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AI시대의 전략] 다이아몬드 세공하듯이… 미래 반도체 경쟁력은 ‘패키징 기술’에 달렸다
종전 반도체가 단층 건물이라면 AI 반도체는 163층 ‘부르즈 할리파’
10대 패키징 기업에 한국은 없어… 원천 기술 개발과 인력 확보 시급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를 본 극장이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경동극장’이었다. 그 당시 동시 상영 극장으로 화면은 으스스하게 어둡고 비가 내렸다. 세월이 한참 흘러 VHS와 DVD 시대를 지나 이제는 넷플릭스로 영화를 본다. 미래에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든 영화를 보게 될 전망이다. 영화 대본 작성과 편집 작업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할 것이다. 등장 배우도 가상 디지털 인간이 대신할 것이다.
인공지능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 배우로는 우리 시대 최고 미남인 프랑스의 ‘알랭 드롱(Alain Delon)’이 좋을 것 같다. 우수에 찬 눈빛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눈 시리게 볼 수 있다. 보트에 매달려 있던 친구 필립의 시체가 발견되고 일광욕을 즐기던 그에게 경찰의 전화가 걸려오는 서늘한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알랭 드롱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가상 여배우로는 역시 우리 시대 세계 최고의 미인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을 추천한다. 그의 데뷔작 ‘로마의 휴일’에서 선보인 단발 헤어컷은 ‘헵번 스타일’로 지금까지 유명하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는 이른 아침에 검정 선글라스와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뉴욕 5번가에 위치한 보석상 ‘티파니’ 앞에서 커피를 들고 크루아상을 먹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티파니 본점은 이 영화를 통해 유명해져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특히 티파니의 다이아몬드는 캐럿보다 광채를 중시하는 세팅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컬러 마케팅을 매우 성공적으로 활용한 기업이다. ‘티파니 블루’라는 고유의 색을 색채상표로 가지고 있는데, 이를 상자와 포장지, 쇼핑백 등에 활용한다. 이렇게 다이아몬드는 원석을 세공하고 색깔로 포장하면서 그 상품 가치가 마침내 완성된다. 인공지능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다이아몬드와 실리콘 반도체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탄소로 이루어져 있어서 실리콘과 같이 둘 모두 화학 주기율표상에서 ‘IV족 원소’이다. IV족 원소는 원자 주위를 회전하는 최외각 전자의 수가 4개이다. 그래서 똑같이 실리콘도 ‘다이아몬드’ 결정구조를 갖는다. 다이아몬드는 천연광물 자원 중에서 가장 굳기가 우수하며 광채가 뛰어난 귀한 보석이다. 뛰어난 경도로 인해 공업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전기 저항도 매우 높으며, 열전도율이 매우 뛰어나다. 다이아몬드와 실리콘 반도체 모두 불순물이 없는 초절정의 순도를 가지고 있다. 지구 깊은 지층 속이나 반도체 연구실에서 고온, 고압을 견뎌내며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피와 땀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가공을 마무리하고 포장해야 그 가치가 극적으로 완성된다. 이 과정을 다이아몬드에서는 세공과 세팅 그리고 포장이라 부르고 반도체에서는 ‘패키징(Packaging)’이라고 부른다.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의 확산으로 고성능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 인공지능 반도체의 패키징 안에는 그래픽 처리 장치(GPU)로는 엔비디아 모델 H100 또는 AMD 모델 MI300X가 들어가고, 고대역폭 메모리(HBM)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만든 HBM3.0이 들어간다. 이들이 함께 손바닥 크기보다 작고 종이처럼 얇은 3차원 공간에 내장된다. 그 한 개의 가격이 무려 6000만원까지 간다. 다이아몬드에 버금가는 가격이다.
이러한 반도체 패키징 구조에서는 GPU와 HBM이 서로 빛의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신호선이 설치된다. 그래야 GPU와 HBM이 쉼없이 생성 작업을 할 수 있고 영화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병렬 연결 신호선 숫자가 1000개를 넘는다. 그리고 이 반도체들에 안정된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학습용 기억 용량을 늘리기 위해 메모리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는다. 마치 기존의 반도체가 단층 건물이라면 인공지능 반도체는 163층 부르즈 할리파 빌딩이 수십개 모여 있는 초고층 복합 타운과 같다. 그래서 초고속 데이터 엘리베이터인 실리콘 관통전극(TSV)을 수만개 설치한다. 이제 각각의 실리콘 반도체 동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연결하고 복합화해서 전체 인공지능의 성능을 최대화해야 한다. 이렇게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는 반도체 사이의 융합과, 협력 그리고 소통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바로 반도체 패키징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다이아몬드와 마찬가지로 반도체의 마지막 작업인 패키징이 작품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리고 가상 배우 알랭 드롱과 오드리 햅번이 등장하는 인공지능 영화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미래의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은 바로 ‘반도체 패키징 기술’에 달려 있다. TSMC와 삼성전자의 한판 승부처이다. 하지만 전 세계 10대 반도체 패키징 기업 중에 대만이 6개 기업, 중국이 3개 기업, 미국이 1개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없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결정적 위기로 등장할 수 있다. 패키징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패키징 설계, 재료, 공정과 장비에 대한 원천적인 기술 개발과 우수 인력 확보가 필요하다.
‘무어의 법칙’은 인텔의 창립자 고든 무어(Gordon Moore)가 주장한 반도체 성장 법칙이다. 반도체 내에 집적하는 트랜지스터 수가 2년마다 2배로 성장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이제는 반도체 패키징 기술이 무어의 법칙을 이어간다. 옛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다이아몬드뿐만 아니라 반도체 패키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반도체 패권 전쟁은 패키징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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