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재난영화와 재난현실의 평행이론

관리자 2023. 8. 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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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5일 충북 청주 오송지하차도에서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무조정실 발표를 보면 이번 참사는 인재였다.

이태원 참사뿐만이 아니다.

위기를 경고하는 과학자, 경고를 무시하는 무능한 정부, 대참사의 발생, 인류애를 확인시켜주는 시민 영웅과 제일 먼저 꽁무니 내빼는 책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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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5일 충북 청주 오송지하차도에서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무조정실 발표를 보면 이번 참사는 인재였다. 사고 발생 전 112와 119에는 인근의 미호강 범람이 예상돼 지하차도가 침수할 수 있다는 위험 신고가 접수됐다고 한다. 하지만 관련 기관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대응하지도 못했다.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이태원 참사뿐만이 아니다. 위기를 경고하는 과학자, 경고를 무시하는 무능한 정부, 대참사의 발생, 인류애를 확인시켜주는 시민 영웅과 제일 먼저 꽁무니 내빼는 책임자들. 이건 재난영화의 익숙한 공식이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대표적 재난영화 ‘투모로우’에도 지구의 이상변화를 감지해 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라 경고하는 기상학자가 등장한다. 예상대로 그의 주장은 비웃음을 산다. 역시나 지구는 꽁꽁 얼어붙는다. 2009년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된다. 쓰나미가 한국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지질학자가 등장한다. 담당 기관은 경고를 무시한다. 그리고 쓰나미가 일어난다. 이병헌·하정우 주연의 ‘백두산’도 판박이다. 백두산 화산 폭발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지질학자가 등장하고 그의 주장은 무시당한다. 예상대로 백두산이 폭발한다. 이런 게 장르영화의 공식이라면 공식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이 전 지구적 재앙을 막으려는 숨은 영웅들의 목숨 건 분투와 생존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은 조금 다른 궤도에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다. ‘돈 룩 업’도 과학자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미시간주립대학교 천문학 박사 과정생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는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다. 지도교수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혜성의 궤도를 계산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혜성은 지구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혜성과 지구의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6개월 14일. 곧장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지구방위합동본부와 백악관에 보고가 들어가지만 백악관 사람들은 ‘혜성 충돌’과 ‘인류 멸망’이란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기껏 돌아온 미국 대통령(메릴 스트립)의 말은 이렇다. “일단 기다리면서 상황을 지켜보죠.” 백악관에서 허탕 친 이들은 언론을 통해 심각성을 알리려 한다. 그러나 혜성 충돌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은 유명 연예인의 결별 소식에 밀려 방송 끄트머리에서 ‘가볍고 유쾌한’ 과학 이야기 정도로 다뤄진다.

‘돈 룩 업’에서 과학자는 순진하고, 정치인은 무능하고, 재벌은 약삭빠르고, 언론은 진실에 무관심하다.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을 보며 깔깔깔 웃게 되지만 어느 순간 이게 영화 속 이야기이기만 할까 싶은 생각이 들면 무섭고 슬퍼진다. ‘돈 룩 업’이 보여주는 ‘망한 세상’에 대한 자조적 결말은 일종의 경고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 말라’는, 지금 우리의 상황을 직시하라는 역설적 충고임을 새겨들어야 한다.

이주현 씨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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