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묻는다[편집실에서]
꽃다운 나이의 청춘이 잇따라 스러졌습니다.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이를 두고 벌어지는 사후 풍경은 정녕 두 눈을 의심케 합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임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뒤늦게 공개된 유서와 주변 지인들의 증언에는 쉴새 없이 밀려드는 학부모의 갑질, 학교 시스템은 온데간데없고 교사 개인이 이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고충, 여차하면 인권탄압으로 몰릴까봐 제대로 학생을 지도조차 할 수 없는 추락한 교권, 궂은일은 저연차 교사에게 일단 미루고 보는 일선 교육현장의 고질적 관행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누구나 때론 학부모이고, 선생님이고, 학생입니다. 직장에선 신입이었다가, 언젠가는 상사가 됩니다. 남 일이 아닌 것 같아 다들 이제라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뒤틀린 현실을 토로도 해보고, 국화꽃을 바치며 넋을 위로하고, 법적·제도적 개선책 마련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지만 고인은 말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도저히 답을 찾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다는 방증인데, 후속대책이라고 나오는 것들은 어쩜 그리 단편적이고 일방적인지요. 살아남은 자들이 자기 편하자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입맛대로 문제를 해석하면서 졸지에 학생과 교사만 덩그러니 사각의 링 위에 올라서 있는 구도가 만들어져 버렸습니다. 위정자들이 연거푸 학생인권조례 탓을 합니다.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신장되는 바람에 교권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답니다. 과연 그런 겁니까. 학생 인권은 정도껏 보장해야 교권 추락을 막을 수 있는 겁니까. 둘을 동시에 보장할 수는 없습니까. 무릇 이 세상의 인권이란 정녕 특정 집단을 짓밟고서야 세울 수 있는, 그런 편협한 가치였던 겁니까. 누구 하나는 이겨야 난마처럼 뒤얽힌 교육현장의 문제를 풀 수 있기라도 할 것처럼 학생 대 교사의 대결구도로 몰아갑니다. 비겁하게도 나머지 쟁점은 모조리 링 밖으로 던져버립니다.
대한민국 해병대 1사단 소속 채수근 상병이 호우 피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다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어이없는 죽음입니까. 시험관 시술로 결혼 10년 만에 어렵사리 얻은 아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고이고이 길러 군에 보냈더니, 싸늘한 주검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구명조끼도 입히지 않은 채 인간띠를 만들어 급류 속으로 밀어넣었다니 그 무모함과 아둔함에 할 말을 잃습니다. 까라면 까야 하는 군대니까, 수색 작전 중 발생한 불의의 사고니까 억울해도 그냥 감내해야 하는 겁니까. 누구의 판단인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밝힐 생각은 않고, 진상규명 작업은 그저 유야무야되는 분위기입니다.
‘해병대 정신’을 외치며 급류에 뛰어들었을 고인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내리던 굵은 장대비가 빗물인지, 눈물인지 구분조차 어렵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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