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고발의 일상화'..양보와 타협 통한 생산적 정치가 아쉽다
민주당은 대여 공세, 국민의힘은 의혹 사전 차단 목적
"처벌 아닌 재발방지에 집중해야"
[파이낸셜뉴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선거철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치권에 고발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고발 건을 포함해 윤석열 정부 들어 총 13회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고발을 단행했다. 국민의힘도 '가짜뉴스 근절'을 명분으로 법적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양당 모두 '초강수 카드'를 남발하면서 '양보와 타협을 통한 생산적 정치'는 온데 간데 없고, 당리당략에 의한 명분싸움만 일상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경기도당은 1일 원 장관을 국가재정법·도로법·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 특별법 등 3개 법률 위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현행법상 심의를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음에도 원 장관이 독단적으로 사업 백지화를 결정했다는 게 요지다.
경기도당은 앞서 지난달 13일에는 원 장관을 형법상 직권남용죄로 원 장관을 고발한 바 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착 변경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 처가에 특혜를 주려 직무권한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민주당은 서해공무원 피살 사건, 문재인 정부 원전 정책 감사와 관련해 감사원을 고발하하는 등 윤 대통령 취임부터 현재까지 공수처에 13건을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잇따른 고발은 주로 대여 공세를 위한 것이다. 공수처 고발을 최후의 보루가 아닌 국정조사나 특검 등 전면전을 위한 신호탄으로 쓰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여당의 실책을 부각해 내년도 총선을 앞두고 유리한 여론전을 펴는 한편 정국 주도권을 쥐겠다는 복안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측 고발은 방어적 성격을 주로 띠고 있다는 관측이다. 아무래도 정책 추진과 예산 집행에서 유리한 집권여당인 만큼 야당의 공세가 이미 예견됐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미디어법률단은 지난달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사회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운영하는 민간인 3명을 명예훼손했다는 혐의로 잇따라 고발한 바 있다. 상대는 주로 윤석열 대통령 혹은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가짜뉴스를 퍼뜨렸다는 의혹을 받는 이들이다. 앞서 지난 6월에는 서이초 교사 사망과 국민의힘 의원 연관 가능성을 제기한 방송인 김어준씨를 고발한 바 있다.
여야간 고발전이 난무하면서 '양보와 타협을 통한 생산적 정치'라는 현실정치의 묘미가 거의 사라졌다는 평이 나온다. 여야간, 정당간 주요 정책과 노선을 놓고 얼마든지 싸우고 대립할 수 있지만, 막판에는 '양보와 타협'을 고리로 각자 출구전략을 찾는 게 통상적인 패턴인데 최근들어 '모 아니면 도'식의 강대강 대치로 인해 결국 민생만 멍들기 일쑤다.
특히 당 차원 고발의 경우 작은 의혹도 일파만파 커지면서 국회가 토론과 협의의 공간이 아닌 정쟁의 장(場)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김 여사의 땅 문제 등 파급력이 있는 문제를 부각하는 한편 국민의힘은 의혹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강력히 대응하고 있는 것"이라며 양당의 고발전을 '명분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엄 소장은 이어 "정작 정치의 사법화를 비판하는 이들도 선거를 앞두고는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또 다른 정치전문가는 본지에게 "통상 선거를 앞두고는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의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패턴이 되풀이되는데 이는 표심을 의식한 외나무 혈투"라며 "싸울땐 싸우더라도, 마지막엔 양보와 타협을 통한 생산적 정치를 구현하는 게 성숙한 정치다. 정치가 풀지 않으면 결국 민생만 힘들어질 뿐이다"라고 제언했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소속 A의원은 본지에게 "국민의힘은 앞으로도 소모적인 고소·고발은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라며 "모든 문제는 처벌이 아닌 재발방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당이 야권의 잇따른 원 장관 고발에 대한 맞대응을 검토하지 않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국민의힘이 당초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 대한 고발 검토 입장에서 선회한 것도 궤를 같이한다는 게 A의원의 설명이다.
국민의힘은 최근 국회의원 가상자산 보유 및 거래 내역 등이 언론에 공개된 것과 관련해 윤리심사자문위를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으나, 윤리자문위원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낸 후 이를 철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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