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건설현장 감독·감리…철근 누락 빌미 됐나
시민단체 '전관예우' 의혹 제기도…감사 청구
(서울=뉴스1) 김도엽 김동규 박기현 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중 무려 15곳에서 철근이 누락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 과정에 LH의 관리 감독·감리 부실이 드러나면서 구조 자체를 바꾸지 못할 경우 이미 공사를 끝낸 현장뿐만 아니라 추후 공사 현장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 LH 출신들이 영입한 업체들이 사업 수주 과정에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단순 시공·설계·감리 문제 넘어…하청식 아웃소싱 등 종합적 문제
2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LH는 지난달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철근 누락 아파트 15곳의 명단을 공개했다. LH가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전국 91개 단지를 점검한 결과다.
그중 이미 입주를 마친 단지는 총 5곳이었다. △파주운정(A34) △남양주별내(A25) △아산탕정(2-A14) △음성금석(A2) △공주월송(A4) 등이다.
미입주 상태지만 공사는 마친 단지는 △충남도청이전신도시(RH11) △수서역세권(A3) △수원당수(A3) △오산세교2(A6) 등 4곳이다.
공사를 진행 중인 단지는 △양주회천(A15) △광주선운2(A2) △양산사송(A2) △양산사송(A8) △파주운정3(A23) △인천가정2(A1) 등 6곳이다.
특히 양주회천의 경우 전체 기둥 154개 가운데 154곳(100%)에서 철근이 누락됐다. 입주가 끝난 음성금석은 123곳 중 101곳(82.1%)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철근이 누락된 원인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설계·시공·감리 등 건설 전반의 문제가 종합적으로 맞물렸다는 주장이 그렇다. 꼬리를 무는 하청식의 아웃소싱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시공 과정에서는 설계 부실을 찾기가 쉽지 않아 감리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공통적으로 무량판 구조 자체가 사고 원인이 되기는 어렵다고 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구조설계 과정에서 아웃소싱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지적했다. 발주청이 설계 용역을 주면, 건축사가 구조기술사에 구조설계를 용역하고, 또 구조기술사가 자신이 직접 구조설계를 하지 않고 경력이 낮은 직원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구조계산이 끝난 뒤에는 도면을 그리는 과정도 외부에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현장에서는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구조설계를 아웃소싱하는 과정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구조설계사가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며 "물론 이후 구조기술사가 충분한 검토를 거치면 되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시공 과정이 설계와 괴리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사 소장은 "현장에서 설계대로 시공이 진행되지는 않는데 단순 실수일 수도 있지만 설계가 시공을 제대로 반영해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감리도 자신도 잘 모르는 영역인 구조상의 문제에 대해 현장의 입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판단하는데 이런 문제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당사자인 LH는 단순히 시공·설계·감리의 문제는 아니라고 밝혔다.
이한준 LH 사장은 "발주청인 LH도 전반적인 과정을 전부 통제하지 못한 부분에 책임이 있고, 설계사의 경우 무량판이라는 구조에 대해 100% 완벽하게 설계했다고 볼 수 없는 부분도 있다"며 "현장에는 현역에서 은퇴한 감리사가 굉장히 많은데, 새로운 공법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시공사의 경우 건설 물량이 많이 증가하는 데 비해 인력 증가가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현장이 가면 시공사의 경우가 본사에서 파견된 정규직 인력은 극소수"라며 "저는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하는 전체 시스템상, 구조상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실련 '전관 예우' 의혹 제기…감사 청구
이런 가운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전관 예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에 △전관 영입업체 부실설계 봐주기 △전관 영입업체 부실감리 봐주기 △공공사업 전관 영입업체 밀어주기 등의 감사를 요청했다.
앞서 2021년3월 경실련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LH 설계용역 수의계약 536건(9484억원)에 대한 수주 현황'을 분석한 결과 LH 전관 영입업체 47곳이 297건(55.4%) 6582억원(69.4%)을 수주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인천 검단 지하주차장 부실 공사를 언급하며 '이권 카르텔'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무량판 구조를 적용 아파트 단지에서 철근 누락 사례가 발생한 것이 소위 '전관'이 연관된 부실 감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며 "관계 부처는 고질적인 건설 산업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방안을 마련하라"며, 부실 공사를 전수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dyeo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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