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개고기와 문화상대주의
개고기를 먹어야 하나, 먹지 말아야 하나. 뜨거운 논쟁이 계속된다. 여름 복날이 되면 보양식으로 알려진 '전통음식' 보신탕이 주목받는다. 그러나 반려동물로 개를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런 문화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개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한국인이 오랜 세월 즐긴 음식문화를 왜 금지하느냐며 팽팽히 맞선다.
논쟁과 상관없이 개를 식용으로 팔고 사는 사업은 성업 중이다. 보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의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전국의 개농장은 1156곳이며 1곳이 평균 450마리를 사육 중이며 연간 38만8000마리가 1666개 음식점에서 소비된다. 동시에 반려동물로 키우는 개의 숫자도 점점 늘어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를 찾아보니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반려견 숫자는 544만7952마리에 달했다.
문재인정부는 논란을 끝내기 위해 2021년 12월 '개식용문제논의를위한위원회'를 출범했다. 위원회는 두 번에 걸쳐 활동기한을 연장하면서 회의를 거듭했지만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이견'을 중재해 합의를 끌어낸다는 원론만 반복한다. 개 식용문제를 제도로 풀겠다는 계획은 실패했다. 오랜 관습이 문화가 돼 깊이 뿌리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 식용문제는 문화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개고기를 문화라는 말과 연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문화상대주의'다. 문화상대주의는 세계 여러 지역의 문화가 저마다 다른 맥락 속에서 형성됐기 때문에 문화에 우열이 없다는 입장이다. 개고기를 먹으면 열등하고 먹지 않으면 우월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위해 인용되곤 한다.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한국의 개고기 식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가 이 또한 문화상대주의를 모르는 소리라는 비난을 받았다. 브리지트 바르도는 개고기를 먹는 사람을 야만인으로 규정하고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으니 모든 한국인은 야만인이라는 궤변을 펼쳤다. 그녀의 주장은 오히려 문화진화론 또는 인종주의를 대변한다.
세계를 문화와 야만이라는 대립적 가치영역으로 나누려는 시도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서양 제국주의에 의해 전파된 문화진화론의 전형이다. 서양은 문화 상태에 있고 다른 지역은 야만 상태에 있으니 야만을 개량해 문화로 바꿔야 한다는 제국과 식민의 논리였다. 개고기 식용금지가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도 그 근거를 100년 전 낡은 사고에서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화상대주의는 문화진화론의 이런 맹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주장이다. 세계 여러 지역의 문화가 모두 특수한 원인을 가지고 있으니 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가 상대적이라는 뜻이 '모든 문화가 옳다'는 생각으로 귀결돼서는 곤란하다. 문화상대주의가 문화의 옳고 그름, 즉 도덕성을 판단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족은 어린 소녀의 발이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중국의 오랜 전통이었다. 전족을 한 여성은 성인이 돼도 발이 15㎝ 정도로 작았다. 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전족은 남성이 신체의 오감을 이용해 여성을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중요한 장치였다. 문화상대주의가 이런 '전통'을 승인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는 없다.
문화가 상대적이라는 말은 자주 동일 시간, 다른 지역의 횡단면을 기준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문화는 같은 지역, 다른 시간의 종단면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상대적이어야 한다. 시간의 축을 따르는 역동적인 문화상대주의에 따르면 근대와 더불어 중국의 전족이 폐지됐듯이 개고기 식용도 얼마든지 금지될 수 있다. 개고기 식용은 더이상 특수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을 수 없는 문제가 됐다. 물론 논쟁이 하루아침에 결론을 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방향을 설정했고 이를 따라 문화를 바꿔야 한다.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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