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휴가 정국’의 중요성

이천종 2023. 8. 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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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여야 대표 나란히 휴가
잠시 대립의 전원 스위치 ‘OFF’
차분히 민생 등 국정 현안 구상
8월 국회 ‘원포인트 처리’ 기대

이번 주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나란히 여름휴가다.

윤석열 대통령은 2일부터 6박7일간 ‘청해대(靑海臺)’라 불리는 대통령 별장이 자리한 저도에서 머문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6일까지 가족과 함께 베트남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4일까지 수도권 근교에서 휴식을 취한다.
이천종 정치부장
권력자들의 휴가를 두고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정치에서 잠시 멈추는 시간은 꽤나 긴요하다. 휴가를 계기로 정국 운영의 새로운 기조가 나타나 꽉 막힌 정국의 돌파구가 열리기도 한다.

취임 첫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여름휴가 직후 전격적으로 단행한 금융실명제는 우리 경제사에 한 획을 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여름휴가를 다녀온 뒤 소선거구제 폐지를 위해 한나라당과 연정을 할 수 있다고 발언해 적잖은 파장을 낳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여름휴가 직후 ‘40대 총리’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카드로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을 대폭 교체한 것도 휴가 직후였다. 지난해 윤 대통령도 사저에서 첫 여름휴가를 보낸 뒤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교체하고 국정기획수석을 신설했다.

언론이 ‘휴가 정국’에 주목하는 건 이런 정치적 맥락이 깔려 있어서다.

“오래된 석탑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돌 사이사이에 틈이 있다. 너무 촘촘하게 만들면 오랜 시간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최고경영자들이 ‘휴(休)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인용하는 얘기다.

숨 돌릴 틈 없는 외교 일정과 정치 현안에 지쳤을 윤 대통령은 휴가 기간이라도 동백과 해송, 팽나무 등으로 울창한 저도의 숲과 백사장을 거닐며 잠시나마 심신의 여유를 찾았으면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첫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이 있던 저도에서 ‘정치인 윤석열’의 행보도 차분히 되짚어 봤으면 좋겠다. 정치에 발을 내딛던 순간의 초심을 떠올리며 인적 쇄신과 광복절 특사, 한·미·일 정상회의 등 현안뿐 아니라 역사적 소명도 성찰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양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휴가 기간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을 위해 수도권·중도·청년으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인재를 물색하는 등 총선 밑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10월 퇴진설’, ‘8월 검찰의 영장 청구설’이 흘러나오며 당 안팎이 뒤숭숭한 가운데 휴가에 나서는 이 대표도 당 혁신과 내년 총선 대응책을 고민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대표 모두 휴가 기간만이라도 정쟁의 언어는 애써 삼가고, 정국 구상 테이블에 협치를 올려놨으면 한다.

이들의 휴가가 끝나면 21대 국회는 종반전으로 치닫는다.

막판 스퍼트가 절실한 시점이지만 정치 상황이 녹록지 않아 8월 임시국회도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청문회로 전운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검찰이 1일 무소속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서 갈등의 수위가 더 높아져서다. 자칫 사생결단식 싸움으로 번져 21대 마지막 정기국회마저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끔 스마트폰이 먹통일 때 의외로 간단한 해결법이 있다. 전원을 잠시 껐다 켜 보면 대체로 문제가 해결된다. 여름휴가에 대통령과 여야 대표 모두 지금까지 관성처럼 마주 보며 달리던 대립의 전원 스위치를 껐다 켜 보자. 전원이 다시 켜지면서 그동안 잘 안 보이던 ‘협치 앱’이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

휴가에서 얻은 여유로 8월 국회에서는 수해 예방·지원법과 함께 윤석열정부의 ‘민생입법’과 이 대표가 강조하는 ‘여야 대선 공통 공약’ 중에 최대공약수를 찾아 ‘원포인트’로 처리해 보는 건 어떤가. 바로 지금이 만나자고 말만 한 채 번번이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여야 대표 간 회동이 절실한 순간이다.

이천종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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