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동학사의 여름

조성순 수필가 2023. 8. 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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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숲이 비를 맞고 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혼자 천년고찰까지 걷는 여기는 동학사 계곡이다.

동학사에서 갑사로, 갑사에서 동학사로 넘나들고, 병사골에서 장군봉에 이르고, 돌계단이 아니면 다다를 수 없는 은선폭포에서 연천봉 관음봉까지, 옆구리에서 날개라도 돋을 것 같았던 자연성릉의 아름다운 풍경, 쌓인 눈 위에서 비박하던 어느 겨울, 어렵게 갈 수 있었던 천단까지.

오래전 백두대간을 탔던 친구들과 계룡산 동학사 계곡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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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순 수필가

짙푸른 숲이 비를 맞고 있다. 단풍나무도 비목도 긴 장마에 지쳤나 보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혼자 천년고찰까지 걷는 여기는 동학사 계곡이다. 승가대학 돌담은 온통 푸른 이끼가 차지했다. 벚꽃이 환한 봄날이면 저 돌담 꽃그늘에 기대어 사진을 찍곤 했는데….

그동안 계룡산의 한 컷 한 컷이 생각난다. 동학사에서 갑사로, 갑사에서 동학사로 넘나들고, 병사골에서 장군봉에 이르고, 돌계단이 아니면 다다를 수 없는 은선폭포에서 연천봉 관음봉까지, 옆구리에서 날개라도 돋을 것 같았던 자연성릉의 아름다운 풍경, 쌓인 눈 위에서 비박하던 어느 겨울, 어렵게 갈 수 있었던 천단까지. 이제는 너무 멀리 있다.

오래전 백두대간을 탔던 친구들과 계룡산 동학사 계곡에서 만났다. 버스에서 밤을 지새워 새벽 산행에서 일출을 맞이하고 며칠씩 해외여행을 가도 산만 다니곤 했다. 세상 모든 길이 산으로만 향하던 시절의 친구들이다. 긴 세월만큼 펑퍼짐해진 우리는 이제 오르기보다 머무르기를 선호한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방패막이 삼아 계곡을 낀 식당에 모여 물안개 피어오르는 산을 올려다보며 지난 시간을 곱씹고 있다. 아직도 열정적으로 산행을 하는 이들도 있다. 남매 탑이라도 다녀오려던 그들의 계획은 좋은 핑곗거리로 인해 없었던 일이 되었다. 우린 꺾인 무릎을 모으고 앉아 삼불봉도 가고 신선봉도 간다.

식당 안에는 삼대가 모여 허리에 튜브를 끼고 해가 나기를 기다리는 손자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안타까운 눈빛이 있다. 계곡으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숨바꼭질하는 해님과 들락거리는 손자 녀석의 꽁무니만 쫓는다. 우중 산행의 뒤풀이로 파전에 막걸릿잔을 기울이는 이들도 있다. 애석하게도 긴 장마에 파전의 주인공 파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산행 뒤풀이에는 빠질 수 없는 메뉴라 기름 냄새가 식당 안을 가득 채운다.

버스가 벚꽃 길을 벗어나 동학사 진입로에 들어서면 왁자한 식당가를 지나야 동학계곡 옛길에 이른다. 동학사의 여름엔 지나친 오락과 명상이 공존한다.

번잡한 상가를 지나 빗소리마저 조용한 숲길을 따라 사찰에 이른다. 대웅전 예불 시간 낮게 깔린 천수경 소리에 발소리를 감추며 돌아 나온다. 그동안 산에서 커다란 바위에 한 뼘쯤 되는 소나무가 자라는 게 매우 신기했는데 저 나무도 바위에 뿌리를 내렸었나 보다. 이제 바위만큼 자란 뿌리로 바위를 끌어안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뿌리의 시간 속에 동학사계곡이 있고 매미와 다람쥐가 있다. 더불어 우리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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