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부실 공사 논란 중심에…"책임 인정" 즉각 수용한 까닭
이한준 사장 "LH도 책임"… 정부·여당 "지난 정부 이권 카르텔" 지목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년 만에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 2021년 LH 전·현직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최근 부실시공 논란으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대통령과 여당 등 정치권은 이번 부실시공의 원인으로 이른바 '건설 이권 카르텔'을 지목하고 있다. LH 퇴직자들이 설계·감리 업체 등에 취직하면서 이번 부실시공 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이 직접 관련 언급을 한 데다가 일부 시민 단체가 LH를 상대로 공익 감사를 청구하는 등 비판 여론이 쏠리면서 벼랑 끝에 몰리는 모양새다.
다만 정부·여당은 이번 부실 시공의 경우 지난 정부에서 시작돼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LH도 이번 사태의 책임을 빠르게 인정하며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건설 이권 카르텔' 직접 겨냥
윤석열 대통령은 1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LH 발주 아파트 지하 주차장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건설 산업의 이권 카르텔이 지적되고 있다"며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부실 공사의 주요 원인으로 이른바 '건설 이권 카르텔'을 정조준하고 나선 것.
이는 LH의 전관예우 등의 문제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전날 이번 부실시공 사태와 관련해 "설계·시공·감리·LH 담당자에게 어떤 책임이 있고, 어떤 잘못을 했는지 내부적으로 정밀 조사해 인사 조처와 수사 의뢰, 고발 조치까지 할 계획"이라며 "LH 안팎의 총체적 부실을 부른 이권 카르텔을 정면 겨냥해 끝까지 팔 생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LH는 지난 4월 발생한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의 후속 조처로 자사가 발주한 단지들에 대한 전수 검사에 착수한 바 있다. 점검 결과 무량판 구조로 된 지하 주차장 91개 단지 중 15개 단지에서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관련 기사: 철근 누락 부실공사 아파트 만연?…우려 현실화하나(7월 31일)
국토부는 이번 조사 결과 설계와 감리, 시공, 감독 등 건설 업계의 전반적인 부실을 지목했지만, 시장에서는 LH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지금까지는 유독 LH에서 발주한 단지에서 무더기로 부실시공 사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주택도시공사(SH) 역시 지하 주차장 무량판 구조 건축물을 전수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대상 현장 9곳 중 구조적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LH "공익감사 적극 수용"…정치권 "LH, 다시 태어나야"
이번 부실시공 사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쏠리면서 LH는 2년 만에 다시 벼랑 끝에 몰린 모양새다. LH는 지난 2021년 전·현직 직원들의 대규모 땅 투기 등이 적발되면서 비판을 받았고, 이후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해 왔다. 공기업 경영평가에서는 3년 연속 D등급을 받기도 했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의 경우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LH 역시 이번 사태의 책임을 회피하기보다는 잘못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앞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검단 신도시 주차장 붕괴 사고가 LH의 전관 특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공사의 설계와 감리를 맡은 업체들 모두 LH 전관 영입 업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LH는 즉각 입장을 내놨다. LH는 "이번 경실련의 공익감사 청구를 적극 수용하고 이후 진행될 감사원 조사에도 적극 협조할 예정"이라며 "비위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수사 기관 고발 조치 등 강력 대응하겠다"고 했다. 시민단체의 지적을 곧장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정치권에서도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 과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입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 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시공, 부실 감리가 이뤄졌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무량판 시공이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무렵부터 보편화했다고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이날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 정부 때 전·현직 직원들의 투기 문제로 국민을 한 차례 실망시킨 LH는 이번에야말로 대오각성해서 청렴하고 유능한 공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한준 LH 사장 역시 지난달 31일 열린 'LH 무량판 구조 조사 결과' 브리핑에서 LH 책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그는 "단순히 시공사의 문제나 설계사, 감리사의 문제로만 보고 있지 않다"며 "감독 기관이며 발주청인 LH의 경우에도 전반적인 과정을 전부 통제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언급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MD상품기획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이런 총체적 부실이 재발하지 않도록 공사 현장의 이해 관계자들이 서로 부실 등을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며 "LH의 경우 지난 직원 투기 사태 이후 여러 제도 개선안을 내놓고 시행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그간의 문제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나원식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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