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나를 성장시켜 준 여행

김재원 동화작가 2023. 8.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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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휴가철이 되었다.

여행 정보를 검색하고 가방을 꾸리는 순간부터 가슴이 부풀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편다.

내가 여행한 나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티베트이다.

목욕과 술은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인데 하지 말라니! 무슨 이유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잘못했다간 고산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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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동화작가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었다. 여행 정보를 검색하고 가방을 꾸리는 순간부터 가슴이 부풀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편다.

이상하게 편안했던 여행보다는 고생했던 때가 더 생생하게 기억난다. 한번은 계원들과 거제도로 놀러 갔는데 가자마자 비가 쏟아지더니 이틀 내내 그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바닷물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천막 안에서 놀다가 돌아왔다.

언젠가는 밀양 호박소로 가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삼겹살을 구워 먹고 캠프파이어를 할 때까지는 좋았다. 점점 하늘이 흐려지더니 한밤중에 폭우가 쏟아졌다. 자다가 바닥이 축축해서 일어나보니 빗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 배수로를 파느라 진땀을 흘렸지만,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단잠을 자고 있어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승용차가 없던 시절에도 세 아이를 데리고 방학 때마다 여행을 다녔다. 비용을 아끼려고 호텔보다는 값싼 민박이나 모텔을 이용했다. 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목적지에 도착해 저녁을 해 먹으려고 배낭을 뒤져보니 아뿔싸 버너가 안 보였다. 실컷 잘 챙겨놓고는 기차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서두르다가 깜빡 잊은 모양이었다. 쌀과 반찬, 코펠 등은 다 가져왔는데 중요한 불(?)이 없으니 난감했다.

가게에 가보니 버너는 없고 착화탄만 있었다. 아쉬운 참이라 그거라도 사 와서 욕실로 들어가 불을 피웠더니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누가 화재 신고를 할까 봐 간이 조마조마했다. 창문을 열고 부채질을 하느라 진땀을 뺐는데 그런 소동을 벌이고도 밥은 잘해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해프닝이었지만 그게 도리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내가 여행한 나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티베트이다. 해발 3650m 라싸 공항에 내려 입국 절차를 밟고 있을 때 일행 중 한 사람이 1회용 김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납작하던 김 봉지가 붕어빵처럼 통통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게 기압 차이 때문이라는 걸 알고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현지 가이드는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세 가지를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뛰지 말고 천천히 걸을 것, 목욕을 절대로 하지 말 것, 술을 마시지 말 것.

목욕과 술은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인데 하지 말라니! 무슨 이유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잘못했다간 고산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단다.

“어이쿠, 이번 여행은 망했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오는 건데.”

누가 한숨을 내쉬자 가이드는 2~3일 뒤에 적응이 되면 괜찮을 수도 있다고 여지를 두었다. 그날 저녁이 되자 어지럽다고 응급실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나는 가벼운 구토 증세가 있었지만 다행히 별일 없이 넘어갔다.

사흘이 지난 뒤에 5190m 라첸라 고개를 넘어 남쵸 호수를 보러 갔으나 여기서도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말을 들으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당나귀를 타고 호수까지 내려가 보긴 했지만 다른 관광지만큼 마음껏 즐기지는 못했다. 언제 고산병이 올지 모르니 여행 기간 내내 조심해야만 했다.

8박 9일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라싸에서 나올 때는 갈 때와 달리 칭짱열차를 탔다.

그런데 이 기차도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중간에 5500m 구간이 있어서 승객 몇 사람이 죽은 적이 있다고 하니 번지 점프를 앞둔 사람처럼 긴장이 되었다. 다른 때 같으면 맥주를 마시며 느긋하게 기차 여행을 즐겼을 텐데 서안에 도착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결국 아무 일 없이 살아서 돌아오긴 했지만 그 어떤 곳보다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무 하나 없는 고산지역,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계곡,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지은 사원, 우리는 쓰러질까 봐 천천히 다녔는데 힘차게 뛰어다니며 축구를 하던 그곳 아이들….

모든 여행이 나를 성장시켜주었지만 불편했던 경험이 나를 한 뼘쯤 더 키워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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