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누락’ LH 아파트, 안전보다 빨리빨리…최저가 입찰·부실 감리의 결과물”

김세훈 기자 2023. 8. 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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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동자들이 본 현장
지하주차장 보강 공사 경기 오산시 세교2 A6블록 아파트 주차장에 1일 보강 공사를 위한 임시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저가 경쟁, 재하도급에 심화
“오늘 기둥 몇개” 매일 속도전
‘원청 눈치’ 감리 제 역할 못해
“도면 이해 낮은 일용직 많아
철근 숙련공 관리체계 필요”

“시공사의 최저가 입찰, 공사현장에서의 무리한 속도전, 원청 눈치만 보는 감리가 만들어낸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거죠.”

인천 검단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에 이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의 ‘철근 누락’ 시공이 국토교통부의 전수조사로 드러나자 건설노동자들은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터져나온 것”이라고 했다. 특정 건설사만이 아닌 시공·감리 등 건설업계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건설노동자들은 건설업계에 만연한 ‘최저가 경쟁’을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철근공으로 25년 일한 남기방씨(62)는 1일 “시공사가 공사 진행사를 선정하는 방식은 대부분 최저가 입찰”이라며 “단가를 높이 쓰면 탈락하니 기능공들보다는 단가가 싼 외국인들을 많이 넣게 된다”고 말했다.

최저가 경쟁은 재하도급을 거치면서 더욱 심해진다. 남씨는 “공사 진행을 따낸 회사는 거기서 또 2~3차례 하청을 준다. 그때마다 중간착취가 일어나 단가는 낮아지고, 결국에는 숙련공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다”고 했다.

전재희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우리나라는 누가 건물을 튼튼하게 짓는지를 따지지 않고 얼마나 이윤을 남기는지만 따진다”라며 “품질 경쟁이 아닌 이윤 경쟁에만 매몰된 산업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최근 원자재값이 크게 오르자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철근을 빠뜨린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저가 경쟁은 속도 경쟁으로 이어진다. 안전은 무시되기 쉽다. 특히 이번 LH 아파트의 경우처럼 무량판 시공과 같은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에서 부실시공이 이뤄질 수 있다. 무량판 구조는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보가 없이 슬래브와 기둥만으로 구성된 건축구조를 말한다.

남씨는 “무량판에는 기둥이 건물을 지탱하기 때문에 보강근을 가로·세로로 넣어야 붕괴 위험이 방지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천 검단 지하주차장의 경우처럼 갑작스럽게 붕괴할 위험이 있다”며 “작업자들이 도면상 철근을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모르고 작업하다 보니 보강근을 빠뜨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실장은 “무량판 구조는 수직·수평 및 좌우 편차를 정확하게 맞춰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오늘은 기둥 몇 개는 해야 한다’는 식으로 속도전을 부추긴다”며 “결국 사각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을 두 개 매듭만 하거나 보강 철근을 덜 집어넣게 된다”고 했다.

‘원청 눈치 보기’ 탓에 건설현장에서 감리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 실장은 “철근은 골조공정의 핵심이라 감리가 안 보고 넘어갈 수 없다. 층이 올라갈 때마다 감리를 받는 구조인데 감리가 부실했던 것”이라며 “감리계약을 맺는 주체가 원청 시공사이기 때문에 시공사가 원하는 답변을 해주기 마련”이라고 했다.

건설현장에서 30년을 일한 함경식씨(51)는 “감리가 문제점을 발견하고 공사를 중지시키면 공사 방해로 민사소송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도면을 잘못 보고 시공하거나 철근을 빠뜨려도 시공사, 전문건설업체 감리까지 서로 눈감아주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현대산업개발 아파트가 무너진 것도 구조적인 부실로 인해 발생한 사고인데 지금도 그 회사는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 적발 시 보여주기식이 아닌 확실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함씨는 “철근 작업은 꾸준히 있는 게 아니라 철근공 중에는 일용직이 많다. 그러다 보니 도면 이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노동자의 기능 수준을 공인해줄 장치와 숙련공에 대한 관리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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