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누락 아파트…“국가가 약자 위해 지은 아파트가 이럴 수 있나”
“보강해도 불안…계속 살아야 하나”
LH에 분노한 주민들 항의 움직임
1일 오후 1시쯤 충남 공주시 월송 A4 아파트 단지. 국토교통부가 ‘무량판’ 구조 지하주차장에서 지붕층 무게를 떠받치는 철근을 빠뜨렸다고 공개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아파트 15곳 중 한 곳이다. 이 단지는 820가구가 거주하는 공공임대주택이다.
낮 기온이 33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관리사무소 앞에는 입주민들이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관리사무소 한 직원은 “입주민들이 부실공사 확인과 보강공사 여부 등 민원을 계속 넣고 있다”면서 “하지만 아파트관리소에서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난감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LH가 보강공사를 약속했지만 입주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김모씨(60대)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부실공사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어디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며 “보강공사를 한다지만 불안감은 여전할 것 같다. 이 아파트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민간도 아닌 국가에서 약자를 위해 지은 아파트가 이런 식으로 건설된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고 덧붙였다.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집단 항의 움직임도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 한 경비원은 “동대표와 일부 주민들이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듣고 흥분해 아파트 시공사 등을 불러들이고 있다”며 “LH 관계자도 발표 직후 아파트에 찾아와 ‘보강공사를 해주겠다’는 등의 약속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남양주 별내면의 또 다른 ‘철근 누락’ 아파트 주민들은 겉으로는 애써 동요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지만 분위기는 싸늘했다. 전날 국토부 발표와 관련해서는 모두 함구하기로 한 듯 입주민들은 “괜찮다”는 말만 반복할 뿐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관리사무소 한 직원은 “취재요청이 많아 주민들이 불편해한다. 입주민들 민원이 많아 부득이 경찰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날 아파트 지하주차장 곳곳에는 보강공사에 앞서 임시 보강 구조물(잭서포트)이 설치돼 있었다. 이 단지는 지난해 4월 약 380가구가 입주했다.
주민 공지 한번 없이 몰래 보강공사한 LH…안내문엔 “도색작업”
아파트 단지 내에선 이와 관련한 게시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입주자 온라인 카페에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주민 의견과 대응 방안 등에 대한 글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남양주시는 LH가 시행한 사업이어서 관여할 부분이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직접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파악하기 위해 단지 내 통장이나 입주자협의회 관계자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 권선구 당수지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입주민들이 속을 태우고 있었다. 지난 5월 입주가 시작된 이곳은 최근에도 이삿짐 차량이 오가는 등 입주가 한창이다. 신혼부부 전세대출을 받아 이 아파트에 들어왔다는 A씨는 “입주민 단톡방은 혼란 그 자체다. 배신감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파주 운정3지구 A34블록에서는 LH가 철근 누락 보강공사를 진행하면서 도색 작업을 한다는 가짜 안내문을 붙여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아파트 입주민 커뮤니티에 따르면 LH는 지난달 31일 철근 누락 아파트 15곳의 명단을 공개한 직후 이 단지에서 긴급 설명회를 열었다. 당일 급작스레 이뤄진 공지에도 상당수 주민들이 설명회에 참석했다.
지난해 8월 입주가 시작된 1448가구 규모 공공임대아파트인 이 단지는 무량판 구조로 시공된 지하주차장 331곳 가운데 12곳의 보강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조사됐다. LH는 이러한 사실을 파악한 7월 중순부터 슬래브 보강공사를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보강공사 여부는 물론 철근 누락 사실조차 주민들에게 전혀 공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슬래브 보강공사 중인 지하주차장 곳곳에는 파란 천막이 씌워져 있는데, 그 위에는 ‘8월11일까지 페인트 도색 보수 작업을 진행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한 입주민은 전날 설명회에 참석한 뒤 커뮤니티에 “LH에 왜 거짓말을 했냐고 하니 ‘주민들이 불안해할까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안전펜스 하나 없이 페인트 도색 작업처럼 비닐 천막만 쳐놓아둔 게 배신감이 든다”고 썼다. 그러면서 “사과는커녕 끝까지 ‘보수하면 100% 안전하니 안심해라’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데 믿음이 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강정의·심윤지 기자·이상호 선임기자 just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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