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메달리스트도 피해자…배후에는 체조계 실세? (끝까지판다 풀영상)
<앵커>
한국체육대학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체육 특성화 국립대학으로 그동안 메달리스트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을 배출해왔습니다. 그런데 한체대 출신의 체조선수가 실업팀에 들어가면 계약금의 10%를 학교 측이 사실상 강제로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저희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관행과 전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학교 측이 선수들의 돈을 얼마나 어떻게 가져갔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끝까지판다'팀의 단독 보도, 먼저 유수환 기자입니다.
<기자>
한국체육대 체조 전공 학생 중에 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에 입단하는 선수들 대부분은 계약금이라는 것을 받습니다.
각자의 능력, 또 입단하는 팀의 사정에 따라 액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어린 선수들이 눈물과 땀을 쏟으며 노력한 것을 처음으로 인정받는 상징적인 돈입니다.
저희 '끝까지판다'팀에 들어온 제보는 이 소중한 계약금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A 씨/한체대 출신 선수 : 받은 계약금의 10%를 이제 학교에 내야 한다고 연락이 와서 이제 냈죠. 계좌 이체로.]
[B 씨/한체대 출신 선수 : 계약금 10%는 대학교에다가 내야 된다고. '내기 싫으면 내지 말라'고 했으면 안 냈을 것 같은데….]
실업팀 입단 계약금 가운데 10%가량을 학교 측이 반강제로 가져갔다는 것인데, 피해자는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C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이미 위에 선배들부터 쭉 그래와서, 알고 있어가지고. 그때 형들이 낸다고 할 때는 제 일이 아니니까 이렇게 신경 안 썼는데, 내야 된다고 하니까 이제 아까웠죠. 불만 있는데, 불만 있다고 해서 뭐 가서 따지거나 그럴 수는 없으니까.]
국가대표, 국제 대회 금메달리스트도 포함됐고, 수수 기간은 확인된 것만 최근까지 최소 10년에 달합니다.
[D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우리가 이걸 왜 내야 되지?'라는 게 많았었죠. 우리가 고생해서 받은 돈인데…. (그 당시) 친구 한 명이 이걸 안 내면 네 인생이 고꾸라질 수도 있는데 (안 내는 게) 가능하겠냐. 저희들도 '어쩔 수 없이'…. 그냥 그게 관례였던 거죠.]
경제적인 형편이 어렵다고 했는데도 수십만 원을 받아 간 사례도 있었습니다.
[E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원래 10%로 돼 있는데 제가 그거는 안 된다 해가지고, 개인 사정이 있어서 수십만 원만 냈어요.]
한체대 체조부 입학생은 매해 7명 정도, 많게는 한 해 3천만 원 이상 걷기도 해 수수 기간을 감안하면 총액은 최소 억대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왜 받아 갔는지 체조부 측에 묻자 "학생들의 자발적인 기금 문화"라며 "비인기 종목의 취약한 재정 지원 탓에 40년 전부터 시작된 기부 관행"이라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내놨습니다.
[한체대 체조부 관계자 :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통상적으로, 전통적으로 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이거는 강제적인 건 절대 아니에요.]
해명이 사실일까.
끝까지판다팀이 입금 과정을 따져봤더니, 독촉 전화까지 있었고,
[D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전화로 계속 아직 입금 안 됐냐, 어떻게 됐냐 왜 너만 아직 안 됐냐, 이런 식으로….]
'학교발전기금 공식 계좌'가 있는데도, 조교 명의 또는 재학생 명의 계좌를 통해 돈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F 씨/한체대 출신 선수 : (학교 계좌로 입금하셨나요?) 아니요. 그 당시에 선수, (재)학생, 그 친구 계좌로 (보내줬어요).]
[G 씨/한체대 출신 선수 : (10%를) 000 조교한테 보내고, 나머지는 부모님 통장에 보내드렸죠.]
자발적 납부다, 오랜 전통이라는 말은 무색해졌고, 개인 계좌로 받았다는 점에서 사용처에 대한 의혹만 커졌습니다.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오영택, VJ : 김준호, CG : 이준호, 스크립터 : 김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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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들으신 것처럼 선수들은 고생해서 번 돈을 왜 학교에 내야 하는지 의심하면서도 학교 측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이 실제로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도 선수들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런 일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 것인지 저희가 취재해봤더니, 체조계의 유력 인사인 한국체대의 한 교수 이름이 나왔습니다.
계속해서 화강윤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끝까지판다팀은 한체대 체조부를 거쳐 실업팀에 입단한 졸업생 수십 명을 일일이 인터뷰했습니다.
이들은 조교들의 요구에 따라 입단 계약금의 10%가량을 송금했지만, 이 돈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B 씨/한체대 출신 선수 : 그냥 어디에 썼는지만 알고 싶어요. (어디에 썼는지 설명은 안 해주던가요?) 네, 그런 얘기는 전혀 없었어요.]
조교들은 후배들을 위해 공용품이나 단체복 같은 것들을 사는 데 쓴다고 했는데, 처음엔 침묵하던 선수들도 '후배 대물림'은 막아야겠다며 처음부터 이 설명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웠다고 털어놨습니다.
[C 씨/한체대 출신 선수 : (후배들) 단체복을 맞춰준다거나… 근데 그게 그렇다 해도 그 액수가 훨씬 남는단 말이죠?]
[D 씨/한체대 출신 선수 : (후배) 옷 해주는 데 몇천만 원이 들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정작 받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 '후배'도 있었습니다.
[E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옷도) 우리 돈으로 사 입었고. 그렇다고 회식을 한번 했나? 아니에요.]
선수들은 이런 부적절한 송금의 배후에 대한체조협회 임원으로 한국 체조계에 영향력이 큰 체조부 A 교수가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F 씨/한체대 출신 선수 : '그 10%를 누가 쓸까?'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교수님 말고는 없어요.]
[G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좋겠다. 이거 교수가 먹을 거 아니야?" 이런 얘기하죠. 그냥 추측일 뿐인 거죠.]
[H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조교 선생님들은 4년마다 한 번씩 바뀌신단 말이죠. 그럼 4년마다 조교 선생님들이 계속 그렇게 했을 리는 없고….]
취재진을 만난 A 교수는 졸업생들이 자발적으로 낸 돈이며 일종의 기부라고 말했습니다.
[A 교수/한체대 체조부 : 애들한테 발전기금을 받은 건 사실이죠. (학생들을 위한 비용은 나오지만) 그거 가지고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학교가 어려울 때는 도네이션(기부) 받아서 학생들한테 지원하고 그런 겁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기부 행위로 인정받지도 못했다고 반박했습니다.
[I 씨/한체대 출신 선수 부모 : 연말정산을 하려고 (기부 내역을) 떼어달라니까 안 된다고 그랬대요. 안 떼어줬대요.]
[이상현/변호사 : (만약 일부라도) 교수들이 사적으로 유용했다면 이것은 공갈죄, 사기죄 등이 문제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한체대 측은 "이번 사안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인 건 분명하다"며 자체 조사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학칙과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이승진, CG : 서승현, VJ :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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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저희는 학교 측이 전통과 관행이라면서 선수들로부터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계속 추적해봤습니다. 선수들이 돈을 보냈던 그 계좌를 확보해서 내역을 분석해봤더니, 곳곳에서 수상한 흔적들이 발견됐습니다.
이 내용은 권지윤 기자 단독 취재했습니다.
<기자>
끝까지판다팀이 입수한 계좌 내역입니다.
2013년에 개설되어 2년 정도 사용한 계좌인데, 체조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입금한 흔적이 나옵니다.
입금된 돈은 어디에 사용됐을까, 수소문 끝에 어렵게 찾은 계좌 주인은 한체대 체조부 출신 B 씨였습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형들한테 10%씩 떼간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게 여기로 들어올 줄은 몰랐어요.]
B씨는 대학 신입생 시절 조교 지시로 통장과 체크카드를 자신 명의로 만들어 건넨 뒤 계좌 존재도 몰랐었다고 말했습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조교가) '공금 통장 만들어와라. 공금 통장 쓸 거다' 해가지고… 싫어요!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진짜 말 그대로 까라면 까야 해요 그냥…]
문제의 계좌에는 총 4천여 만 원이 입금되었고 45번 출금이 이뤄졌는데, 그 가운데 36번이 현금 인출입니다.
적게는 5만 원, 많게는 100만 원씩이었고, 어떤 날은 3분여 사이 100만 원씩 6번 연속 출금된 기록도 있습니다.
체조부 측은 밥값, 단체복 등 학생을 위해 투명하게 사용했다고 해명했지만, 내역을 보면 대부분 사용처를 알 수 없는 현금으로 인출되었습니다.
체크카드가 없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딱 3번만 사용된 체크카드, 한 번은 체조부 공용 냉장고 구매로 추정되고 나머지 두 건은 음식점에서 결제됐는데, 금액은 3, 4만 원 수준입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저희는 학교 밥만 먹고 지냈어요. 거기 밥 되게 잘 나오거든요. 따로 나와서 먹진 않았어요.]
B 씨 계좌를 사용한 체조부 측은 "사용한 내역을 빠짐없이 기록해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면서도 내역 공개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계좌 내역을 확인한 B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아 이거를 이런 식으로 이렇게 썼구나. 공금 통장으로 쓴다 해놓고선. 저도 뒤통수 맞은 기분… 후회가 돼요. 이거 빌려준 게 보니까 이런 식으로 썼다는 게.]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이승진, CG : 조수인·임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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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 내용 취재한 유수환 기자 나와 있습니다.
Q. 피해 선수 익명 보도 이유?
[유수환 기자 : 이제 피해 선수들을 만나보니 대부분 좁은 체조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들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 공개될 경우 앞으로 선수 생활에 불이익을 당할 것을 매우 우려했습니다. 심지어는 저희에게 공개했던 계약금 액수만으로 본인 추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저희가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이 모습이 과거 저희가 취재했던 미투 피해자들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취재를 시작해보니 체조계에서 제보자를 색출한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렵게 목소리를 내준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Q. 체조부 해명, 어떻게 봐야 하나?
[유수환 기자 : 문제의 A 교수와 체조부 측이 공식 입장문을 통해 언급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들, 피해자들을 두 번 상처입히는 말이었습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원하지 않는 송금을 강요할 때 썼던 말들이고, 또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이를 왜곡하려고 사용했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한체대의 공식 발전기금 내역서도 확인을 했는데요. 문제의 A 교수, 다달이 2만 원씩 돈을 내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또 한체대 본관에 가면 500만 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의 명패가 나열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수백만 원씩 낸 한체대의 선수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Q. 내일 보도 내용은?
[유수환 기자 : 내일(2일)은 저희가 입수한 이 계좌 내역에서 빠져나간 수상한 뭉칫돈이 어디로 갔는지 보도해드리겠습니다. 또 이 체조부의 해명처럼 정말 이 돈이 학생들을 위해 쓰였는지, 그런 것이 맞는지 확인한 내용도 같이 전해드리겠습니다.]
유수환 기자 ysh@sbs.co.kr
화강윤 기자 hwaky@sbs.co.kr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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