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생계 위해 쓴 ‘연재 노동자’가 ‘브랜드’가 되기까지
오얏 리(李), 큰 거문고 슬(瑟), 예쁠 아(娥). ‘이슬아’라는 이름은 현재 20~30대 여성 독자들이 가장 열광하는 브랜드다. 그는 지난달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회원 40만명을 상대로 실시한 투표에서 ‘2023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 올랐다. 2018년 첫 단행본을 낸 이후 지난달 나온 산문집 ‘끝내주는 인생’을 포함해 모두 13권을 썼다. 첫 책 ‘일간이슬아 수필집’이 5만5000부 팔렸고, 지난해 낸 첫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출간 한 달 만에 1만부 넘게 팔리며 현재 드라마 제작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낸 책 판매 부수를 모두 합치면 18만부가량.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8만9000명. 책 출간, 북토크, 취미로 하는 악기 연주 등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을 모으는 이른바 ‘셀럽’이다.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이슬아(31)를 만나 물었다. “당신은 왜 유명하고 인기가 있을까.” 길고 검은 생머리에 빨간 입술, 쌍꺼풀 없는 눈을 다부지게 뜬 이 90년대생 작가는 “작가들이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걸 불편해하기도 하는데 나는 나 스스로를 어떻게 보여지게 할까 연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좋은 글을 쓰는 것에 ‘어떻게 보여지느냐’가 수반되는 게 좋은 시대잖아요. 물론 그런 시대의 그늘도 있지만, 저는 매체의 변화를 편안하게 타고 왔어요. 어릴 때는 싸이월드가 유행했고, 10대 땐 네이버 블로그, 20대 초반엔 페이스북, 그 이후엔 인스타그램…. 그 흐름에 올라탄 거죠.”
2014년 단편소설로 한 잡지사의 문학상을 받긴 했지만 문창과 출신들이 주류인 소위 ‘문단 작가’들과는 궤적이 다르다. 대안학교 출신에 18살 때부터 7년간 청소년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교사 김현아씨가 운영하는 ‘어딘글방’에서 글쓰기를 배웠다. “매주 글감을 받아 글을 쓰고, 학생들끼리 돌려보며 합평을 했어요. 1, 2등을 나누긴 어렵지만 어떤 글이 매력적인지, 어떤 게 더 끝내주고 덜 끝내주는지 확연히 차이가 났어요. 열등감과 질투와 시기로 점철된, 내가 나로 태어난 게 너무 싫었던 7년이었어요.”
이슬아는 “눈물로 범벅된 그 치열한 경쟁의 나날들을 통해 성장했다”고 말했다. “제가 당시에 썼던 글들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처럼 가벼운 거였어요. 선생님은 ‘그것도 좋지만 그게 너의 한계라 생각하지 말라’고 했죠. 끝내주게 문학적인 문학을 하라고 요구했고, 혹독하리만치 많이 읽으라고 했어요. 동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법도 ‘빡세게’ 가르쳤어요.” 당시 함께 배웠던 동료들이 영화감독 이길보라(33), 과학사 연구자이기도 한 하미나(32) 등 요즘 출판계서 주목받는 90년대생 여성 저술가들이다.
스스로를 ‘연재 노동자’라 칭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누드모델, 글쓰기 교사 등 부업을 닥치는 대로 했다. 2018년 대학(성공회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편당 500원을 받고 구독자들에게 매일 글을 보내주는 메일링 서비스 ‘일간 이슬아’를 시작했다. 단정하면서 웃기고, 담백하면서 슬픈 글에 독자들이 반응했다. 1년 만에 대출금 2500만원을 다 갚았다. “생계에 대한 근성이나 맷집이 좀 강한 편이에요. 엄마 아빠가 계속 블루칼라 노동자로 이 직업 저 직업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살았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살면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제도권 바깥에서 성장해서인지 틈새 시장을 노리는 경향이 있어요. 틈새 시장을 노린 것, 열심히 한 것, 운이 따른 것 등이 겹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SF를 쓰고 싶었지만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쓰는 건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닫고 그만뒀다. 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부모님을 직원으로 고용해 출판사를 운영 중인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요즘은 드라마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 중이다. “무슨 말인지 알기 쉽게 쓴다는 게 제 유일한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각본을 쓰니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충격이었지만 덕분에 ‘내가 더 쉬워질 수 있나?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죠. 시청자들 마음을 10초 안에 사로잡을 수 있도록 더 쉽고, 자극적으로 쓰는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이슬아가 말하는 글쓰기]
밤새워서 쓰는 글은 좋지 않더라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다는 행운이 좋으면서도 무섭다. 마감이 반복되면 글은 자연스레 느는 것이 아닌가. 마감과 함께 살아가는 일의 관성을 믿는 편이다. 보통 늦은 오후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밤새우지 않는다. 새벽에 쓰는 글이 별로 좋지 않고, 밤을 새운 여파가 다음 날까지 이어지더라.
작가가 되려면 푸시업을 열심히
윗몸일으키기랑 플랭크를 열심히 해야 한다. 어차피 작가가 되는 길에 왕도는 없고, 글쓰기 공부는 알아서 하는 건데, 코어근육이 없으면 통증 속에서 이 일을 하게 된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10대들에게 스쿼트, 푸시업, 플랭크, 윗몸일으키기, 데드리프트 5종을 열심히 하라고 한다. 작가의 자질은 근육이다.
좋은 글이란 하루를 견딜 힘 주는 글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린이에게 좋은 책이란 ‘태어나기 잘했다’라고 느끼게 하는 책”이라고 말한 적 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어린이문학에만 한정된다 생각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삶에서 고단한 날이 더 많지만, 그래도 태어나서 이 모든 걸 겪는 게 좋구나’ 생각하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 독자들이 “오늘을 살아내는 게 너무 버거웠는데 이슬아 책의 한 구절 덕에 하루를 견딜 힘을 얻었다”고 할 때마다 ‘살고 싶어지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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