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문-암울한 현실성 위에 조난당한 판타지[시네프리뷰]
2023. 8. 2. 07:14
할리우드 시스템이 자랑하는 성공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참조는 한국 영화의 병폐로 지적되고 있다. <더 문>과 같은 날 개봉하는 <비공식작전> 역시 관습적 한계에 함몰된 작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어 걱정이다.
제목 더 문(The Moon)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29분
장르 SF, 드라마
감독 김용화
출연 설경구, 도경수, 김희애, 박병은, 조한철, 최병모, 홍승희
개봉 2023년 8월 2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약칭 SF 영화의 양상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란 전제하에 아무 제약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방식이다. <스타워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우주활극)부터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 <메간>처럼 인공지능에 지배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까지 규모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다른 하나는 최대한 현실의 영역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2013),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2015), 데미안 셔젤 감독의 <퍼스트맨>(2018)처럼 우주인을 소재로 한 영화 대부분이 그렇다. 또 <컨테이젼>(2011)이나 <버드 박스>(2018)처럼 통제 불능의 재난 상황에 놓인 인간군상을 그려내는 작품들도 이에 속한다.
영화 <더 문>은 후자에 속한다. 여러 부분에서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우주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체험형’ 영화를 탄생시키는 것은 제작진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단다. 달과 광활한 우주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기려 노력했고, 이것이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되길 원했다고 한다.
관습적 전개에 녹아든 현실적 무의식
현재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왜곡 없이 구현하고 싶었다는 김용화 감독은 시나리오, 프로덕션 디자인 단계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 국가 전문 연구기관의 자문을 받았고, 철두철미한 고증과 자료 확보에 힘썼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점은 영화 속에서 전혀 다른 맥락의 ‘리얼리즘’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고 수습을 위해 호출된 전임 센터장 김재국(설경구 분)은 복귀를 완강히 거부한다. 하지만 조난자가 죽은 동료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귀환 작전에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달려든다. 이후 한국의 기술과 정보로는 구조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 재국은 미국 나사(NASA)의 달 궤도선 메인 디렉터인 윤문영(김희애 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다. 둘은 과거 부부였지만 이혼한 사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결정적인 판단의 순간에 인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책임감이나 사명감, 도덕적 잣대나 냉철한 이성이 아니다. ‘인맥’이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동기다.
더욱 끔찍한 상황은 절정에 이르러 목격된다. 구조할 수 있는 공식적 방법이 대외적으로 한계에 다다르자, 문영은 보안요원들을 피해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궤도선 대원들과 직접 통신하며 호소한다. “우주로 나간 이상 우리는 더 이상 특정 나라의 국민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우주인이다.”
안정성에만 영합하는 한국 영화의 위기
국가나 단체의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하거나 회피하는 짐을 결국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현장 인력에 고스란히 전가하고 있다. 허울 좋은 절차와 체계에 반하는 오직 인간애에만 의지해야 하는 치명적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상황의 해결은 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는 이들의 결단 또는 희생을 통해 수습되지만, 관리자들은 절대 책임지지도 책임질 이유도 없다.
문제는 이런 모습들이 의도된 풍자나 사회비판 메시지의 의도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개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출된 선택이다. 이를 놓고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 개개인의 사회적 이해나 가치관까지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더 문>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또 하나의 현실성은 바로 2023년 한국 영화의 ‘암울함’이다.
할리우드 시스템이 자랑하는 성공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참조 또는 형식 복제는 최근 한국 영화의 크나큰 병폐로 지적되고 있다. <더 문>과 같은 날 개봉하는 <비공식작전> 역시 관습적 한계에 함몰된 작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어 걱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급격히 줄어든 제작 편수와 소극적 투자의 여파는 이런 한국 영화의 안일한 안전주의를 더욱 강화할 공산이 크다. 지금의 양상으로 볼 때 ‘한국 영화 위기론’은 호사가들의 기우만은 아닐 수 있다.
올해도 다시 돌아온 ‘한국 영화 빅 4’
작년 여름에는 소위 ‘한국 영화 빅 4’라는 거창한 부름 속에 4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 김한민 감독의 <한산: 용의 출현>,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 배우 이정재가 연출을 맡은 <헌트>였다.
공교롭게도 올해 역시 ‘한국 영화 빅 4’가 여름 시즌 극장가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포문을 여는 작품은 7월 26일 개봉한 류승환 감독의 <밀수>다(자세한 리뷰는 앞선 1538호 ‘시네프리뷰’ 참고).
한주 뒤인 8월 2일 <더 문>과 <비공식작전>이 같은 날 개봉한다. 엔간하면 화제작끼리는 암묵적 조율을 통해 개봉일이 겹치는 상황을 피하는 관례를 깬 형국이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비공식작전>은 1986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실제 발생했던 한국 외교관 납치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 <끝까지 간다>, <터널> 그리고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으로 주가를 올린 김성훈 감독의 신작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반면 소재 면에서 비교적 근래 공개된 <모가디슈>, <교섭>과 비교를 피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식상함 또한 인정해야 하는 약점이 있다. 무엇보다 언론시사회 후 전반적인 평가가 부정적인 분위기라는 점이 치명적이다.
그다음 주인 9일에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개봉한다. 김숭늉 작가가 2014년 연재를 시작한 인기 웹툰 <유쾌한 왕따> 중 2부에 속하는 <유쾌한 이웃>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엄태화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표면적으로 지진이라는 재난 상황과 다수의 인물이 등장한다는 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 되리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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