숙에게 스며들어 거침없이 사랑 고백까지 한 로이 킴 역할은 실제로도 도전을 거듭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민우혁(40)에게 맞춤옷처럼 잘 어울렸다.
민우혁은 프로야구단 LG트윈스 육성선수와 아이돌을 거쳐 30세에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이색 이력의 소유자다. 뮤지컬은 아내의 권유로 도전하게 됐다. 걸 그룹 LPG 출신인 아내 이세미는 홈쇼핑 쇼호스트로 생계를 책임지며 남편의 꿈을 응원했다.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민우혁은 2015년 '레 미제라블’의 혁명군 리더 앙졸라 역을 기점으로 '벤허’ '프랑켄슈타인’ '지킬 앤 하이드’ '영웅’ 등에서 주연을 도맡았다. 안정적인 보컬과 187cm의 신장, 압도적인 피지컬, 준수한 외모는 센 캐릭터를 연기할 때 그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단, 무대 아래에서는 두 아이의 자상한 아빠이자 '우줌마’란 별명을 지닌 수다쟁이의 반전 매력을 갖고 있다. 민우혁은 엄정화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KBS '불후의 명곡’ 단골손님인 민우혁이 '불후의 명곡’에 처음 출연했을 때 전설이 바로 엄정화였던 것. 당시 '눈동자’를 불러 많은 관심을 받았다. 민우혁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품인 '닥터 차정숙’이 연기 인생의 중요한 도약대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민우혁은 "수백 명이 한 작품을 위해 마음을 모은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배웠다. 좋은 배우가 되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첫 드라마부터 주연 데뷔 박강현
‘뮤지컬계 아이돌’로 꼽히는 박강현(33)이 공중파 방송에 데뷔했다. 올해로 8년차이긴 하나 드라마 첫 출연부터 주연 자리를 꿰찼다. KBS '가슴이 뛴다’는 반인 뱀파이어 선우혈(옥택연)과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원지안)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공생 로맨스를 그린다. 게다가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다루기 때문에 캐릭터 흡입력이 떨어지면 시청자도 '현타’가 올 수 있다. 드라마 초보인 박강현은 유전병을 고치기 위해 반인 뱀파이어의 피를 찾는 부동산 개발 전문가 신도식 역을 매끄럽게 잘 표현해내고 있다. 이는 2015년 뮤지컬 '라이어 타임’으로 데뷔해 '웃는 남자’ '모차르트!’ '킹키부츠’ '마리 앙투아네트’ 등 대형 뮤지컬 주연으로 활약하며 쌓은 연기력 덕분이다.
박강현의 실력은 이미 여러 차례 검증받았다. 2017년 JTBC '팬텀싱어 2’에서 미라클라스 멤버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지난해에는 '하데스타운’으로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도 거머쥐었다. 특히 '모차르트!’와 '웃는 남자’에서 '깡차르트’ '깡윈플렌’으로 불리며 안정적인 연기와 가창력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박강현의 올여름은 '처음’으로 기억될 듯하다. 드라마 첫 출연에 이어 브로드웨이 뮤지컬 '멤피스’의 한국 초연에 참여한다. 1950년대 흑인음악을 백인 사회에 알린 전설적인 DJ 듀이 필립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듀이 역할을 맡았다. 스스로 "노래, 연기, 춤 모두 특출나지 않지만 포기를 모르고 집중하는 끈기가 성장의 비결"이라고 밝힌 박강현이 이번 드라마 나들이를 통해 또 어떤 성장을 이뤘을지 '멤피스’를 보면 알겠다.
‘맑눈광’이 연기를 한다면 김히어라
올 상반기 화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에는 나쁜 놈들이 수두룩하다. 그중에서도 약쟁이 화가 이사라 역의 김히어라(34)는 약에 취해 반쯤 풀린 눈과 친구의 배신에 돌아버린 눈 사이를 오가며 시청자들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더 글로리’로 제대로 포텐을 터뜨리기까지 김히어라는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쳤다. 2009년 뮤지컬 '잭 더 리퍼’로 데뷔해 연극과 뮤지컬에서 차곡차곡 연기력을 쌓았다. 드라마 데뷔는 2021년 JTBC '괴물’이다. '더 글로리’ 정식 대본을 받고 난 후 "매체에서 나를 선택해주시니 지난 10년을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허투루 보내지 않은 모양이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7월 29일 첫 방영되는 tvN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는 김히어라에게 또 한 번 날개를 달아줄 작품이 될 것이다. '더 글로리’ 때보다 더 잔인해진, 살인을 즐기는 순수 악 '겔리’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겔리 캐릭터를 위해 김히어라는 처음으로 식단 조절과 운동을 하며 근육을 키우고, 아주 짧은 쇼트커트에 탈색을 하는 등 외향적으로 많은 변신을 꾀했다. 전작 '더 글로리’가 워낙 흥행해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이 있고 새 작품은 시즌 2부터 합류하는 거라 여러모로 쉽지 않은 촬영이었을 텐데 오히려 기대감이 더 컸다는 그. 최근 연기에 매진하기 위해 서울 대학로에서 3년간 운영해온 카페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TV 드라마와 거의 동시에 뮤지컬 '프리다’도 8월 1일부터 관객을 찾아간다. 뮤지컬에선 주인공 프리다 역을 맡았다. 이번에야말로 아픔을 예술로 승화한 진짜 화가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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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tvN드라마 JTBC KBS 김희어라 쇼노트 오디컴퍼니 에이콤 SNS 및 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