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어민 강제북송 조사 또 각하...文정부 임명 위원 6명에 막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6월 말 전원위원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 당시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조치가 적절했는지 조사해 달라는 변호사 단체의 진정을 각하했다. ‘어민이 북한에 있어 조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2020년 진정을 한 차례 각하했던 인권위는 법원으로부터 각하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자 이번엔 ‘사건 관련 재판이 열리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학생 인권조례 개정에 대해 “힘들게 쌓은 노력이 후퇴하지 말아야 한다”는 위원장 성명을 내는 등 학생, 외국인, 성소수자 인권 보호자를 자처해온 인권위가 북한 주민 강제 북송 의혹에 대해선 또다시 눈을 감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일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인권위는 지난 6월 26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인권위원 11명 중 10명이 참석한 가운데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한 진정을 찬성 6명, 반대 4명으로 각하했다. 송두환 위원장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위원들이 각하에 찬성했고, 윤석열 정부 때 임명됐거나 문 정부 당시 국민의힘 추천으로 임명된 위원은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로 민변 회장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1년 9월 임명됐다.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동해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어민 2명을 북한으로 추방한 사건이다. 당시 북한 어민들이 판문점에서 북한으로 가기 싫어 저항하자 질질 끌려가는 동영상이 지난해 공개되기도 했다. 정부의 북송 조치를 놓고 반인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보수 성향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2019년 11월 인권위에 사건 조사와 긴급 구제를 요구하는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2020년 ‘위원회가 조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진정을) 각하한다’는 인권위법 조항을 들어 각하했다. 북한 어민들이 이미 북으로 보내져 이들의 의사를 확인하기 어렵고, 정보 접근에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한변은 이에 불응해 소송을 냈고,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2심에서 ‘각하 사유가 될 수 없다’며 한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법원 판결을 검토한 인권위는 8개월 만에 다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번엔 ‘수사와 재판이 이뤄지고 있거나 종결된 경우라면 (진정을) 각하한다’는 인권위법을 근거로 들었다. 검찰은 지난 3월 북한 어민들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 북송을 지시한 혐의로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을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해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각하 결정에 대해 인권위원 내부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면서 밤 10시에야 표결로 결론났다고 한다. 반대하는 위원들은 “수사, 재판에 대해 진정을 각하한다는 인권위법의 취지는 국가기관들의 절차 중복을 방지하자는 것”이라며 “이번엔 수사가 아닌 인권 문제만 판단하면 될 일”이라고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위 관계자는 “법원에서 각하 취소가 난 사안에 대해 인권위가 이유를 바꿔 또다시 각하한 것은 인권위 22년 역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고 했다.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던 한변의 김태훈 명예회장은 통화에서 “북송되는 어민들이 판문점에서 격렬히 저항하는 영상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인권위가 인권 침해 여부에 침묵한 것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처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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